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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과학일기

플랫폼 자본주의와 노동

과학커뮤니케이션_플랫폼 자본주의와 노동_유령/그림자/감정/미세노동

by 낭만민네이션

0. 들어가기


지난시간에는 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오늘은 플랫폼 자본주의가 구체적으로 노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자본주의가 탄생하게 되고 플랫폼 자본주의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노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본주의에 적응했다. 때로는 이용당하고 때로는 갈려나갔으며, 지금은 아예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정보 자본주의나 인지자본주의와 같은 방식으로 그 내부에서는 더 세분화된 자본주의의 속성을 가지게 되었고, 여기에 다시 노동이 연결되었다. 이제는 AI의 등장으로 노동이 사라질 위험에 있겠지만 오히려 AI가 할 수 없는 일을 더 세분화된 노동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언제까지 이렇게 자본주의와 노동을 대립하고 싸우고 쟁취하고 대안을 만들어야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 대해서 더 알아야하고 그것이 만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오늘은 플랫폼 자본주의와 노동에 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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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주의의 발생과 노동


그러면 이 모든 과정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자본주의가 어떻기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자본주의는 사실 '재산 혹은 자산'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재산은 소유를 나타내고 소유는 무엇인가가 자신에게 더해지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그 소유를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에 따라서 독점적이냐 아니면 공유방식이냐에 따라서 자본주의의 형식이 달라진다. 역사적으로 노예제 사회의 생산관계는 노예를 '소유의 관계에서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는 노예주인이 있고 이에 지배계급 노예주가 노예를 부리면서 부를 축적하는 사회였다. 노예가 곧 '자본'의 근간이었던 사회이다. 그러나 봉건제 사회가 도래하면서 소유관계가 계약의 관계로 바뀐다. 봉건제 사회의 생산관계는 영주와 농노 간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영주는 다스림, 방어, 안전의 영역을 담당하며, 농노는 식량을 생산하여 영주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중세 서양에서 봉건 영주들은 장원이라는 대토지를 소유했고, 장원에 속한 농노는 소규모의 토지를 빌려 경작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농노는 잉여생산물을 소유하는 대신 영주에게 지대를 바치고 부역의 의무를 이행하였다. 특히 부역노동 시 농노는 쟁기와 같은 노동수단을 스스로 지참했으며, 가족이 부역노동을 분담하거나 보조하고 여러 명이 작업반을 구성하여 공동으로 노동을 수행하는 특징이 있었다. 자본주의의 생산관계는 생산수단의 소유자(부르주아)와 노동대중(프롤레타리아) 간의 관계로 규정된다.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생산을 장악하며,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가운데 일부만을 임금으로 지불하고 그 잉여가치를 이윤화한다. 노동자들은 자본가에게 돈을 받고 파는 것이 노동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의 노동력이다. 노동력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 즉 임금으로 결정되며, 이러한 노동력의 상품화는 노동의 소외와 착취를 낳는다.


테일러리즘(과학적 경영)은 생산공정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법이다.


이는 작업 과정을 시간별, 동작별로 분석하여 노동자가 세분화되고 표준화된 동작을 정해진 시간에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표준에 종속된 물질 노동을 특징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지적 노동(구상)과 육체 노동(실행)이 분리되며, 경영자는 지식에 대한 독점의 힘을 바탕으로 노동자로부터 숙련 기술을 분리·제거하고 경영자로부터 하달되는 지침만을 따르도록 하여 노동자의 행위양식을 통제한다. 포디즘은 이러한 과학적 경영 방식을 바탕으로 조립라인 및 연속공정 기술을 이용하여 표준화된 제품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축적 체계를 구축하였다. 컨베이어벨트 주위에 노동자와 기계를 배치하고 미숙련 노동자를 대거 투입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로 인해 노동자의 자율성, 창의성, 자기통제력은 상실되는 결과를 낳았다. 포디즘 하에서는 고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노동이 이루어지며, 노동력에 대한 화폐적 보상, 즉 임금계약의 규범이 형성되었다.



