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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Oct 21. 2022

민주주의는 왜 쇠퇴하는가?

번역자의 강의는 역시 최고다_다운사이징 데모크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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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럼프의 대통령의 당선은 세계를 충격에 빠르렸고, 미국 민주당은 좌절을 경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민들은 그렇게 기쁘지도 그렇게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을 뿐더러, 있다고 해도 자신들이 무엇을 해서 바꾸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도망자 민주주의 혹은 개인민주주의로 전락한 미국사회에서 누가 '동원'을 잘하는가가 결국 당선을 결정했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의 동원을 막는 방식으로 당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 그럼 도망자 민주주의가 되었을까?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이상하게 '민주주의 꽃'인 투표가 시민들에게 주인의식을 주는게 아니라 이상하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당신이 투표를 안하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투표독려 메시지에서 '시민'이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존재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투표를 해도 바뀌지는 않는데 당은 비록 바뀔지라도 주어로 작동한 정당은 시민들의 참여를 원하지 않는다. 열려 있다고는 하지만 가보면 할 수 있는게 없다.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도 똑같다. 아니 사실 미국의 정치문화를 그대로 가져와서 우리나라 정치문화로 옮겨 놓은듯 하다. 이렇게 참여의 기회가 사라지게 되면 투표율의 저하 뿐 아니라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대중의 요구보다 소수의 열열한 지지자들이 트럼프와 같은 대통령을 뽑는 것이다.


번역하신 서복경 교수님


그런데 이것도 조금은 웃긴 일이다. 민주당은 '우리가 졌어! 그런데 너무 창피하다. 우리가 지다니, 우리가 엘리트인데 저런 포퓰리즘주의자들에게 지다니'이러고 있다. 그것은 엘리트인 자신들의 자존심을 꺽었다는 의미에서 슬픈것이지, 사실 시민들은 그다지 변화를 못 느끼게 된다. 물론 여기에서 역량의 문제는 논외로 한다. 민주주의에서 시민을 몰아낸 결과 남은 건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밖에 없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1880년 이후가 되면 급속하게 투표율이 떨어지는데, 이것은 프로그레스 시대의 '진보의 시대'가 아니라 혁신의 시대에 시민들을 몰아낸 결과였다. 그 대신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이룩했다.


제4정당체제가 일어나면서 시민들의 투표참여가 확 떨어진다


1828년부터 미국의 정치사를 바라보면 조지워싱터에서 시작해서 조지부시까지 총 5번의 체제로 구분해볼 수 있다. 미국정치는 시민들의 참여를 허용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체제구분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첫번째는 민주당의 탄생이라는 의미에서 크게는 Democratic Party가 제 1정당체제에서 시작하였는데 상대당은 Federalist Party였다. 정당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조지워싱턴이나 토마스제퍼슨과 같은 제헌헌법을 기초한 '파운딩 파더'들의 활동이 주가 되었다. 이 때는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야하는지에 대한 '구획과 선거법, 조직운영'에 대한 방식의 논의가 주가 되었다.



1828년 이후는 연방주의 논의를 넘어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제 2정당체제라고 불리우는 시기에는 민주당과 휘그당의 싸움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민주당의 승리로 이어졌고, 민주정당의 등장하게 된다. 민주정당이라는 것은 정당의 존재방식으로 볼 때 '대중정당'이 되면서 시민참여가 높아졌지만 제 4정당체제부터는 시민참여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결과가 일어났다. 이 책의 핵심은 미국의 제 4정당체제인 1896년부터 1932년까지 '프로그레시브 시대'에 집중하고 있다. 이 말은 정치엘리트들이 더 이상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하지 방법으로 제도 전환을 끝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시기 이후에 미국의 시민들은 더 이상 정치주체로 성장하지 못하고 항상 표상되는 대표들에게 주인의 자리를 빼앗겨 왔다.



• 18-19세기 전쟁과 시민군

-  1775- 독립전쟁, 1860- 내전...   

-  국가를 위해 봉사했던 시민군, 투표권을 요구, 시민참여 확대로   


• 직업 공무원을 대신한 시민 행정가

-  엽관제: 관료제를 대신해 시민 행정가를 공급했던 대중정당의 머신정치   

-  후원관계: 대중정당의 충성스러운 당원들에게 공직이라는 보상을 제공   


• 주정부/연방정부의 재정적 토대로서 시민 납세자

-  독립적인 ‘주’들의 연합으로 출발한 U.S   

-  재산세+인두세, 조세저항은 시민 납세자들의 정치적 무기   

-  소비세, 소득세, 국채 판매, 연방 법정화폐 발행...   

