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과 진옥출의 사랑을 보여주는 '파란나비' 북토크
인간은 상상을 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상상을 할 때 가장 기쁘고 즐겁다. 상상을 글로 쓴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과 두근거림이다. 아무것도 아닌 원고지에 새로운 인물과 배경을 그리고 그 안에 사건들이 발생하는 세세한 묘사를 해 나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된 느낌이다. 그래서 인간의 최고의 존엄성은 바로 '글을 쓰는 능력'이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북토크는 언제나 '작가'에 대한 궁금증과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북토크에 가면 책을 둘러싸고 있는 맥락을 이해하게 되고 그 안에서 작가가 어떻게 고민했으며 그래서 결국 그 결과로 그 작품이 나오게 되는 과정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오늘은 존경하는 스승님이자 선거제도 개혁의 동반자이면서 미래 교육을 함께 만들어가는 작가이신 최산 작가님의 북토크에 왔다. 큰 물줄기의 질문들을 몇개 해보고 참여자들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어릴적부터 소설가가 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재밌을 것 같고 멋있을 것 같아서요. 젊어서는 모르는 사람들하고 만날 때, 부담없이 만날때 저에게 뭐하는 사람이냐?라고 물어보면 '소설가'라고 소개하곤 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소설가 같다'고 했어요. 구체적으로는 창비에서 편집위원을 맡아달라고 해서 3~4년 정도를 했어요. 이때 다양한 소설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멋'을 느꼈어요. 소설가는 사실 글을 쓰기까지 힘들고 어려운 생활고를 넘어서야 하지만 항상 기뻐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게 멋있더라고요. 물론 아내들이 일을 하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소설가들이 상상하고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은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원래는 정치학에서 학자로 있다가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은퇴하면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 미친듯이 뛰어들었어요. 누군가는 미친듯이 해야하지 않나요?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이 목숨을 걸었죠. 누군가 사과과 맛있으면 왜 그러냐고 하면 '선거제도'때문이라고 했죠. 물론 당이나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하기도 많이 했죠. 20년정도요. 그런데 최근에 민주당에서 위성정당을 만드는 것까지 보면서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현타가 많이 왔어요. 친했던 의원들도 많이 돌아서고, 선거제도를 말하는 사람들이 왕따 당하는 것을 보면서 실망이 많았죠. 같이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돌아서고 혹은 외면당하는 것을 보면서 답이 안나왔죠. 심지어 가르치던 학생들도 변하는 것을 보면서 '포기'를 선언했어요.
10년~20년전에 선거제도 이야기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선배들이 항상 핀잔을 주었는데, 특히 제도가 아니라 '교육'이 바뀌어야 하지 않냐?고 했던게 기억났죠. 특히 정치학자인 저에게 '교육'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제가 20년전에 유치원생을 가르쳤다면 지금은 변화의 세력들이 되었을 것 같았죠. 그래서 다시 돌아보고 교육에 좀 집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거제도 개혁은 끝없는 개혁운동이지만 교육은 필요한 시기가 있었죠. 이것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걸어보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하고 깊은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을 좀 모아보았어요. 특히, 그 와중에 제가 하고 싶었고 또 해야할 것들을 찾아보면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2016년에 사실 중앙선관위에서 보수적인 곳임에도 불구하고 개혁안을 냈어요. 이게 처음으로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한 시그널이 되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매우 괜찮은 안이었어요. 그래서 양당의 정치인들도 반응을 보이고 매우 잘 될 것 같은 느낌이었죠. 분위기도 좋았어요. 그래서 그 당시 비례대표제 포럼 대표를 공동대표로 바꾸고 다음 세대를 일으켜줄 리더십을 넘기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분위기가 좋으니 소설을 잘 쓰면 무엇인가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할 듯해서 '청년의인당'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책을 냈어요. 밤을 세면서 정말 열심히 썼지만 반응은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저는 소설을 썼지만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았죠.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유로운 책을 쓰고, 글을 쓰면서 감동이 몰려오더라구요. 글쓰기가 너무 자유로운 거에요. 왜 창비 소설가들이 자유를 즐기고 재미있어하고 흥분하는지를 이제 제가 알 수 있게 되었죠. 사실 논문을 쓰는 것은 너무 어렵고 힘들어요. 재미없고 공학적이고 힘든데 소설은 그렇지 않았죠. 힘들긴 힘들지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자유!' 인간이 정말 이런 일을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행복한 소설가'로 살면서 교육운동을 하자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어요. 그래서 소설가 '최산'이 탄생하게 됩니다.