2. 후기산업자본주의 시대의 노동


봉건제 사회의 생산관계는 영주가 다스림과 방어, 안전을 담당하고 농노가 식량을 생산하여 제공하는 구조이다. 중세 서양에서 봉건 영주는 장원을 소유했고, 농노는 토지를 대여받아 경작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농노는 잉여생산물을 소유하는 대신 영주에게 지대와 부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특징이 있다. 반면, 자본주의의 생산관계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부르주아)가 노동대중(프롤레타리아)을 고용하는 방식이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중 일부만 임금으로 지불하고 그 잉여가치를 이윤으로 축적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하여 자본가에게 팔며, 이는 곧 노동의 소외와 착취를 낳는 기제가 된다.


테일러리즘(과학적 경영)은 생산공정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표준에 종속된 물질 노동을 수행하게 하는 기법이다. 이는 작업 과정을 시간별, 동작별로 분석하여 노동자가 세분화, 표준화된 동작을 정해진 시간에 반복적으로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 테일러리즘은 지적 노동(구상)과 육체 노동(실행)을 분리하여 경영자가 지식 독점을 통해 노동자의 행위양식을 통제하게 한다. 포디즘은 이러한 과학적 경영을 바탕으로 조립라인 및 연속공정 기술을 도입한 축적 체계이다. 컨베이어벨트 주위에 노동자와 기계를 배치하고 미숙련 노동자를 대거 투입하여 효율성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자율성, 창의성, 자기통제력을 상실하며, 고정된 시간과 장소에서의 노동 및 임금계약의 규범이 확립된다.


현대 자본주의는 디지털 환경과 결합하며 정보자본주의와 인지자본주의로 확장되었다. 정보자본주의는 정보가 시장 교환을 위한 상품으로 변형되어 가치가 창출되는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이는 정보의 추상화, 사유화, 상품화, 그리고 지적재산권 법제화를 통해 정보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인지자본주의는 지식, 정보, 감정, 소통 등 인간의 인지능력이 자본 축적의 동력이 되는 형태이다. 개별 생체정보, 생각, 감정 등이 데이터화되어 비물질 노동의 생산 및 소비가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다. 물질 상품과 달리 인지 상품은 무한정 복사와 재생이 가능해지며, 이는 '영혼까지 노동하는 시대'를 상징한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공급자와 소비자를 서로 연결하여 자원 탐색의 마찰 비용과 거래 비용을 낮추고 중개 수익을 얻는 시장 모델이다. 이 모델은 공유경제를 표방하지만, 화폐적 보상이 없는 대중들의 플랫폼 활동을 데이터로 집적하여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비물질 노동이 있으며, 이는 노동의 중심 축이 물질재 제조에서 비물질재(지식, 정보) 생산으로 이행함을 뜻한다. 비물질 노동은 노동시간과 여가의 구분이 불필요하며, 고정된 장소나 기계적 시간 척도로 측정되지 않아 마르크스의 '가치 법칙' 폐기 가능성을 제기한다. 자본주의의 가치화 영역은 노동에서 삶으로 이동하여 소비나 여가 활동마저도 노동/자본화된다. 이로써 포디즘적 시간과 장소의 제한이 해체되고 이전의 임금계약 규범이 문제화되는 것이다.


정보자본주의(informational capitalism)

정보가 시장 교환을 위해 생산되는 상품으로 변형되면서 그 가치가 만들어지는 자본주의

디지털 환경과 결합하여 기존의 자본주의가 인터넷과 텔레커뮤니케이션 하부구조를 통해 시공간적으로 확장·심화

정보의 추상화, 정보의 사유화, 정보의 상품화, 지적재산권 법제의 체계화 등 일련의 정보자본의 축적 방식과 과정을 의미


인지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

지식, 정보, 감정, 소통 등 인간의 인지능력이 자본 축적의 동력이 되는 자본주의

공장에서의 물질 노동이 축소, 개별 생체정보, 생각, 감정, 정서, 정동, 비언어적 상징 등이 데이터화되어 비물질노동의 생산, 소비

물질 상품과 달리 인지 상품은 무료로 널리 생산, 소모되지 않고 무한정 복사와 재생이 가능

*영혼까지 노동하는 시대


플랫폼 자본주의(platform capitalism)

(비)물질 시장 자원을 둘러싼 공급자와 소비자를 서로 연결해 자원 탐색에 소요되는 마찰 비용과 거래 비용을 낮춰주는 대가로 중개 수익을 내는 시장 모델

공유경제(sharing economy)의 주요 덕목으로 삼으며 화폐적 보상이 없는 대중들의 플랫폼 활동을 데이터로 집적, 수익 창출


비물질 노동(immaterial labor) :