-  시민 납세자의 요구에 부응해야만 전쟁비용을 충당하고 납세 기반을 확장할 수 있었던 구조: 누진세 확대




제4정당체제 (1896-1932)


이 책의 핵심은 제 4정당체제이다. 이 때는 뉴딜정책이 일어나기 전까지, 대공황이 오게 되는 것은 결국 엘리트주의와 정당 이상주의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 전까지는 대중정당으로서 시민행정가나 시민군 정치와 행정의 연결성이 있었고 시민들이 상당부분 국가운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공공관리론이 등장하면서 시민들이 직업관료제에 밀리게 되고, 직업군인에게 나라의 수호권을 내어주며 정치와 행정이 분리되어 버린다. 정당공천제가 사라지면서 엽관제라고 하는 추천제도가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이른바 '거대의 전환'이 현재의 미국정치구조를 만들어 놓았고, 가만히 들여다 보아야만 알 수 있는 '직접투표'가 아니라 '대표의 대표가 대표를 뽑을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 시민행정가 vs. 직업 관료제

 - 혁신주의자들, ‘정당에 충성하는 시민행정가를 국가에 충성하는 직업 관료로 대체해야, 과학적인 인사행정으로 관료제를 운영해야’


• 시민군 vs. 직업군인
 - 혁신주의자들, ‘비효율적인 시민군, 민병대를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직업군인제도로 대체해야’


• 정치와 행정의 분리
 - 혁신주의자들, ‘목적을 정의하는 것은 정치, 행정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기술’


• 정당의 ‘머신’정치 철폐를 위해 예비선거 도입, 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
 - 혁신주의자들, ‘부패정치, 밀실정치의 주범 ‘머신’정치, 정당의 공직후보선출과정을 공개해야, 지방선거에서는 정당 공천하지 말아야’


• 부패정치/동원정치 방지를 위해 유권자등록제 도입
 - 혁신주의자들, ‘투표자 동원은 정당 간부들의 동원정치, 부패정치의 온상, 자발적으로(?) 등록한 유권자들만 투표권을 행사해야’


• 1946년 <행정절차법>

 -  입법 예고제(뉴딜 규제기관의 규칙 제정과정 공개), 공개설명회 의무화   

 -  뉴딜규제기관의결정에대한법원제소허용   


• 1947년 <태프트-하틀리 법>
 -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금지, 노조 의무가입제 금지, 연방공무원/공기업 노조 파업 금지, 노조 간부 공산당원이 아니라는 선서 의무화


• L. 존슨 정부, ‘가능한 최대치의 참여’, 연방기관/제도 시민대표 할당제 - 연방 기관/제도에 ‘참여’하는 시민‘대표’는 누구인가?


• 1970년대, <공익 소송>의 분출(‘이익 옹호행위의 폭발’)
 - 대중 조직가/정당 활동가가 아닌 전문가/법조인/여론조사 회사가 이익대변의 중심 주체로 부상


• 1980년대, ‘바우처’제도와 ‘선택’ 기반 사회복지 프로그램 도입 - ‘개인’이 ‘선택’하는 복지


• 시민납세자의 저항권을 무력화하는 조세체제 확립
 - 소득세 원천징수제도, 사회보험료 자동징수제도, 사라진 소액‘애국’채권


• 시민군(민병대)의 자리를 대신한 직업군인제도
 - 필요할 때마다 시민군의 참여를 요청할 필요가 없는 직업군인들의 군대


• 대중정당의 ‘머신’정치를 대체한 ‘오픈 프라이머리’

- 정당의 공직선출과정을 제도화하고 대중에 개방




각 장의 주요 내용


• 투표자 없는 선거(제3장)

-  동원의 해체: 혁신주의자들의 반(anti-)정당개혁   

-  부분적 재동원: 뉴딜   

-  1960년대: 시민권, 베트남전쟁 그리고 ‘위대한 사회’   

-  선거동원인가, 새로운 정치(New Politics)인가?   

-  새로운 정치의 성숙   


• 오래된 후원관계 vs. 새로운 후원관계(제4장)

-  제도적동원

-  새로운 후원관계   

-  판사석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   

-  제도(기관, 직위, 권한) 투쟁   

-  폭로, 조사, 기소    

-  2000년 대통령선거   

-  가상의 시민권: 여론조사   

-  유권자에서 가상의 시민으로   


• 흩어져야 산다(제5장)

- 정부는 어떻게 이익집단들이 지지자를 동원하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도왔는가

- 공공정책과 사적정부


• 대중에서 메일링리스트로(제6장)

- 뉴딜과 이익집단민주주의

- 노동의 문제: 운동이냐, 이익이냐?

- 이익옹호단체의 급증


• 개인민주주의의 법리학(제7장)

 - 법원의 역할 확대
 - 소송과 ‘소수의 음모’
 - 공모적 해결: 소송을 통한 과세
 - 보호이익의 영역: 멸종 위기종과 위기에 처한 이해관계 - 소송을 이용한 보복

 - 동원과대표
 - 소송을 통한 정책 결정: 집단소송 - 민간검찰
 - 사법권력


• 회원 없는 운동(제8장)  

-  시민권에서 적극적 차별시정 정책으로   

-  환경보호에서 님비로   

-  시민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 공공의 것을 민영화하기(제9장)

-  민영화   

-  정부지원기업: 공적 권력과 사적 목적   

-  공공의 것을 민영화하기   

-  바우처   

-  비영리 부문: 고객과 자원봉사자들   

-  지방분권   


• 누가 시민을 필요로 하는가?(제10장)

 - 개인민주주의의 정치적 경향

 - 해결책이 문제다
 - 한시대의끝




누가 시민을 필요로 하는가?