청년의인당이 저에게 습작이었어요. 청년들을 대상으로 쓰다보니깐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뛰지 않을까?이런 고민을 해보았어요. 그래서 습작을 장편으로 썼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깐 '시점'이 꼬이는 거에요. 제가 어떤 관점에서 써야하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하는데 쓰다가 돌이켜보고, 다시 써보고 했어요. 청년의인당은 하루에 5시간정도를 썼어요. 글쟁이로서의 소양이 내제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매일 1년 반을 그렇게 썼어서 사실 다음 책에서는 조금 쉽게 써보자라고 생각했어요.
대학교 교수직을 관두고 지금은 소설가 혹은 작가라는 정체성으로 살고 있어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까지 안정적인 노후를 관두고,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고민이 있었죠. 사실 학자로 사는 것은 오히려 쉬워요. 학자들은 논문쓰는게 가장 쉽죠. 기존의 이론들이 든든하게 받혀주고 같은 연구를 하는 동료들이 쓴 것들을 레퍼런스로 달아서 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소설은 너무 달랐어요. 사실 이 모든 것은 허구이지만 이 허구가 개연성을 가지게 될려면 어떤 때는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 몇일의 자료조사나 상상력을 들여야 할 일들이 생기거든요. 이게 정말 쉽지가 않았어요. '작가로 사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살고 있더라구요. 한 문장을 살리기 위해서 완전히 몰입하는 거죠.
그에 비하면 저는 완전히 사회와 담을 쌓지는 않았고, 이런 저런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보았어요. 몰입하기 위해서 사회에서 여러가지 일들을 그만두어야 하는가라는 생각도 하죠. 그런데 오히려 작가는 사회와 계속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너무 몰입하다 보면 오히려 상상력에 저주가 발생하는 것도 같아요. 가끔 어떤 작가들은 너무 상상력에 몰입한 나머지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것도 같아요.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언젠가는 이 모든 사회적인 네트워킹과 미션을 다음 세대에 넘기는 일이 생겨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작가로서 책을, 소설책을 그렇게 많이 읽지는 못했어요. 요약본을 보던가 그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오웰'의 문체와 시점이 저에게 가장 마음이 들어요. 내가 해야하는 말을 조지 오웰이 이미 하고 있는 것도 같고, 또 그가 세상을 보는 시점도 저랑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조지오웰의 소설들이 가장 저와 비슷하고 또 잘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그런 계기는 없었어요. 저는 학부는 법학이었고, 유학가서는 정치학을 했어요. 교수님들이 저에게 글쓰는 방식이 '정통적'이지는 않다고 말해주셨어요. 오히려 전통이 없어서 누군가의 문체나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던 것 같아요. 어딘가에서도 저는 전통이나 눈치를 봐야하는 것이 없었기에 자유롭게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이게 자연스럽게 소설로 옮겨 오면서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고 마음과 생각이 가는데로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몽양 여운형의 삶에 관심이 있다가 그의 연인이었던 진옥출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너무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글을 쓰고 싶어졌어요.