노동의 중심 축이 물질재 제조 생산에서 비물질재(지식, 정보) 생산으로 이행

노동시간과 여가의 구분이 불필요. 비물질 노동은 고정된 장소의 기계적 시간 척도에 의해서 측정 가능한 물질 노동과 달리 측정되지 않음(마르크스의 ‘가치 법칙’ 폐기)

자본주의의 가치화 영역이 노동에서 삶으로 이동, 고용된 노동자의 일 외에도 소비나 여가와 같이 일반적으로 노동으로 간주되지 않은 활동들도 노동/자본화 → 포디즘적 시간과 장소의 제한과 동시성 해체, 이전의 임금계약 규범 문제화


마우리치오 랏자라토(Maurizio Lazzarato)

정보적 노동: 노동과 관련한 기술이 사이버네틱스와 컴퓨터 통제 하에 놓이는 노동

문화적 노동: 노동으로 인식되지 않는 활동. 문화적·예술적 표준, 패션, 취향, 소통 등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

지적·언어적 노동: 아이디어나 상징, 이미지 생산

정동적 노동: 육체적, 정신적 활력과 관련된 편안함, 흥분, 열정 등 느낌을 제공하는 노동


크리스티앙 푹스(Christian Fuchs)

직접적 지식 노동: 상품으로 팔리는 지식재와 서비스 생산 (데이터, 소프트웨어. 콘텐츠 등)

간접적 지식 노동: 자본과 임금노동의 존속을 위한 사회적 조건을 (재)생산 (교육, 사회관계, 소통)



3. 플랫폼 자본주의


플랫폼 자본주의는 소비자와 공급자를 동시에 매개하는 양면시장의 구조를 취하며, 서로 다른 개인이나 그룹을 다면적으로 상호 중개하는 인터페이스이다. 이 경제 모델은 겉으로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를 주요 덕목으로 삼으며, 유휴 자원의 효율적 중개, 매칭, 그리고 공동의 호혜적 가치를 세우는 대안 경제 모델을 표방한다. 그러나 플랫폼은 이용자의 활동과 물질적 혹은 비물질적 지원(인지, 정서, 감정, 정동 표현 등)을 흡수하여 특정한 데이터 알고리즘으로 정제하고, 이를 자본으로 만드는 신종 거간꾼 시장 모델의 성격을 가진다. 플랫폼은 이웃과 친구가 함께하던 식사, 잠자리, 카풀, 일손 돕기와 같은 상호부조의 모든 호혜적 가치를 시장 논리로 흡수하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공유 플랫폼은 높은 중개 수수료를 부당하게 취하며 대중의 데이터 활동을 생산 노동으로 만들고, 이를 특수한 잉여가치로 배양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플랫폼 노동은 기존의 직장 노동계약을 무너뜨리고 노동자의 지위를 개인 사업자(비정규직 프리랜서)로 변경하여 플랫폼 운영자 또는 중개인과 새롭게 자유계약을 성사시키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 중개인은 노동 과정 중 발생하는 모든 위험과 노동권 관련 쟁점을 개인 사업자에게 외주화하고, 자신들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우면서 이윤을 독점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의 만성화된 고용 침체와 임시직 노동자들의 플랫폼 시장 유입이라는 구조적 요인과 맞물리며 본격적인 긱 경제(gig economy) 돌입을 알리는 것이다. 학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오늘날 플랫폼 중개인들은 빈부 소득격차를 더 벌리는 신생 불로소득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플랫폼 중개인이 수수료 등의 이익을 과도하게 취하는 반면, 노동 과정에 참여하는 다수의 노동자는 플랫폼에 대한 의사결정권이 없는 것이 현실태이다.


플랫폼 노동 비판론은 크게
기술혁신론과 노동권 비판론으로 나뉜다.