“공적 영역은 근대성의 피조물이었다. 정치적 통치의 대상에 불과했던 존재들이 그곳 에서 정치행위자가 되고 완전한 시민으로 진화해 갔다. 그들을 하나의 대중으로 만들 었다. 역사에서 이런 발전이 시작된 지점이 있었듯이 끝도 있을 것임을 충분히 가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끝이 지금 눈앞에 있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아마도 지나온 과거가 반대 방향으로 반복되는 어떤 것일 것 같 다. 아메리카 공화국은 탄생 후 2세기 동안, 엘리트들이 대중의 지지를 더 많이 얻기 위 해 경쟁하면서 만들어내는 동원의 사이클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새로운 엘리트 들은 대중의 지지 없이도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일련의 방법들을 발견했다.”


“후보자들은 지지자를 동원하는 게 아니라, 경쟁 후보 지지자들이 투표하지 않도록 공 격하는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전투 전략은 반대파의 제도적 지지기반을 무력 화하는 것이다. 정당과 정치인들은 정부 안팎의 제도들을 식민화함으로써 생존해 간 다. ..예산 삭감, 분권, 민영화, 특별검사의 제한 없는 조사권은 모두 반대파를 무력화하 기 위해 쓰이는 방법들이다.”


“공적 대중이 없는 정치는, 여러 명의 빅 브라더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머리 위 저 높은 곳에서 정치 갈등에 몰입해 있다는 점만 빼면, 조지 오웰식의 악몽 같은 모습일 수 있 다. ..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하나의 세력으로서 대중의 생명력은 무너져 내리고 있고, 머지않아 미국 정치에서 가장 절박하고도 우려스러운 문제는 ‘알게 뭐야?’가 될 수도 있다. “


읽는 사람들 모임



미국 민주주의 vs. 한국 민주주의


이 책은 ‘물질적 필요가 너무 중요하고 절실해서 탈물질주의를 향유할 능력이 없는, 정당이 보 내는 우편 목록에조차 이름이 올라 있지 않고, 투표하지 않아도 굳이 관심 가져 주는 이가 없으며, 자신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이익집단으로부터 초대받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대표해 진 행되는 집단소송의 원고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 있지 않으며, 그저 여론조사로 대표되는 가상적 시민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민네이션, 생각

미국의 민주주의와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느정도 서로를 데칼코마니하고 있다. 다만, 한국은 아직은 엘리트들이 포퓰리즘도 동원해야만 하는 '여론과 인정'의 정치가 아직까지는 이어지고 있으나 한 당이 독재하게 되면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지게 된다.

민주주의가 다운사이징 되면서 결론적으로 양극화는 심해지고 정치의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시대가 왔다. 과거를 공부하는 것은 자유를 증진하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 우리 나라 정치가 앞으로 자유를 증진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제도의 변화와 문화의 흐름 가운데 행위자들이 '주인'이 되어 버리는 민주주의의 축소의 시대에 우리는 다시 시민의 주권을 회복하고 헌법의 의거해서 약자와 소수를 보호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동원 vs. 참여


이책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정치동원(politicalmobilization)이며, 저자들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핵심키워드이다. 정치 동원은, 정당과 정치엘리트가 다수를 얻고 정부를 운영하기 위해, 평범한 시민들에게 입법과 정책과예산의 보상을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다양한 정치 활동에 참여를 ‘이끌어 내는’ 정치 행위이다.   

저자들은 정당과 정치엘리트들이 평범한 시민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동원했기 때문에 미국민주주의의 절정기가 가능했으며, 동원이 줄어들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다운사이징’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정치동원이없으면정치에관심을가질수없고참여도불가능했던평범한시민들은점차정치의세계에서사라져갔다.반면,동원 없이도 참여가 가능했던 시민들은 소송과 로비, 관료 집단에 대한 개인적 접근을 통해 이익 옹호 단체 활동가로, 탈물질주의 가치를 옹 호하는 시민 단체 활동가로, 공익 소송을 주도하는 법률가와 대표 원고로, 정부의 복지 서비스 전달자로 참여의 형태를 변형시키면서 정치의 세계를 독점해 왔다...’   

이책에서 사용된 ‘정치동원’이라는 말은 중하층의 시민들을 정치에 불러들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이해된다. 한국사회에서 ‘정치동원’이라는 언어가 부재하거나 부정적으로 취급되는 현실은 특별한 정치적 효과를 낳는다.   

정치 체제로서 민주주의는 경쟁하는 정당,정치 엘리트를 한 축으로하고,이들이만들어내는과점적대안가운데선택을할수밖에없 는유권자를다른한축으로작동한다. 그런데민주주의를구성하는중요한한축인정당과정치엘리트의행태를묘사할핵심적인언 어가 배제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자체가 왜곡되는 것이다. 마치 정당과 정치 엘리트가 부재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가상의 공 간 속에서, 유권자의 참여만으로 정치가 작동하는 것 같은 허상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이런한국의정치환경에서,유권자의‘자발적참여’는민주주의의가장중요한가치이자덕목으로칭송받아왔다.김대중전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 노무현 전 대통령의 ‘깨어 있는 시민’... 이 구호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정당의 정치 동원을 제약했던 장벽들이 온존하는 환경에서, 자발적 참여의 힘으로 힘의 균형을 깨뜨리고자 했던 절실함을 담았다.   