소설의 비밀은 '써보면 안다'라는 것 같아요. 진옥출이 궁금해서 써보자라는 생각에 써보다 보니깐 역사소설이 된 것 같아요. 지금 다음 작품으로 쓰고 있는 '김지회'라는 여순반란사건 이후에 활동했던 한 군인에 대해서도 매력적이여서 한번 써보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 써보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게 모든 것들에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제 마음에 마그마가 들끓고 있는 것도 같아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역사소설을 쓰려고 쓴게 아니라, 쓰다보니깐 역사소설이 된 것 같다입니다. 생각과 마음이 끌리는대로 가는게 즐겁게 소설을 쓰는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소설 김지회(가칭)
지금 쓰고 있는 것은 '소설 김지회'를 쓰고 있어요. 이번달 초고는 완성되었습니다. 이걸 다듬는게 1년이 걸릴 것 같아요. 이번에도 너무 힘들었어요. 한 문장 쓰려고 조사해야할 게 너무 많았어요. 특히 여순반란사건 이후 빨치산으로 몰리는 과정을 쓰려면 좌우 이념적인 대립점을 찾아야 하기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쓰면서 김지회에게 너무 정이 들었어요. 23살의 장교가 여순반란사건에 휘말리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리고 있어요. 특히 이번에는 주인공과 기독교에서 좋아하는 '다윗'과 연결되어 있기도 해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쓰게 되었어요. 김지회가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애인인 조경순에게 '다윗'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받게 되지요.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겪는 어려움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이지요.
김지회는 사실 사민주의자였고 여운형에게 모티브를 얻기도 한다. 여운형 선생님은 무정장군과도 활동을 했지만 무정장군에서 1945년에 조선의용군에 들어오라고 요청한다. 무정장군의 독립동맹과 여운형의 건국동맹이 만나서 일제강점기 이후에 세상을 꿈구게 되지요. 여운형 선생님은 사민주의로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요 연구해보니깐 김지회는 그런 사민주의를 가지고 있는 연결성이 있어요.
80학번 하준수
다음에는 쓰려고 하는 아이디어는 80학번들을 대상으로 쓰려고 해요. 전두환이 역사속에 등장하면서 신입생이 된 청년들이 조금 시간이 지나면 87년 민주화항생을 거치게 되고 역사 속에 아이콘이 되는 세대가 되는데요. 이것들을 한번 써보려고 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역사소설이 되겠네요. 아무리 픽션이라고 하더라도 '고증'을 하지 않을 수는 없어요. 그래서 요즘에 챗GPT가 나오면서 50년대 이후에 한국상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은 사실확인이 쉬워질 것 같아요.
참석자 질문
1. 파란나비라는 제목을 쓴 이유가 있나요? 붉은사랑이라고 한게 있나요?
- 당시 '붉은사랑'이라는 것은 '적연'이라고 해서 사상적으로 맞으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흐름이 있었어요.
- 파란나비라는 제목은 저에게 매우 중요해요. 무엇인가 파란색이 저에게 마음에 드는 색이었어요. 미술을 하는 친구가 파란색은 색 중에서 가장 다채로운 색이라고 해요.
- 소설에서 몽양이 진옥출과 헤어질 때 파란색의 원피스를 주지요. 진옥출도 하늘을 날고 싶어했고요. 원피스를 소중하게 여기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파란색을 지키려고 하죠.
- 마지막에 대동교가 파괴되고 가장 날기 좋은 장소로 생각하고 여운형과 같이 좋아했던 노래를 음미하면서(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안단테 20번 2악장, 일본 긴자에 아직도 몽양과 진옥출이 만났던 카페가 있어요.) 우아한 죽음을 맞이하죠. 마지막에 이 부분을 쓰면서 진옥출이 뛰어내리는 순간 '파란나비'와 같이 날아가는 것 같았어요. 그런 이미지가 생각났어요.
2. 작품을 쓰면서 독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읽어주기를 바랬나요?
- 사실 그런 의도는 없었고요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그냥 이런 사람이 있었다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만든 것 같아요.
3. 진옥출은 당시 신여성인데 여운형 선생님과의 사랑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했나요?
- 진옥출은 '자유주의'적인 사랑의 감정을 부정했지만, 나중에는 자유주의적인 사랑의 감정에 충실해지죠. 그런데 막산 30년의 나이차와 불륜을 넘어서려면 결국 사상적인 동지로서 기사주의와 사민주의로서 동지로 먼저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다시 자유주의적인 사랑의 감정에 빠지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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