기술혁신론은 플랫폼 노동을 구습 재벌 체제와 달리 기술혁신의 개방성이나 효율성의 논리를 시장 안에 가져와 안착한 사례로 보며, 플랫폼 노동자를 플랫폼의 여러 거래 자원 중 하나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비판론은 기술 효율성 이면의 문제들에 대한 무관심, 즉 기술 공학적 사고 외에 공생의 사회적 감수성 결여를 지적하는 면이 있다. 노동권 비판론은 기존 고용관계를 해체하는 개인 사업자로서의 노동자 지위가 비정상적이라고 규정하며, 신기술 영역에서도 이들의 '노동자성'을 확보하고 위험의 외주화, 노동의 파편화 등의 문제에 대응할 노동권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기존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의 노동기본권 보호라는 인식을 넘어, 플랫폼의 기술 논리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이윤 수취 및 노동 관리 방식을 따져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4. 과학적 경영에서 알고리즘 경영으로


산업자본주의의 과학적 경영은 주로 사무 표준화, 출퇴근 자동화, 사무 공간 동작과 동선 통제 등 물리적 환경과 인사·조직관리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되어 있다. 이에 반해, 플랫폼 자본주의의 알고리즘 경영은 플랫폼을 매개로 인력 정보를 수집·매칭하고 계약 노동자의 활동을 감시·통제하며, 고객의 체험 정보까지 연산 처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는 자동화 기술과 고도화된 자동 명령어가 기존의 인간 통제 방식을 대행하는 형태이다. 투입 인력이 플랫폼 기술로 실시간 배치되고 통제되므로, 사무실이나 공장의 물리적 작업 규칙 없이도 쉽게 관리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AI가 정한 배달 시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 콜 배정 정지와 같은 '시간'을 패널티로 부여받는 타임 푸어 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알고리즘 경영은 관리자의 개입 없이도 완벽하게 작동하는 기술 감시와 통제 구상에 기초하고 있다. 가입 등록, 콜 배치, 배달 확인, 수행평가 작성 등 노동 외 허드렛일까지도 개별 사업자(플랫폼 노동자)의 몫으로 전가되는 구조이다. 플랫폼 사업자는 전통적 고용계약상의 업주가 아닌 인력 대행업 또는 중개인으로서, 스마트폰 앱을 통해 노동자의 서비스 콜 건수, 수락 거절 비율 등 인력 데이터 분석 자료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아 통제한다. 또한, 고객의 평가, 별점, 리뷰 등도 독자 앱을 통해 관리되어 노동자를 훈육하는 장치로 작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노동 위험이나 고용 책임은 독립 계약자인 프리랜서 노동자에게 외주화된다. 결국 알고리즘 경영은 플랫폼 자동화에 기대어 인간의 활동과 노동시간을 파편화하고, 추가 비용과 위험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며, 해고를 '철회', '비활성화' 등으로 전환하여 인간 노동을 교환 자원이나 소비재로 강등시키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 자본주의와 노동의 종류

이반 일리치(Ivan Illich) 그림자 노동(shadow work) : 산업자본주의의 재화와 서비스 생산에 있어 (남성의) 임금노동과 함께 필수 보완물로 요구되는 (여성의) 무급의 가사, 재생산 노동 / 플랫폼이 여성, 약자의 그림자노동을 플랫폼 인력시장의 공식 영역으로 재배치, 편입 ex 청소, 돌봄, 가사도우미 등

러셀 혹실드(Russell Hochschild) 감정노동(emotional labor) : 서비스, 상품의 전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감정과 육체를 인위적인 방식으로 조형하고 관리하는 노동 ex (비)대면 서비스 응대 / 소통이 노동 자원과 노동력으로 환원되는 플랫폼 노동 내 벌어지는 감정 통제, 문화상품이 된 노동자(창의 노동자)의 감정 상품화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 정동노동(affective labor) : 비물질 노동의 한 형태, 사적 정동의 공적 표출을 유도해 새로운 부가 가치를 창출, 플랫폼은 링크 걸기, 친구 맺기, ‘좋아요’ 누르기, 공유하기, 평가하기, 리트윗 등 다양한 장치를 통해 정동의 표출 유도 / 기업은 선호, 애착, 평판 등과 같은 정동을 상품이나 브랜드에 연결

트레버 숄츠(Trebor Scholz) 무임금노동(unpaid work/unwaged labor) : 수용자(audiences)의 일상적 디지털 미디어 이용행위가 노동의 역할 / 플랫폼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활동과 이용자 데이터를 수익화하지만 사람들은 그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보상받지 못함

크리스티앙 푹스(Christian Fuchs) 수용자노동(audience labor) : 인터넷 프로슈머(prosumer)의 이용 행위와 소비패턴 등에 대한 데이터가 상품화, 무임금 노동 착취에 기반한 새로운 자본 축적 모델 / 일, 노동, 여가의 상황이 통합적으로 착취의 놀이터가 됨(수용자가 디지털 시대 착취를 내면화, 감시상품 정당화)

