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뿌린 씨앗이 희망이 될때까지
인간은 회고적인 존재이다. 과거를 돌아볼 줄 알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존재이다. 미래를 잘 보는 사람들은 과거를 그 만큼 더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부터 흘러온 맥락을 읽으면 현재를 지나는 미래에 어떤 상황이 도래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인간이라는 존재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 모두가 사람의 마음을 통하고 있다. 마음은 선택과 반응에 의해서 하나의 작은 길이 만들어지고 점점 넓어진다.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불보듯 뻔하다. 인간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걸었던 마음의 길을 다 뒤집어 엎는다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가던 길을 돌이켜 다른 길로 접어든 것을 뜻한다. 목적지가 달라진 인생은 마음이 이미 달라져 있는 것이다.
인생은 매일매일 밭에다가 씨를 뿌리는 농부의 삶과 같다.
상처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마음은 방어기제로 가득하다. 그래서 다른 상황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예상한 미래를 완성해 가느라 진실로 단단한 마음이 되어 버린다. 누군가에게 홀대를 받았던 기억, 부모님에게 무시를 당하고 폭행을 당했던 사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외로워졌던 과거. 이 모든 것들은 마음을 아주 단단하게 만든다. 매일매일 씨를 뿌려도 그 마음에는 어느것 하나 정착하지 못하고 씨앗이 말라버린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은 새들이 먹어 버리고 동물들이 물어 간다. 인생에 주어진 희망이라는 씨앗이 매일 매일 뿌려지는데도 불구하고 단단한 마음은 자기 안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돌짝밭과 같은 마음이 있다. 마음 속에 이미 큼지막한 편견들을 가지고 사는 마음이다. '이것은 절대 안되고, 이것은 언제나 되고, 이것은 언제나 내꺼고, 저것은 내가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야'라는 마음이다. 편견은 한 쪽으로 치우친 마음이다. 그래서 인생의 시간이 씨앗으로 그 마음에 뿌려지는 편견의 어느 틈에선가 흩날리다가 곧 말라 비틀어져 버린다. 오히려 씨앗을 싹틔우는 기쁨이 아니라 자신의 편견을 지켜낸 것을 '자기다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발전은 없고 오히려 편견이 강해져서 고정관념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 마치 돌짝밭과 같은 마음이다.
유혹에 약한 마음이 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싶고. 그런데 그것을 안하면 죽지는 않지만, 그래도 꼭 하고 싶어서 자신의 욕구가 자신인줄 아는 사람이 있다. 마치 가시 엉겅퀴가 마음속에 피어난 사람같다. 그 사람은 언제나 '이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염려하는 마음 때문에 결정을 쉽게 못하고, 결정을 했어도 또 쉽게 바뀐다. 어디하나 정하지 못하고 유혹에 흔들리는 마음을 가진 이들. 그 유혹은 가시 엉겅퀴같이 잡으면 자신에게 가시만 남기로 실제로 잡히는 것은 없는데도 말이다. 그 가시는 권력이 되기도하고 소유가 되기도 하고, 성적인 유혹이 되기도 한다. 곧 염려가 휘몰아친다. 그래서 유혹에 넘어간 자신을 원망하면서도 또 다른 유혹을 찾아나서는 마음이다.
깊이 뿌리내린 마음은 무엇일까?
어떻게 그런 마음이 가능할까? 마음이 좋아서, 매일 주어지는 희망의 씨앗을 심고 물주고, 가꾸고 싹피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마음은 언제나 잘 갈려진 봄날의 밭과 같다. 계속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가진 편견이 없는지 살펴본다. 자신이 넘어가는 유혹이 있다면 절연히 못 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환경을 바꾸어 유혹을 이겨낸다. 자기확신이 아니라 자신이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은 계속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가꿀 수 있게 된다. 심지어 과거를 회상하면서 예전에 자신이 보지 못했던 상처나 과정관념을 찾아내고 물어보고 뒤집어 본다. 그러니깐 좋은 마음은 계속해서 땅을 갈아 엎는 사람과 같다. 이리저리 뒤집어 보는 과정에서 밭에 돌들이 걷어지고 엉겅퀴가 제거되고 단단하게 굳어진 것들도 잘게잘게 풀어진다.
이러한 마음에 깊게 뿌리내린 씨앗들은 그 사람을 풍성하게 만든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잘 가꾸어진 마음에 인생의 사건들을 잘 심어 놓고 거기에서 좋은 것들을 열매로 맺는다.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삶 속에서 발견한 지혜를 마음 속에 잘 심어서 결국 남을 도울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나무로 자란다. 누구나 그 지식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게 풍성한 삶으로 초대하는 삶을 산다. 자유가 풍성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로 유혹을 쉽게 이겨내고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 책임을 진다. 깊에 뿌리내린 사람, 그 마음에 열매가 풍성히 열려 있는 사람.
무게가 없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이들은 '가속도'가 너무 붙어버린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지나가니깐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다. 멈추면 되는건가? 그러나 그럴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는 이상 인간의 삶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리듬'을 줄 수 있다. 리듬은 삶의 무게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생각의 무게를, 감정의 무게를, 자유의지의 무게를 두는 순간 마음속에서 다양한 음표가 찍히면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마음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너무 빨라진 마음에 리듬을 부여하려면 무게를 가져야 한다. 깊이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나에게 흘러나오는 감정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끔 가다가 푸르른 사람을 만난다.
가난하건 부자이건 상관없이 마음을 잘 가꾼 사람을 만난다.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는 빛이 나게 되어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시원한 이야기를 꾸밈없이 말하는 사람. 한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외치는 사람이 있다. 함께 있기만해도 푸르른 사람이 있다. 싱그러운 산소같은 사람이 있다. 있다. 다만 우리가 잘 못만날 뿐이다. 같이 있으면 그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미소가 생각난다.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 언덕위에 서 있었지만 위태롭지 않았던 사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사랑의 무게만큼 우리 마음은 다른 노래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인간이라는 취약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사는 이의 마음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이 뿌리는 인생의 씨앗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다. 그 희망을 심고 자라온 이들이 또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다. 그러니깐 돌짝밭에, 가시엉겅퀴 사이에, 메마른 길가에라도 계속해서 씨를 뿌리는 사람이다. 울더라도 씨를 뿌리고 말라 비틀어질 것 같아도 씨를 뿌리는 사람이다. 사실은 씨를 받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게 아니라 누군가 계속 이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도 언젠가 계속 씨를 뿌리는 희망을 풍성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겠지.
아름답게 시간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미소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