하지만 한국민주주의의 역설은,구체제의 유산으로 부터 정치동원을 제약받았던 정당과정치엘리트들이,스스로정치동원을중단하 거나 정치 동원의 대상을 제한하면서 발생했다.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던 정치 세력과 그 후예들이, 민주화 이후 정당의 정치 동원을 제약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더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시민 vs 고객


이책에따르면,‘시민은국가를소유한권리의주체인반면,정부의고객이된다는것은제공되는서비스를수동적으로받아들이는존 재’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의 개념은 집단적 정체성을 포함’하는 것인 반면, 고객은 ‘개별적으로 서비스를 구매하고 제공받는 존 재’일 뿐이다.   

시민은 동료 시민들 간의 유대를 통해 권리 의식을 배우고 행사하지만, 고객은 동료 시민들과의 네트워크 밖에서 개인으로서 국가와 관계를 맺는다. 시민은 정치에 불만이 있을 때 집단행동을 조직할 수 있지만, 고객은 불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다른 서비스로 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민이 주체가 되었던 대중 민주주의는 집단 동원을 핵심적 정치 기제로 했지만, 고객으로 해체된 개인 민주주의 는 동원 없는 민주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한국에서는?민주화이후아주짧은시기동안노동조합・빈민조합・철거민연합등이집단행위를적극적으로조직하고이들의행위가 사회적 의제가 되었던 경험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시민’이 아닌 ‘민중’이었고, 그들의 행위는 당연한 ‘시민권’의 행사가 아 니라 많은 경우 불법행위로 간주되었다.   

반면, 개별적으로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는 ‘고객’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친숙하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공공 기관들이 앞다 투어 ‘고객 제일주의’를 말하고, 공무원들은 대기업의 사원 교육기관에 입소해 고객 우선의 마인드를 교육받는다.   


미국의 ‘새로운 정치’ vs. 한국의 ‘정치개혁’의 정치


1890년대부터 시작된 혁신주의 운동은 반부패정치를 전면에 내걸고 부패정치의 주범인 정당머신과 엽관제를 공격했으며, 정치중립적인 직업 관료제와 정당 조직의 축소, 정당의 정치자금 모금 기능 제한, 부패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을 주창했다.   

유권자들에게는,후보자의 소속정당을 보지말고 정책과 인물에 대해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정치를 효율화하는 방안이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또한 일정한 기준을 통과해 유권자 등록을 하지 않으면 투표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교육받지 못하고 정치 정보에 어두우며 정당의 동원에 노출되기 쉬운 유권자들을 선거 공간으로부터 격리시켰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사이좋게 남부와 남부이외 지역의 배타적지배권을 서로 보장하고,정치동원을 자제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과 뒤이은 세계대공황은 다시 대중 동원의 시대를 불러들였다. 대중은 전쟁을 수행할 군인으로, 군수물자를 생산할 노동자로, 전쟁 자금을 아낌없이 내어 줄 납세자와 기부자와 채권 구매자로 동원되었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그에 걸맞는 대접을 요구했고 보상을 받았다.   

대공황 극복이라는 과제를 안은 루스벨트 민주당 정부는, 적극적인 정치 동원을 재개해 힘의 균형을 깨뜨렸고, 정치 동원을 가로막았 던 법과 제도들을 고쳐 나갔다. 법원, 언론, 정부 기관, 전문가 집단에 포진해 있던 반대파들과의 지난한 투쟁이 지속되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은 대중 동원의 필요를 다시 증대시켰다.

하지만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은 앞선 대중동원의 시대이면에 흐르던 ‘새로운정치’의 경향을 전면화시켰다.   

자유주의자들은 노동조합 등 대중 동원의 정치 기제들과 결별했고, 가치와 전문가를 중심으로 무장한 공익단체, 이익 옹호 단체들을 새로운 정치의 기반으로 만들어 나갔다.   

소위공익적시민단체들은환경,소비자보호,인권등탈물질주의의고귀한가치들의수호자를자청했지만,굳이대중을동원하는번 거로움을 감수하지 않고, 전문가를 통한 소송과 광고, 캠페인 활동에 주력했다.   

1970년대이후전면화된‘새로운정치’는혁신주의운동으로부터많은영감을얻었고논리를구했으며,이때싹튼정부기구와제도들 을 발전시켜 무기로 삼았다.   

할일이 없어진 평범한 시민들은 점차 정치의 공간에서 변방으로 밀려났고, 정치에 목소리를 낼수있는 일이란 여론조사 전화에 응답하는 것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반부패와 정치의 효율화를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며, 정당을 무력화시키고 대중 동원을 불온시했던 ‘혁신주의’의 전통이 결국 20세기 후반기 미국 민주주의를 삼킨 것이다.   

민주화이후 한국정치의 모습은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새로운정치’ 혹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혁신주의시대와 닮은면이 있다.   

