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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Nov 28. 2022

의식과 시선사이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인간은 현상을 살고 언제나 해석을 거친다. 해석을 잘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기에 미래에 바뀔 가능성도 없게 된다. 우리가 사는 삶의 대부분은 '매칭과 대칭'의 세계다. 누군가와 매칭되어 있고, 어떤 일은 대칭적으로 다른일 때문에 일어난다. 문제는 잘못된 매칭과 어긋난 대칭 때문에 생긴다. 내가 했던 일은 누군가에게 잘못 매칭되면 그 사람에게는 재앙이 된다. 또한 누군가에게 비대칭인 일이 대칭처럼 여겨져서 매칭되어 버리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결국은 버거워져서 포기하게 된다. 매칭이 끊기는 지점에서 터지는 문제는 개인에게는 폭력이 되고 사회에는 손실이 된다. 이렇게 압축되고 비대칭인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서 푸른빛이 감도는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도 영실코스 중턱에서 바라본 풍경


보이는 것들은 보이게 만드는 프레임때문에 가능하다. 그 프레임은 일종의 주관이라고 하는데 어릴적부터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일정한 규격'이 생각 속에서 프레임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프레임이 계속 해석되지 않고 직관처럼 사용되어 버리면 사람은 '일정한 편견'을 진리로 생각하고 살아가게 된다. 주변에 옹고집이나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 자기도 힘든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삶을 재해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견으로 재빠른 해석의 영역으로 도망가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의식에 쌓인 자신에 대한 평가절하와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일들에 대한 자기합리화다. 인간은 어느순간이 지나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고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다. 이때 가장 빈번하게 인기있는 프레임은 '자기합리화'이다. '어쩔 수 없었어!', '그때는 그랬지?'라는 합리화덕분에 인간은 점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욕망으로 살아가게 된다. 아니 다른 사람의 편견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먼 바다에서 반짝이는 푸른빛을 발견했다. 너무 푸르러서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자연의 것. 인간은 생각하는 것과 상징하는 언어 그리고 실재의 움직임을 하나로 엮어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생각과 말하는 것 그리고 삶이 일치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진정성'은 그래서 자연과 닮아 있다. 티내지 않아도 반짝이고, 반짝여도 자랑하지 않는다. 본연의 것으로 돌아간 이들에게서 보여지는 눈빛과 목소리의 떨림은 언제나 다른 이들과 공명을 이루게 된다. 자연이 마치 이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거대한 심상을 제공하고도 아무런 자랑도 또 기대도 없는 것처럼. 바다처럼 넓고 산처럼 높은 사람들의 태도는 언제나 자연과 같다. 영롱한 푸른빛이 감도는 영혼을 가진 이들에게서만 나오는.


빛이 너무 좋아서 앞으로 잠시 멈춰섰다


보는 법의 교육이 필요하다. 인간은 반드시 2가지를 멈출 수 없다. '의식'과 '시선'이 그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고, 자신이 바라보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현상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가혹가다 소수의 사람들만 지나간 과거를 해석하고 다시 항로를 수정하듯이 자신을 돌아본다. 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생각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보는 방식이 다양할수록 생각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반대로 생각이 확고해질수록 보는 방법도 확실하게 정해진다. 그리고 이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이제는 자유롭게 생각을 통제하거나 보는 관점을 통제한다. 그래서 보면 안되는 것들을 스스로 통제해서 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들은 '할 수 없음'의 영역으로 남기고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것이 결국 지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표선 앞바다에서 보이는 푸르른 빛


해가 가리웠다가 방안을 환하게 비추어 주었다. 마치 내 마음의 그늘이 사라진듯이 새로운 하늘이 새로운 태양으로 가득했다. 삶 속에서 비유를 사용하지 않을 수록 우리의 삶은 더 명료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들에 갖히게 된다. 그 삶에 갖힌 이들이 소리지르는 것을 보는 것은 여간 힘겨운게 아니다. 눈으로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 콧소리로 삶을 계속 도망치는 사람들, 표정으로 실룩실룩 대면서 인간이길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게서 우리는 어떤 절망감을 느낀다. '인류애'가 사라지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자연이 주는 빛이 필요하다. 진정성을 가진 인간으로 마음 속이 환하게 밝아오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진정성. 그 진정성은 결국 의식과 시선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윗새오름에서 느껴지는 영롱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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