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음 그리고 나의 마음
길가에 민들레 한 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듯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_안도현
시대 속에서 갇혀 있으면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으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조촐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시대가 주는 인간에 대한 어떤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말 그대로 '~세대'로 귀결되어 버리고 만다. 식상함이 서로를 가득 매운 시대에 누구를 만나던 만남은 향기를 잃고 대화는 갈길을 잃는다. 소멸되어져 가는 영혼 속에서 가끔씩 우리는 웃음소리는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정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질문이 또아리를 틀고 마음의 중간에 앉아서 한상 독사와 같이 낼림 거리면서 물어본다. 나는 가깣으로 그 질문을 피해서 달아나면서 지금은 바쁘니깐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도망친다. 그러나 인생은 언젠가 이 질문을 만나게 되어 있다. 정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로 사람들을 위하고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로 나 자신으로 오롯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을 어린시절부터 수없이 밤을 새가면서 던졌지만 요즘에는 점점 마음 속에 질문이 없어지는 것도 같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감정의 사치라고 여겼던 때도 있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일종의 욕망으로 보던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서 있는, 자신이 그 만큼 경험한 테두리에서 생각을 멈추고서 그것이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 과거의 자신은 지금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현재가 계속해서 미래와 과거 사이에서 확장해가지고 오로지 인간은 현재만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면서 다행히 혹은 불행히 현재의 틀 속에 갖혀 버리거나 자신이 더 이상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 버린다.
다른 사람과 각을 세우고,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하느라 온 세월을 보낸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남는 것은 허무한 시간 속에서 자신이 서 있던 자리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로지 영원한 것은 '마음'이다. 사람들의 마음만이 오롯이 영원까지 간다. 영원을 바라는 사람들은 '생명'이 영원할 것을 믿으며 죽지 않는 삶을 꿈꾸지만 사실은 생명은 언젠가는 끝난다. 그러나 '마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우리가 죽어도 다음 세대가 그 마음을 기억하고 또 더 깊은 마음으로 이어간다.
그럼 마음이 움직일 때는 언제일까?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 혹은 격정은 어떤 사건들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서 그렇게 되기도 하고, 어떤 일을 당해서도 그렇게 되기도 한다. 한번 마음이 동하기 시작하면 물잔에 들어 있는 수 많은 물결들이 흔들리고 깨지고 부숴지다고 만나서 하나의 감정을 만들고 여러개의 생각들을 만든다.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을 사람들을 쫓아 다니느라 도파민에 중독되기도 하고 끝없는 밤을 새면서 공부를 하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마음은 언제나 이중적으로 찢겨지기도 하고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슬픈일이 그렇게 만들기도 하고 기쁜 일이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은 사랑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알았다. 내 마음이 이렇게 단단할 때, 이렇게 깊은 중심으로 넉넉히 자리를 잡을 때.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를 배려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누군가에 대해서 조건없이 생각할 때.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은 감정을 넘어서 다른 존재에 대한 갈망, 다른 사람에 대한 한 없는 열림이다. 신기하게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문을 통해서 그 사람 만이 아니라 세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온전히 열어 놓은 상태로 맞이하는 것을 경험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이상 사랑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미명하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교환하는 대상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래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번도 사랑을 해보거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누군가를 오롯이 사랑해 보지 못한 사람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 거기서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이 존재하는지도, 사랑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 체로 어른이 되고 다시 또 만나고 다시 또 자녀를 낳는다.
이렇게 인류는 두 갈래의 길을 한상 걸어왔다. 누군가를 오롯이 사랑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길과 누군가를 항상 무엇인가에 대응해서만 생각했던 길로 말이다. 마음을 열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고립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제도와 문화, 인간관계와 조직의 구성은 언제나 마음이 깨지는 결과를 낳는다. 항상 누군가를 만나면 '더 이상 만나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스스로를 가둬놓은 마음의 감옥을 발견했기 때문이겠다. 그러니 그런 만남 이후에는 나는 스스로도 그런 감옥에 갖혀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게 된다.
오직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오직 이 세상을 짐심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문으로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 문으로 감정이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갖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열려 있어서 바람이 불고, 그 문으로 또 새로운 일들이 생긴다. 한들한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마음 속에 부는 사람. 오롯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해 본 사람. 그들에게서 나는 향기로 이 세상은 아직도 살만하다고 느끼게 되기도 한다. 나는 향기로운 사람인가? 나는 진심으로 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을까? 누군가 꿈 속에서 걸어오는 꿈을 꾼다. 나의 향기를 맡았다고 했다. 꿈 속이지만 나는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기대가 넘쳤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이 아니라 누군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에서 깬다. 꿈 아니라 현실에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서 누군가가 그리워하는 사람, 그리워하는 향기가 되길 원한다.
이 세상에 대해서 문을 열고 이제 한 발짝 나아간다.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