‘반(反)부패와깨끗한정치,효율적인정치’는주기적으로등장하는정치개혁담론에서최우선의가치를부여받았고,정당과정치엘 리트에 의한 대중 동원은 정치를 타락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정당 조직은 시민과 정치 엘리트가 전리품을 나누는 부정 거래의 온 상지로 비난받았고, 정당의 정치자금 모금은 대가를 바라는 부정한 돈의 유입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에 차단되어 마땅했다. 투입 대비 산출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효율성의 논리가 정치를 평가하는 지배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한때 정치 엘리트들이 공직을 얻고 정당이 집권하기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시민들을 ‘찾아가서’ 만나는 일이었다. 시민들은 일터・집・거리에서 자신을 찾는 정치 엘리트들을 만날 수 있었고...   

현재정치엘리트들은가능한한많은법안을만들어내기위해전문가를만나협조를구해야하고,이익옹호단체와공익적시민단 체 대표자들을 만나야 한다. 텔레비전 토론이나 방송 출연의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얻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하며, 언론에 노출될 기회 를 얻기 위해 이벤트를 만들고 기자들을 초청해야 한다. 정당 간 갈등이 생기면, 더 많은 지지를 동원함으로써 승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 라 일단 법원으로 달려간다.

검사・변호사・판사 출신의 정치 엘리트들은 점점 더 각광을 받고,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이 문제 해결을 법 원에 의탁할수록 이들과 공고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대중 민주주의 vs 개인 민주주의


이책에서 말하는 개인민주주의와 대중민주주의는 발전론적단계를 의미한다기 보다, 영원히 불완전한 정치체제인 민주주의에서 항상 적으로 긴장하며 공존하는 두 가지 경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어느 단계에서, 두 경향 가운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누르고 지배적인 경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며, 상황과 조건에 따라 이 지배적인 경향은 되돌리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민주주의에서 다수를 얻는 방법은 언제나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공동체 구성원의 다수를 정치체제로 끌어 들여서 다수를 얻는 방법과, 다수를 배제하고 그들만의 공간에서 다수를 가리는 방법이다.

대중의 동원과 참여가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한다는 발상과, ‘지나친 참여’는 민주주의에 해롭기 때문에 동원을 자제하고 적절한 참여의 장벽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발상은 늘 공존해 왔다.   

이책의 저자들이 최소한 1970년대 이후 미국민주주의에서 주목한 것은, 후자의 민주주의가 제도화 될 수 있는 경로를 정당과 정치엘리트들이 ‘발견’했다는 점이다. 19세기 말 이래 엎치락뒤치락 했던 두 경향 가운데 후자의 경향은, 더 이상 대중을 동원하지 않고도 정부를 운영하고 집권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 방법은 정치자금의 모금과 선거 캠페인에서, 정부의 운영과 공공 정책의 전달에서, 정당 갈등의 해결과 정책 결정 과정에서 서서히 제도화된 어떤 결과들로부터 도출되었다.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은 능력 있는 개별 시 민들에게 소송과 로비, 관료 조직에 대한 특권적 접근을 제도화해 줌으로써, 평범한 시민들을 동원하지 않고도 다수가 되는 방법을 손 에 쥔 것이다.   


https://brunch.co.kr/@minnation/2621


https://brunch.co.kr/@minnation/2696





목차


서문

1_대중민주주의에서 개인민주주의로
현대적 시민 만들기
공공 행정의 새로운 과학
사회자본의 정치
누가 시민을 필요로 하는가?
개인민주주의의 짧은 역사

2_시민의 부상과 몰락
시민 행정가의 부상과 몰락
과세: 자발적 순응에서 자동화로
시민군 시대의 폐막
시민의 쇠퇴와 몰락

3_투표자 없는 선거
동원과 그 대안들
미국 유권자의 성장과 쇠퇴
동원의 해체: 혁신주의의 유산
부분적 재동원: 뉴딜
1960년대: 시민권, 베트남전쟁 그리고 ‘위대한 사회’
선거 동원인가, 새로운 정치인가?
새로운 정치의 성숙

4_오래된 후원 관계와 새로운 후원 관계
제도적 동원
새로운 후원 관계
판사석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
제도 투쟁
폭로, 조사, 기소
2000년 대통령 선거
가상의 시민권: 여론조사
유권자에서 가상의 시민으로

5_흩어져야 산다
정부는 어떻게 이익집단들이 지지자를 동원하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왔는가
공공 정책과 사적 정부

6_대중에서 메일링 리스트로
뉴딜과 이익집단 자유주의
노동의 문제: 운동이냐, 이익이냐?
이익 옹호 단체의 급증

7_개인민주주의의 법리학
법원의 역할 확대
소송과 ‘소수의 음모’
공모적 해결: 소송을 통한 과세
보호 이익의 영역: 멸종 위기종과 위기에 처한 이해관계
소송을 이용한 보복
동원과 대표
소송을 통한 정책 결정: 집단소송
민간 검찰
사법 권력

8_회원 없는 운동
시민권에서 적극적 차별 시정 정책으로
환경보호에서 님비로
시민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9_공공의 것을 민영화하기
민영화
정부 지원 기업: 공적 권력과 사적 목적
공공의 것을 민영화하기
바우처
비영리 부문: 고객과 자원봉사자들
지방분권