티찌아나 테라노바(Tiziana Terranova) 무불노동(free laber) : 이용 행위는 자유로운 의지와 욕망에 의해 수행되지만 그것의 대가는 부재 / 자발적으로 부과되면서 보수를 받지 않고, 즐겨지면서 포섭되는 양면성 / “무불노동은 유혹적이면서 착취적이다”

줄리앙 퀴클리흐(Julian Kücklich) 놀이노동(free laber) : 디지털상 놀이가 노동 형태로 포섭 ex 게임 이용자의 게임 데이터, 피드백



5. 디지털 창의 노동


디지털 창의노동은 자아실현과 문화적 창의성이라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수사로 포장되며, '좋은 노동'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창의성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인지와 감정 능력이 착취되는 현실이 숨어있다. 영상을 제작, 편집, 디자인하는 노동은 굴뚝 없는 공장에서 이루어지며 열정 페이 및 자기 착취로 정당화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창의 노동은 감정노동, 정동노동, 놀이노동, 무불노동의 총체적 형태로 나타난다. 크리에이터(유튜버)의 활동 증가는 플랫폼에 메타데이터 축적과 시청 시간 증가를 가져와 유튜브 플랫폼의 자산화를 가속화한다. 이들은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기 위해 자발적인 자기 상품화에 나서며, 시청 시간을 늘리려는 주목 경쟁이 격화되어 자극적이고 혐오적인 콘텐츠가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핵심 변화는 임금노동 형태의 상품 생산 및 교환이 아니라는 착각을 낳으며, 축적 방식이 임금에서 지대로의 변환을 보인다는 점이다. 플랫폼이 자본 축적 공간으로 변환되는 과정은 과거 자본의 시초 축적인 인클로저와 유사하다. 플랫폼 기업(예: 구글)은 크리에이터를 고용하지 않고 자사 플랫폼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유도하고, 스스로를 상품화하게 만든 뒤 수수료(지대)를 챙기는 방식이다. 이는 자본주의보다 이전 단계로의 역행으로 해석되며, 디지털 지주인 플랫폼 기업이 기존 임금노동자들을 크리에이터나 유튜버 등 디지털 농노로 전환시키는 현상으로 비유된다. MCN(Multi Channel Network) 같은 하청 플랫폼 역시 임금이 아닌 수수료를 수취하는 방식으로 이 지대 추구에 기여하고 있다.


디지털 창의 노동이 임금노동의 형태가 아니라고 해서 노동 영역이 아니라는 착각은 위험하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주목과 활동이 플랫폼에 엄청난 지대적 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을 자유로운 창조자나 예술가로 여기며 플랫폼이라는 괴수에 배를 채워줄 뿐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임금을 받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의 가치를 도둑맞는다고 인식하기 어렵다. 알고리즘이 주목과 데이터를 토대로 가치의 생산과 실현을 자동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다. 항구적인 실업이나 고되고 억압적인 노동환경을 피해 스스로 크리에이터를 꿈꾸거나, 삶을 영위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영상 제작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오늘도 구독과 조회 수에 발목 잡힌 채 시청 시간과 광고를 늘릴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는 지대 추구를 통해 거대한 잉여를 창출하는 새로운 플랫폼 자본주의 국면에 우리가 이미 들어서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핑크게토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가 늘면서 노동 공간이 다시 젠더화된 장소로 구성되는 과정 탐구

창조산업이 요구하는 노동자 정체성은 대인 서비스직에 요구

되는 여성적 특성으로 여겨지는 속성의 상당 부분을 공유

서비스 노동과 정서적요소나 소통의 요소를 가진 창조산업적

맥락의 노동에서 공통적으로 개인의 태도나 감정 상태는 공감 능력, 사교성과 함께 결정적인 능력으로 여겨짐

창조산업에서 노동 주체의 이미지는 다분히 여성적 특수성, 여성적 주체의 이미지와 겹쳐짐



6. 비가시적 노동과 플랫폼자본주의


첨단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전면적으로 대체하여 '노동 종말'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은 기술 발전이 가져올 유토피아적 미래 사회 전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낙관론은 흔히 화려한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제시되며, 선진화되고 고도화된 기술 덕분에 미래 인간은 임금노동이라는 구속에서 완전히 해방될 것이라고 본다. 이들이 상상하는 유토피아 세계에서는 노동에서 해방된 모든 인간이 생존의 압박 없이 확보된 여가 시간을 누리며, 예술 활동이나 학문 탐구와 같은 자아실현에 전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적인 수사와는 달리, 오늘날의 자동화 과정은 노동자들을 해방시키기보다, 오히려 기존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무너뜨리고 위태로운 노동을 재물로 삼아 '고용 없는 일자리'를 구조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자동화는 모든 노동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양산하며 유토피아적 이상과 현실 사이에 깊은 괴리를 만들고 있다.


