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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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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Aug 16. 2023

요구와 욕구 사이에서 피어나는 욕망을 붙잡고

마태복음 18장_메시지 성경

하나님나라는 종들의 빛을 정산하기로 한

어떤 왕과 같다


정산이 시작되자 빛이 십억원이나 되는

한 종이 왕앞에 불려왔다


그는 빚을 갚을 수 없었으므로

왕은 그 사람과 처자식과 살림을


몽땅 노예시장에 경매로

내다 팔라고 명했다


그 가련한 사람은 왕의 발 앞에

업드려 애원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다 갚겠습니다!

애걸하는 그 모습이 딱했던 왕은


빚을 탕감하고

그를 풀어 주었다


그 종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자기한테 십만원을 빚진 동료 종과 마주쳤다


그는 동료의 멱삼을 잡고는 당장갚으라!고 닦달했다

그 가련한 사람은 엎드려 애원했다


조금만 시간을 주면 다 갚겠네

그러나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를 잡아다가

빚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이 모든 일을 지켜본 다른 종들이 이를 괴씸히 여겨

왕에게 낱낱이 아뢰었다


마태복음 18장_메시지 성경




사회에서, 조직에서 나에게 요청되는

기대와 원함을 '요구'라고 한다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필요들을,

먹는 것과 입는 것, 안전한 것과 자기성찰과 같은


없으면 안되는 것을 우리는 '욕구'라고

말하고 욕구의 계단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요구'에서 '욕구'를 빼면

비로소 '욕망'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내가 필요한 것들보다 사회적으로 더 필요하다고

요청받게 되는 요구가 증가할 때 욕망이 증가한다


요구는 일정하게 사회속에서 기준이 되거나

여론이 되거나 유행이 되거나, 분위기가 된다


그러나 욕망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욕구를 넘어서는 것이라서


언제나 나중이 되어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내가 사람들 속에서 욕구도 아니고 요구도 아닌


욕망으로 내 자신을 넘어서려고 했구나

라고 하는 것을 느낄 때가 온다


대부분 이렇게 느꼈을 때는 늦었을 때가

많은 것이 인간의 삶이리라





아브라함 매슬로는 욕구를 5단계로 나누고

각각의 욕구는 하위단계의 욕구가 채워져야


상위단계를 추구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흔히 '욕구의 피라미드'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욕구는 사회적인 '요구'와 만나서

사람마다 제 각각의 '욕망'을 만들어 낸다


욕구는 언제나 '한계 효용 체감'을 경험하지만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요구'는 상황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명품을 좋아하는 문화가 '요구'가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하지도 않은 '욕구'를 넘어


욕망에 따라 명품을 갈망하게 된다

그래서 명품매장에 줄을 서 있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즐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요구는 바뀌기 때문에


자기가 욕망을 위해서 사용했던 시간은

두 다리를 잃어 버리고 어느덧 존재감이 사라진다




매슬로의 욕구단계를 따라서 올라가면

그에 따라서 요구와 욕망이 같이 따라온다


특히 자본주의는 '욕구'의 기본값을

자본에 두기 때문에 자본에 대한 요구를 늘리려고


다양한 광고와 심리적 기법으로

'욕망'을 생산해 낸다


자신이 욕망하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 있는 감옥이지만

욕망하면 할 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것


그러니깐 자본주의를 돌리는 사람들은

'요구'라는 고삐를 잡고 매번 채찍질을 하면서


사람들의 욕구를 넘어서 소비를 조장하는 일을

해야하도록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몇 세대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요구는 그 자체로 개개인의 욕망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고, 모든 사람들은 타자의 욕망으로 한다'


욕망을 통제할 수 없다고 믿어 버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고삐를 쥔 사람들에게 길들여진다


욕망하지 않을려면 요구에 대한

다른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빚을 탕감받은 종은

자신을 옭아메는 '요구'가 사라지자


자신에게 빚진 자에게 새로운 '요구'를

만드는 욕망의 화신이 되었다


자신의 욕구보다 한참을 높여 놓은 '욕망'이

요구의 한계를 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탕감받은 종은 이제 욕망과 요구가

하나가 되어서 자신이 다른 사람을 통제한다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용서를 빌던 행위가

자신에게 용서를 비는 사람들의 행위를 짖밟는 무게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더 짖누루게 되었다

요구와 욕망이 하나로 이어져 버린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하는 것들이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신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자신이 신이 되고 싶어한다


모든 것들의 통제에서 벗어났지만

모든 것들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사람


자신이 받은 용서에 집중하는 것 아니라

자신이 짊어졌던 통제력에 관심이 있는 사람


용서하지 않는 하인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나의 모습이 겹쳐지는 부분에서 나는 멈춰서 있다


다른 사람의 자유에 관심이 없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통제하는데 관심이 가는.


말씀 가운데서 용서받은 시간들이 떠오르고

나는 다시 펼쳐놓았던 생각을 붙잡아서


요구와 욕구 사이에서 피어나는 욕망을

붙잡고 그 이유를 묻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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