10_누가 시민을 필요로 하는가?
개인민주주의의 정치적 경향
해결책이 문제다
한 시대의 끝



책소개

ㅣㅏ

시민에서 고객으로, 주권자에서 자원봉사자로, 대중민주주의에서 개인민주주의로 전락한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최고의 비판서

이 책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인상적인 비판서이자,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왜 나빠졌는가를 비춰 주는 거울 같은 책이다. 혹자는 이 책을 “(미국판)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주어를 미국에서 한국으로 바꾸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크렌슨과 긴스버그는 미국 민주주의가 나빠진 이유로, 정부 혹은 정치엘리트들이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의 능동적이고 집단적인 지지에 의존하지 않고도 권력을 유지하며 행사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대중이 정치에 무관심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정치 엘리트들이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혁신, 새로운 정치 혹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이 같은 변화는 정치를 집단으로서의 대중이 아니라 정치에 접근할 수 있는 의지와 지식과 능력을 가진 개인들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필자들은 이를 ‘개인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2세기에 걸친 미국 민주주의 쇠퇴의 역사와 중요 문제를 한 권으로 잘 정리해 내고 있다. 또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 가운데 하나는 번역자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각종 사건, 법률, 단체, 개념 등을 꼼꼼하게 옮긴이주로 달아주었다는 점인데, 미국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복경


2003년부터 5년간 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으로 일했고, 2009년부터 현재까지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한국의 선거, 정당, 정치과정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며, “국회 위원회 제도의 기원에 관한 연구: 제헌국회 및 2대 국회를 중심으로”(2010), “투표 불참 유권자 집단과 한국 정당 체제”(2010), “대통령의 정책 결정 변화에 대한 집권당의 반응: 17대 국회 공정거래법 개정 사례 연구”(2011)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역서로 『민주주의, 약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2007),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2013) 『한국 1세대 유권자의 형성』고, 『양손잡이 민주주의』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시민에서 고객으로, 주권자에서 자원봉사자로,
대중민주주의에서 개인민주주의로 전락한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최고의 비판서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의 능동적이고 집단적인 지지에 의지하지 않고도, 전쟁을 수행하고 세금을 걷고 정책을 집행할 수 있게 됐다. 정치 엘리트들은 대중의 정치 참여에 의지하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며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은 유권자 대중을 주변화했고, 점차 법원과 관료들에 의존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다. 우리는 이런 경향을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와 구분해 ‘개인 민주주의’(personal democracy)라고 부른다. 대중민주주의는 엘리트들이 정치의 장을 장악하기 위해 비엘리트들을 동원해야 했던 방식이었다. 반면 현재의 경향이 ‘개인적’인 이유는 통치의 새로운 기술들이 대중을 사적 시민들의 집합으로 해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경험은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점점 개인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를 비춰주는 거울 같은 책
이 책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인상적인 비판서이자,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왜 나빠졌는가를 비춰 주는 거울 같은 책이다. 혹자는 이 책을 “(미국판)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주어를 미국에서 한국으로 바꾸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크렌슨과 긴스버그는 미국 민주주의가 나빠진 이유로, 정부 혹은 정치엘리트들이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의 능동적이고 집단적인 지지에 의존하지 않고도 권력을 유지하며 행사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대중이 정치에 무관심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정치 엘리트들이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혁신, 새로운 정치 혹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이 같은 변화는 정치를 집단으로서의 대중이 아니라 정치에 접근할 수 있는 의지와 지식과 능력을 가진 개인들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필자들은 이를 ‘개인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시민에서 고객으로
역사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전쟁에 참여하고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또한 고통스러운 대중 투쟁의 결과로서 법적 권리와 투표권을 비롯한 정치적 참여의 권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수천만의 평범한 시민들이 정부의 세입 기반에 포함되고 시민군이 되면서, 대중의 순응을 장려하고 이해 갈등을 중재할 대의 기구와 정치제도의 힘도 함께 커졌다. 바꿔 말하자면 대중의 정치 참여가 확대된 것은 당시 정부가 평범한 시민의 지지와 협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시민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들은 언제부터인가 정치인들의 수사(rhetoric)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예컨대 미국의 전 부통령 엘 고어의 “연방 정부 성과 평가 위원회”는 시민이라는 용어 대신 ‘고객’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시민이 고객으로 변형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민은 정부를 소유하는 존재인 반면, 고객은 정부로부터 쾌적한 서비스를 받는 존재로 간주될 뿐이다. 시민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창조된 집단적 존재로서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하지만 고객은 시장에서 개인적 필요를 충족하려는 개별 구매자들이다. 공무원들은 고객 친화적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항상 친절하고 좀 더 ‘이용자 친화적’이 되도록 교육받으며, 공공 기관들은 고객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고객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다.

시민에서 자원봉사자로
필자들에 따르면, “전통적인 시민교육은 학생들이 급우들과 학급?팀?학교를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료 시민들과 더불어 나라를 통치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이제 많은 학교에서 선거 연습보다는 ‘학생 봉사 학습’으로 분명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초?중등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대학생들에게 자선단체, 시민 단체, 공익단체에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원봉사자’가 되도록 교육한다. 학생들은, 투표하는 대중이 한때 정부에 대해 요구했던 공공서비스, 주로 정부가 방치했거나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서비스들을 생산하도록 요구받는다. 봉사 학습이 주권 행사 훈련을 대체해 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부에 대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수행하며, 그럼으로써 서비스를 실천하고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개인적 만족감과 확신을 얻는 것이다.”