자동화 기술은 노동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고, 플랫폼 자동화 기계를 통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과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틈새를 메꾸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위태로운 일감을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고 노동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긱 경제(gig economy)의 확산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자동화는 고용 침체라는 구조적 요인과 맞물리면서, 노동자들을 불안정한 임시직이나 비정규직 프리랜서의 지위로 몰아넣고 있다. 플랫폼 중개인들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이들을 실시간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면서도, 노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험과 책임에서는 자유로운 이중적인 지위를 누린다. 결과적으로 자동화는 노동자를 임금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저임금·고위험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재편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플랫폼 중개인들은 신생 불로소득자로 비판받기도 한다.


오늘날의 자동화는 기계 혼자 완벽하게 작동하는 오토메이션(automation)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 헤테로메이션(Heteromation)의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헤테로메이션은 '이종 결합'을 의미하며, 데이터 기반 기술 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인간의 마무리 작업이 필수적인 자동화 시스템을 일컫는다. 이 시스템 내에서 인간은 기계가 내리기 어려운 윤리적 판단, 무형의 전자 정보를 유형화하는 물질화 작업, 복잡한 전자 시스템의 운영 환경 관리와 같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노동은 자동화 기술의 그늘에 가려져 가시화되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정당하게 인정받기 어렵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즉, 노동의 종말이 아닌 노동의 은폐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AI 시대는 인간 노동이 완전히 소멸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결합된 시스템 속에서 노동의 성격, 가치, 인정 방식을 재정의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의 시기이다.


비영리 플랫폼 사마소스(Samasource)는 "원조하지 말고 일을 제공하자"는 구호를 내세우며, 난민촌이나 빈민가의 '벌거벗은 생명들'을 미세노동자들로 고용하는 방식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미세노동의 위태로운 현실과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이를 "가상 조립 라인"이나 "기초적 제조 노동의 디지털 버전"으로 완곡하게 표현하며, 제3세계 노동자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미화하는 시도를 보였다. 그러나 미세노동은 노동의 안정성과 업무의 일관성이 부재하고, 계약서 작성도 없으며 무보수에 가까운 보수가 지급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구조는 미세노동이 일자리 창출의 해법이라기보다는 비공식 노동의 공식적인 부속물에 가까움을 보여준다. 미세노동에는 제3세계 외에도 거동이 불편한 전문직 종사자, 실직자, 경력단절자, 무직 부모 등 상대적 잉여 인구가 가담하고 있으며, 이들은 노트북, 휴대폰, 인터넷 회선 등 작업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자동화는 일자리를 완전히 앗아가거나 노동 종말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계 뒤로 보이지 않는) 주변부로 밀려나는 노동, 저생산 노동, 질 나쁜 미세노동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알고리즘 및 자동화 기술에 활용되는 무수한 빅데이터가 중요해진 시대에는, 이 데이터의 생산과 라벨링을 담당하는 저임금의 비공식적이고 불완전한 취업 상태의 미세노동자들의 노동이 대량으로 투입된다. 즉, 자동화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기반을 다지는 인간 노동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데이터가 그 데이터에 가치를 부여하는 인간의 노동보다 중요해지면서, 노동이라는 생산 활동은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무가치해지며 파편화된다. 미세노동은 노동자를 기계학습의 엔진으로 비인간화하고, 노동의 잉여화를 촉진하는 비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세노동의 비가시적인 착취 구조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저항과 연대 움직임은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게시판인 터커네이션(TurkerNation)과 엠터크그라인드(MTurkGrind)에서는 동료 노동자를 위한 모금 행사와 같은 비적대적인 행동들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터콥티콘(Turkopticon)이라는 웹사이트는 노동자들이 실시간으로 의뢰인에 대한 평가를 게시할 수 있도록 하여, 노동자들에게 정보와 통제력을 제공하려는 중요한 시도이다. 더 나아가, 일부에서는 무임금 투쟁이나 데이터 순환을 차단하는 디지털 봉쇄와 같은 직접적인 행동을 모색하고 있다. 위 아 다이너모(We are Dynamo)와 같은 조직은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정도의 규모를 갖춘 대중 집단, 곧 조합 없는 연합"을 만들 것을 제안하며, 미국 전역의 노동자센터와 연대하여 미세노동자들의 권익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메리 그레이(Mary Gray) & 시다스 수리(Siddharth Suri) 유령노동(ghost work)

