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나희덕_푸른밤
의식하지 않아도 같은 길에 서 있었고
의식하고 걸어도 다른 길이 아니었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처다보다가도
불현듯 도착한 곳은 너의 뒷모습이었다
태양이 뉘엿뉘엿 사라져가는 서쪽에서도
그 반대쪽에 동쪽의 너의 모습을 보았다
별을 보고 걸어도 같은 곳으로 향했고
달을 보고 달려도 다른 곳이 아니었다
나를 따라오는 별의 그림자처럼
너의 얼굴은 항상 어두운 나의 내면을 밝혀주었다
하나의 별이 의미를 잃고 사라지면
다시 너의 눈동자에서 그 별을 발견했다
글을 쓸 때도, 운동을 할 때도
나의 생각이 결국 머문 곳은 너였다
잊어보려 증오를 선택해보고
사라지게 만들려고 미움을 골랐지만
그 모든 마음이 빛을 다하고 나면
언제나 너의 앞에 도착했다
나의 생애를 돌아서 몇 바퀴를 지나고나면
너에게로 난 단 하나의 길만 남을 것이다
너가 모르는 이 길은 언제나
너에게로 향하는 길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푸름밤일텐데
나에게는 너의 밤이었다
민네이션_푸른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