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장_메시지 성경
나중에 예수께서 자신을 가까이 따르는 이들과
함께 마태의 집에서 저녁을 드실 때에
평판이 좋지 않은 인물들이 많이 와서
한데 어울렸다
예수께서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발끈하여 예수를 따르는 이들을 비난했다
"사기꾼과 쓰레기 같은 인간들과 가까이 지내다니,
당신네 선생의 이런 행동이 무슨 본이 되겠소?"
예수께서 들으시고 반박하셨다
"의사가 필요한 사람이 누구냐?"
건강한 사람이냐
병든 사람이냐
가서 내가 원하는 것은 자비이지 종교가 아니다라는
성경말씀이 무슨 뜻인지 헤아려 보아라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소외된 사람들을
초청하려는 것이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비위나 맞추려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9장_메시지 성경
평온한 환경에서 작은일에도 계속해서
칭찬을 받아온 사람들에게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인식 과잉과 나르시시즘이 대부분이고
간혹가다가 가스라이팅도 발견된다
자신이 원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면서도
자신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사이에
자신이 누군가보다는 더 낫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으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어느정도 지나면
자존감이 자신감이 되고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더 넓히기 위해서
더 많은 이들과 만나고 또 즐겁게 소통한다
보여지는 것에서도 자신감을 가지면서는
더더욱 자신을 벗어나는 법을 알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펼치고 있는 영향력의 범위만큼이
딱 자신의 한계가 되는 것이다
평생 테두리를 나가보지 못한 이들에게
테두리 바깥에서 들어오는 이들의 존재는
접근 자체만으로도 위협이 되고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이 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이긴다', '세상과 싸워서 힘들다'라면서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라거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길로 가게 하신다고 말한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가 지날 무렵에는 자인식과잉이 점점 생기고 있었다
공부도 친구들도 점점 내 중심으로
모이는 것 같았고 점점 영향력도 넓어져 갔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른들과 친구들의
관심을 한눈에 받게 되었다
하나님도 나를 특별히 사랑해서
나에게 특별한 계시와 소망을 주셨다고 믿었다
그 덕분에 더 공부도 열심히하고
사람들을 성심껏 사랑한다는 미명아래 나의 성격도
누구에게나 관대하고 아무하고나 잘지내는
그런 사람이 되어 간다고 믿었다
자신 스스로를 믿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자신감에 차서 하는 표정과 웃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내가 가진 꿈도, 비전도, 소망도 사실은 한줌의 재와 같이
후 불면 날아가 버리고 다시 주워 담으면
또 스르르르 사라져 버렸다
당연히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방어기제가 드러나고 사람들을 어느정도는 속여서
자신의 영향력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망했다 그 모든 것이 망했던 29살.
비로소 이 인생에서 내가 중심이 아니고
결국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는 척 하기도 참 오랫동안 그랬던 듯하다
아주 오랜시간 스스로를 속이고 살았다
그러다가 오늘과 같은 말씀을 만나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원래는 '아 예수님이 그러셨으니 나도
그렇게 죄인들과 어울려야지'라면서 예수님이 곧 내가 된다
그런데 자기중심에서 벗어난 이들의 깨달음은
'아 내가 그 죄인인데, 거기에 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라는.
무리하게 예수님처럼 산다고 하는 것이 결국
내가 그 사람들을 품어야지 하는 '교만'으로 나타난다
그러다가 가스라이팅도 하고 스스로도 당하고
하나님 원망하다가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없다라고까지 하는.
물론 이렇게 극단적으로 가지는 않지만
자기중심적인 삶에 말씀이 들어오면 그 주인공으로
다 자신을 앉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죄인이었고, 외인이었고, 바깥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그리스도가 오늘 다시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내게
'의사가 필요하다'하시면서 부르는 것을 듣는다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이
사실은 복음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경계를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복음 말이다
겸손, 사랑, 인내, 충성, 오래참음과 같은 것들은
사실 중심성이 없어야만 가능한 것들이다
그것들이 목표가 되는 순간 이미 실패다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자체로 실패다
소외된 사람이, 배제된 사람이
초청 받았다는 그 기쁨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