왜 시민은 주변으로 밀려났는가?
“시민은 국가와 정치 엘리트들이 필요로 하고 동원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이끌어지는 것이다. 만약 시민들이 수동적이고 정치에 무관심하고 개인적 관심사에 매몰되어 있다면, 그 이유는 우리의 정치 질서가 더 이상 정치에 대한 집단적 참여의 유인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국가가 더 이상 과거처럼 시민을 필요로 하지 않거나, 시민들이 정치 엘리트들에게 성가신 존재가 되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시민적 ‘포상’이 국가가 감당하기에 너무 값비싸졌기 때문일 수 있다.”

시민의 도움 없이도 통치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의 발견
시민의 시대가 끝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시민의 도움 없이도 권력을 유지하게 하는 통치의 새로운 기술들이 대중을 사적 시민들의 집합으로 해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중민주주의의 부패를 일소하기 위한 혁신주의 시대의 개혁이 가져온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혁신주의자들의 반反정당 개혁은 대중의 능동성을 수용할 수 있는 정부의 능력을 확대한 것이 아니라 축소시켰다. 그들은 정당 체제를 약화시켰고, 유권자 등록제를 통해 수백만 이민자들과 노동계급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박탈했으며, 대중의 지지가 아닌 전문가에 기초한 관료제가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 예비 선거제의 도입은 공직 후보 지명에 대한 정당 지도자들의 통제력을 약화시켰다.
이 책이 열거하고 있는 새로운 통치의 기술은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것들로 이미 활용되고 있거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들이다.

- 공익소송, 이익집단 소송: 민권운동이 한때 활용하는 방법이었으나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소송은 민주정치의 대체물이 되었고, 소송의 주요 수혜자들은 더 큰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경쟁하기를 꺼려하거나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익들이다. 대변자를 자임하는 이들이 정치의 영역이 아닌 사법의 영역에서 소송을 통해 정책을 결정하려 할 때 소수를 위한 개인민주주의는 다수를 위한 대중민주주의에 우위를 점하게 된다.
- 제도적 동원: 민주당은 정부 사회 서비스 기관과 규제 기관, 소위 지원금 경제로 서로 엮인 비영리단체, 공공 기관 및 유사 공공 기관, 일군의 공익단체와 뉴스 매체의 주요 부문에 진지를 구축했다. 반면 공화당은 군사 및 국가 안보 관련 기관, 이와 관련된 민간 기업과 민간 부문 이익집단, 종교단체, 그리고 보수 성향의 신문, 잡지, 싱크 탱크 및 라디오 방송국을 포괄하는 대중 매체 부문에 지지 기반을 건설했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확보된 진지들은 정치권력을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유권자 동원이라는 방식을 일부 대체해 왔으며, 치열한 정당 간 갈등과 낮은 유권자 참여라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 폭로, 조사, 기소: 각종 스캔들을 폭로하고, 특별검사 등을 통해 조사하고, 법원으로 사건을 가져가는 방식. 워터게이트 논란 과정에 등장, 공화당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한 민주당의 전략이었으나, 이후 클린턴 대통령을 공격하는 공화당의 무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유권자를 동원하거나 유권자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상대 정당의 공직자를 몰아내거나 상처를 입힐 수 있게 되었다.
- 민영화와 바우처 제도는 공공 부문이 관료적 비효율성과 낮은 반응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변화된 정책들은 시민권이 침식되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했다. 바우처 제도와 ‘선택’ 프로그램은 공공 정책을 사적 결정으로 해체시키도록 고안되었다. 예컨대, 학교 바우처 시스템에서 자녀 교육에 불만을 가진 부모는 불평을 하거나 다른 부모들과 연대해서 항의를 조직할 필요가 없다. 그저 좀 더 만족스런 다른 학교로 아이들을 보내는 선택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혼자 정치하기: 개인민주주의

