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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Dec 23. 2024

우리는 길을 잃은 별인가요?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10년전부터 나 자신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마음 속에서 꺼내는 시간들을 가지면서 삶을 정리해보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에 있는 것을 쏟아내는 것 같았는데, 쓰다가 보면 어느순간 하나의 문장으로 꺼낼 수 없었던 일들의 그림자들이 글씨 아래서 숨어서 나오는 것을 발견한다. 나 자신도 모르는 나의 마음이 한 걸음씩 걸어나오는 그런. 요즘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문득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낯설고 애매한 분위기를 살고 있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 애매함은 무엇일까? 보여지는 것으로 소거해버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쌓여 있는 곳의 이야기를 하려면 결국 쓰는 수 밖에 없다. 내 안의 나의 모습, 그러니깐 타자로서 자기자신을 보는 길은 오로지 쓰는 것 밖에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기다림은 언제나 두렵고 또한 설레이는 것이었다.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10년전 만난 그 사람은 보자 마자 뉴욕의 어느 길거리가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분주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미소같이. 사람들은 이것을 한 눈에 반했다고 하던데, 그것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하나의 언어가 수 많은 이미지들을 끌어 모아서 만화경처럼 보이는 그런 눈빛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그 사람의 인생에 한 발자국씩 조용히 걸어들어가고 싶었다.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고, 학교를 다닐 때 추억들을 들쳐보고, 살아가면서 따뜻했던 기억과 차가웠던 기억들을 엿듣기도 했다. 가끔은 시무룩해지는 그 사람을 보면서 세상이 허물어지는 느낌도 받았다. 영혼의 깊은 곳에서 가끔씩 세어나오는 흐느낌도 들었고, 언제나처럼 생글생글 이 세상의 슬픔을 모두 날려 버릴만큼의 웃음소리도 들었다. 알면 알수록 더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두렵고 그에 비례해서 기대되고 설레었다. 


시간의 속도는 달랐다. 나는 너무 빨리 달리고 있었고 그 사람은 조용히 걷고 있었다. 내가 지구를 7바퀴 반을 돌 동안에 그 사람은 이제야 막 언덕 하나를 넘어서는 정도였다. 빨리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탓이었을까? 너무 성급하게 고백해 버린 표현들이 의미없이 하늘로 날아갔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부메랑이 되어서. 그리고 나는 그 흔한 말처럼, 거절감을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람의 세계에 머물고 있던 발길을 돌려서 다시 나의 마음으로 가져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천천히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고 애처로웠다.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면서 방향을 잃어 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그 사람과 10년 전, 가볍다면 가벼울 수 있지만 나에게는 23억킬로 만큼 무거운 기억으로 마무리 되었다. 


한 숨에 적은 메세지


얼마전 그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나의 메세지였지만 얼마나 기대했던 상쾌한 웃음소리였는지. 마음 속에 별들이 다시 떠오르고, 바람이 불던 횡횡한 들판에 하나둘 씩 싹이 트기 시작했다.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다시 연락이 온다는 기쁨에 닫혀 있는 마음을 활짝 열어 버렸다. 지구가 들썩이는 것 같이 바닥이 울퉁불퉁해지는 바닥사 언덕을 넘어서 약속장소로 갔다. 바다내음이 한없이 불어오는 장소에서 기다리는 내내 다시 예전의 그 두려움과 설레임이 동시에 찾아왔다. 어쩌면 나 혼자였을테지만 누군가를 마음 속에서 그리워하다가 어느순간 만나는 날이 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물을 열어보는 것과 같았다. 시간이 도래할수록 가슴은 초시계보다 빨리 뛰었다. 


10년만에 만난 그 사람은 조금은 그을리고 조금은 어두워보았다. 그러나 이내 예전의 생기를 되찾고서 자신의 삶에 투영된 마음의 흔적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빛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 사람과 있던 장소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몸을 잘 움직일 수가 없어서 한 곳을 응시하면서 계속해서 나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았다. 그 사람은 그동안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나누어주었고, 이전에 잠시나마 구경했던 그 사람의 삶이 다시 내 앞에 창문을 활짝 열고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단숨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다음날 그 사람의 마음은 어디론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레임이 아니라 반가움이 가득했던 분위기 있던 밤바다는, 분주함이라는 절벽에 가로막혀서 이제야 떠오르는 태양에 몸을 숨기느라 하염없이 물러나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었기를 계속 기도하면서 함께 이동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서쪽으로 나는 남쪽으로 내려 갔다. 각자의 시간으로 걸어가는 사이에 나는 천천히 걷고 있었고 그 사람은 누구보다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10년만의 재회의 기억을 뒤로 하고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조금은 긴 문장의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왜 오해했을까? 정말 10년전에도 그리고 최근에도 나의 오해였을까? 그것을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그 사람은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나의 두려움도 곧 사라졌고 동시에 설레임도 살아졌다. 


아직도 반짝이는 그 사람


그 사람의 모습은 아주 빠른 속도로 퇴색되어 갔다. 나는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와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을 놓치지 않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씩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면 그 사람이 오래전에 걸었던 뉴욕의 한 길거리가 생각나고, 아프리카의 어느 국제학교의 앞마당이 생각난다. 모두 나의 상상이지만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그 사람이 알려준만큼의 이미지와 전해주었던 것 만큼의 감정들이 하나가 되어서 생명이 자라는 것처럼 마음 속에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어두움 밤이 되면 하나 둘씩 그러한 기억들이 별처럼 어두운 마음 속을 반짝이면서 방향을 알려주는 것만 같다. 내가 하는 일들의 길을 잃지 말라고 말이다.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었겠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반짝이는 별들 가운데 길을 잃을 것 같은 별을 떠올리면 그 사람과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도래한다. 


길을 잃은 별들.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싸우고 이혼을 하고 다시 만난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다 줄것처럼 표현들을 소비하지만, 어느순간이면 시들해져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금방 길을 잃어 버린다. 나도 그랬을까? 만약 그 사람하고 10년전에, 얼마전에 잘 되어서 만나게 되었다면 나도 그랬을까? 우리도 그랬을까? 우리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길 잃은 별이 되었을까? 알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긴 시간만큼 떠올리고 기다렸던 시간이 있기에 길 잃은 별들이라도 최소한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빛을 알아보고 함께 길을 걸어가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 본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비추이면 금새 마음은 수백만개로 갈라지고 머릿속은 애매하고 흐릿한 이미지들이 난립한다.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 놓으니 내가 왜 이렇게 요즘 멜랑꼴리해졌는지도 알겠다싶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고. 그 사람이 단지 어떤 연인이나 호감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아직은 오지 않았지만 이제 곧 도착할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이미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는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사랑이 한 일'이겠다 싶다. 사랑이 협소하게 '사랑'이라는 관계로 규정된 사이에서만 등장하는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는 온통 사랑이 한 일 속에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도 싶다.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나 자신을 바라보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되는 것도 같다. 나는 오랜 기다림을 하고 있었구나. 나는 길을 잃은 별처럼 정처없이 그 사람의 그림자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두려움과 설레임을 두 손에 가득 붙잡고. 



https://www.youtube.com/watch?v=8XDI2kk6q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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