인공지능의 기계 학습이나 특정 의뢰인의 디지털 공정을 돕기 위해 그 뒤에서 투명인간 처럼 수행하는 노동

ex 데이터 라벨링, 영상편집자, 온디맨드 인력시장에서 대기하는 노동자


필 존스(Phil Jones) 미세노동(micro labor)

빅데이터 생산과 라벨링을 담당하는 저임금의 비공식적인 노동

완전한 자동화를 위한 데이터 수집과 활용을 위해 노동 활동이 매 단계마다 잘게 쪼개짐


프리개러티 랩(precarity lab) 언더긱노동(undergig laber)

디지털 자동화를 떠받치는 하류노동ex 저개발국 아동 및 여성 착취노동, 반도체부품

노동, 휴대폰 조립노동, 성적 및 폭력적 영상 콘텐츠 필터링 노동, 가상화폐 채굴 노동 등

지리적 불균등 발전을 이용해 저렴하게 약자

노동을 착취하는 반인권적 땀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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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주의로, 그리고 현대의 정보·인지자본주의로 이어지는 과정은 생산관계의 끊임없는 변모를 보여준다. 기존의 영주-농노, 자본가-노동자 관계가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했다면, 오늘날은 지식, 정보, 감정 등 인간의 인지능력이 자본 축적의 동력이 되는 시대로 이행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중심축은 물질재 생산에서 비물질재 생산으로 이동했으며, 비물질 노동은 노동시간과 여가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노동의 가치화 영역을 삶 전체로 확장시켰다. 특히 플랫폼 자본주의는 이러한 변화의 최전선에 있으며, 양면시장 구조와 알고리즘 경영을 통해 정보와 데이터를 핵심 자본으로 삼아 임금이 아닌 지대를 추구하는 새로운 착취 구조를 형성했다. 이는 크리에이터를 디지털 농노로 전환시키며, 노동의 책임은 개인에게 외주화하고 이윤은 플랫폼이 독점하는 모순을 낳았다.


첨단 기술의 발달이 '노동 종말'이라는 유토피아적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현실은 노동의 변형과 착취의 심화로 나타나고 있다. 플랫폼의 알고리즘 경영은 사무실이나 공장의 규칙 없이도 노동자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 라이더에게 타임 푸어 노동을 강요하거나 고객 평가를 훈육 장치로 활용하는 것이 그 예이다. 더욱이 자동화는 노동을 완전히 대체하지 않고, 오히려 헤테로메이션(Heteromation)이라는 형태로 인간의 마무리가 필수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데이터 라벨링과 같은 저임금의 질 낮은 미세노동을 대량으로 양산하며, 이 비가시적인 노동은 기술 작동의 필수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결국, AI 시대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노동의 파편화와 잉여화를 촉진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터콥티콘과 같은 연대 움직임을 통해 이러한 알고리즘 통제와 위험의 외주화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록 자본주의는 상황과 현실에 맞게 다양한 옷을 입었다. 그러나 본질은 하나다. 자기잠식과 자기 외의 존재를 먹어치운다. 시장은 언제나 제로섬게임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있으면, 더 적게 가진 사람이 생긴다. 윈윈이라고 하지만 물리학법칙에 의하면 더 생기지 않고 다른 영역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그것이 시장 외부의 것을 시장으로 가져와서 바꾸어 먹는 식이 된다. 노동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불로소득으로 돈을 번다고 하면 그것이 그대로 즐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노동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노동을 안하고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노동이 집약되어 있는 물건이나 음식,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1:1의 교환원리가 길게보면 결국은 불평등하게 비대칭으로 교환되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이미 제로섬을 하고 있다. 외부의 자원을 먹어치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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