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장_메시지 성경
사람들의 흠을 들추어 내거나, 실패를 꼬집거나
잘못을 비난하지 마라
너희도 똑같은 대우를 받고 싶지 않거든 말이다
비판하는 마음은 부메랑이 되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네 이웃의 얼굴에 묻는 얼룩은 보면서
자칫 네 얼굴의 추한 비웃음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네 얼굴이 멸시로 일그러져 있는데
어떻게 뻔뻔스럽게
'내가 너의 얼굴을 씻어 주겠다'라고 말하겠느냐
이 또한 동네방네에 쇼를 하겠다는 사고방식이며
자기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남보다 거룩한 척
연기하는 것이다
네 얼굴의 추한 비웃음부터
닦아내라
그러면 네 이웃에게 수건을 건네줄 만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마태복음 7장_메시지 성경
1930년대 소설 가스등에서는 주인공인 남편이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서 아내를 세뇌시킨다
"그건 너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여보 그래도 저녁만 되면 가스등이 희미해지는게 이상해요"
"기분 탓일꺼야!"라면서 자신의 범죄를 덮기 위해
아내의 심신이 불안정함으로 몰고간다
결국 아내는 신경쇠약에 걸리고
모든 판단을 중지하고 남편에게 의지하게 되면서
영화 가스등은 타인의 정서적인 지배를 통해서
그의 판단능력을 마비시키는 통제방식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 한참 회자되고 있는 가스라이팅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사회가 불안해지고 불확정성이 높아질 수록
겁쟁이들은 늘어나고
자신이 가진게 더 많아지고 지킬 것이 더 많아지면
겁쟁이고 되어 간다
그럴 때 흔하게 쓰는 방식이 바로 가스라이팅.
나의 잘못이 마치 타인의 잘못인양 가장한다
요즘들어 가스라이팅을 많이 당한다
사람이 사람을 조종하고 통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고 또한 얼마나
인류애가 반쪽나는 일인지 슬푸고 힘들다
그러면서 조금씩 가스라이팅의 방식과 원인
증상과 상황을 살펴보면서
내 자신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정도는 다르지만 어느정도는 겁쟁이인 자아가
자연스러운 방어기제로 만들어 놓는
책임전가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인격이 되는 과정.
자기 객관화가 희미해져가는 사이에
내 마음 속에 그린라이트는 가스라이트가 되어 간다
어린시절에 부모님과 사회로 부터 받은 가스라이팅이
부정적 전이에 의해서 자신의 무기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사회에 적응하면서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사람들 주위에서
점점 승진에 밀리고 일폭탄을 맞으면서
스스로도 가스라이터가 되어 가는 사람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라면서 결단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나 역시 모두가 하는데
왜 나만 당하고 있어야 하나?라는 고민이 든다
그런데 한가지는 기준이 잡히고 그것이 가스라이팅인줄 알면
자신이 그것을 할 때 스스로는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하다는 느낌, 이건 아니라는 느낌이
잠시 살아있는 양심에 스쳐지나가고
결국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내가 되는
과정에서 점점 멈칫하지 않게 되는 자신을 발결할 때.
돌아가라는 예수님을 만난다
여기는 길이 아니라는 표지판을 들고
서 계신 예수님을 만나서 주저리주저리
하소연을 하다보면 조용히 안아주시며
사랑한다고 연신 말씀하신다
그래서 또 그 자리에 조용히 앉는다
갈 길을 몰라 헤메이는 것이 아니라
갈 길은 너무 뚜렷한데 돌아가기가 너무 멀어서 그런다
영혼의 아침이 찾아오기까지
몇일 밤을 고민하고 또 울고불고.
다시 말씀을 꺼내서 읽고 먹고
울고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이제는 쇼를 멈추고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이 온다
일그러진 얼굴을 조금은 환하게 피어 놓고
씁씁한 비웃음을 거둔다
영혼 깊숙히 닻을 내리고서는
중심이 있는 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말과 눈에 빛이 나기 시작한다
겁쟁이가 되어서 누군가를 통제하기보다는
내가 받았던 사랑처럼 나도 그를 안아주고
이해해주는 것을 시도해본다
사랑은 오직 전이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가스라이팅은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극복된다
사랑없음에서 시작되는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해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