개인민주주의는 집단적 공격으로만 돌파할 수 있었던 정치의 장벽을 낮춘다. 정보의 자유, 정보공개법, 공청회 의무화, 입법 예고제와 공개 설명회 규정, 위원회 등의 ‘시민’ 대표 할당제, 공공 기관의 ‘전화 상담 서비스’,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복지 서비스 등 이 모든 것과 기타 정책들은 시민들이 혼자서 정치를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외견상 시민 친화적으로 보이는 개인민주주의의 이런 장치들이 갖는 주된 효과는 미국 정치에서 시민의 역할을 위축시켰다는 점이다. 한때 정부 권력자와 정책 결정자가 되기 위해 지지자를 동원했던 조직가와 엘리트들은, 이제 소송을 통해 예전과 유사하거나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도자들이 더 이상 대중 동원 전략을 선호하지 않게 되었을 때, 시민들에게는 혼자서 이용할 수 있는 장치들이 남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수단들은 약화된 시민권 행사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 집단적 목표를 위한 정치동원을 낳는 경우는 드물다.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결과는 서비스 개선을 위한 개인행동이나 개별화된 처방이다. 시민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정치적 이슈를 제기하거나 공공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재를 직접 생산하거나 봉사 활동(환경 정화 또는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 따위)을 하는 것이다. 개인민주주의의 이런 차원은 개인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나 지역사회에 분명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민주주의의 실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개인민주주의는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개인들을 위한 것
"오에이치피OHP 필름 두 장을 겹치듯이 이 두 가지 현상을 겹쳐 놓아 보면, 한국 민주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정당과 정치 엘리트의 정치 동원은 터부시되고 법과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며 점점 더 동원을 제약해 온 상황에서, ‘행동하는 양심’과 ‘깨어 있는 시민’만이 정치의 공간을 독점할 때, 그 이면에 동원되지 않으면 참여조차 불가능한 시민들의 모습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개인으로서도 정치에 참여할 능력을 가진 일부 시민들은 여전히 정당의 중요한 동원 대상이며, 정치의 공간에 자기 자리를 가진다. 반면 정당도 동원을 포기했고 혼자서는 ‘자발적 참여’를 할 수 있는 조건이나 능력이 없는 시민들은 점점 더 정치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어떤 시민들은 정치에 불만이 있으면, 혼자서도 언론에 폭로할 수 있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관료와 의회에 로비를 할 수 있다. 혹은 자신처럼 능력을 가진 동료 시민들을 조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시민들은 동료 시민들과의 유대, 소통이 없으면 정치 정보를 해석할 수 없고, 정치 행동에 감히 나설 수 없으며, 시간과 돈과 품이 드는 소송은 생각할 수도 없다. 불만이 있어도 다른 동료 시민들을 조직하기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없으며 방법도 알지 못한다. 이들과 함께 정치 정보를 해석하고, 조직화 비용을 감당하며, 행동에 나섰을 때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지원이 없다면, 이들이 정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때 미국 민주주의에서 그 역할을 감당해 주었던 것이 정당과 정치 엘리트의 동원이었다. 그들은 평범한 시민들의 힘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법을 바꾸어 노동조합을 조직해 집단행동에 나서기 쉽도록 했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법적인 구제를 받도록 보장했으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그들에게 필요한 정치 정보를 제공했다. 이런 도움을 바탕으로 시민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고, 같은 처지에 놓인 동료 시민들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대안을 모색했으며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평범한 유권자들은 정치에 불만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이 점에서 한국이나 미국의 유권자들은 다르지 않다. 그런 정당과 정치 엘리트를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자리 정치 비평과 정치로부터의 철수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물론, 유권자 2명 가운데 1명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현재의 상태를 어떤 빅브라더가 불순한 의도로 기획하고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은 최선의 전략적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치 동원의 노력을 해태하거나 포기한 것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옮긴이, “이 책은 무시당하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은 ‘물질적 필요가 너무 중요하고 절실해서 탈물질주의를 향유할 능력이 없는, 정당이 보내는 우편 목록에조차 이름이 올라 있지 않고, 투표하지 않아도 굳이 관심 가져 주는 이가 없으며, 자신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이익집단으로부터 초대받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대표해 진행되는 집단소송의 원고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 있지 않으며, 그저 여론조사로 대표되는 가상적 시민(virtual citizen)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또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나라를 위해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애국적 열정을 간직하고 있고, 이따금씩 역사에 나타나는 ‘열정의 순간’을 함께하지만, 곧 부모이자 생활인으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벤저민 긴스버그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읽힌다는 미국 정치 교과서(We the People: An Introduction to American Politics, 현재 8판까지 출간)의 공저자로, 이 책에서 매튜 크렌슨과 함께 2세기에 걸친 미국 민주주의 쇠퇴의 역사와 중요 문제를 한 권으로 잘 정리해 내고 있다. 또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 가운데 하나는 번역자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각종 사건, 법률, 단체, 개념 등을 꼼꼼하게 옮긴이주로 달아주었다는 점인데, 미국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 매튜 A. 크렌슨(Matthew A. Crenson)


1968년 시카고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38년간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이 대학의 명예교수이다. 긴스버그와 함께 2002년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2007년에는 Presidential Power: Unchecked & Unbalanced을 함께 썼다.
주요 관심 분야는 미국 정치사이며, 저작으로는 The Federal machine: Beginning Federal Bureaucracy in Jacksonian America(1975), Building the invisible orphanage: A prehistory in American welfare system(1998) 등이 있다.      



저자 : 벤저민 긴스버그(Benjamin Ginsberg)


1973년 시카고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코넬대학교에서 존스홉킨스 대학교로 옮겨와 현재 이 대학의 교수로 있다. 긴스버그는 미국 정치에 관한 논쟁적 저술들을 다수 발표한, 당대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학자로 꼽힌다. 대표 저서로 크렌슨과 공저한 두 권 이외에, The Captive Public: How Mass Opinion Promotes State Power(1986), Politics by Other Means(1990, 마틴 쉐프터와 공저), The American Lie: Government by the People and other Political Fables(2007) 등이 있다. 시어도어 로위(Theodore J. Lowi), 케네스 쉡슬(Kenneth A. Shepsle)과 공저한 American Government: Freedom and Power은 미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정치학 교과서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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