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보교인들에게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소 1장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아니 사람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부끄러움은 옳은 어떤 것이 제시되어 있고
그것을 벗어 났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 먼저 주어지지 않으면
부끄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자연과 어떤관계인지
규정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이래야지라는
당위와 윤리가 발생하지 않기에
부끄러움도 없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image로 만들어졌다면
하나님이 선하시고good/tov
완전하시고 인간을 만드셨다면
그 분이 인간에게 원하는 것은 당연히
거룩함holy이라는 인간다움일 것이다
그 인간다움은 지성과 이성을 포함하여
감정적인 안정성과 의지의 자유함이다
이것이 포함되어 인간은 모든 영역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도 부끄러움이 없게 되는데
이것을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한다'라는
표현으로 인생의 방향을 잡게 된다
부끄러움은 좋은 것이다
심지어 부끄러움은 기쁜것이다
내가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가는 길을 내가 사는 것을
스스로 메타인지로 바라보고
무엇이 옳은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것들의 세상에서
옳은 것들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은
날마다 자유함과 무질서함의 길항에서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 옳음이 다른이의 옳음과 대치될 경우
당위의 싸움은 전쟁으로 번지기도 한다는 것
그러므로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합의하고 동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조금만 더 상황을 넘어서서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면
그 형상에 이미 자신의 옳음을 내재해놓고
인간의 자유가 발현되도록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더욱이 그 자유는 의지를 제대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졌기에 자유의지가 아닐까
죽음도 사는 것도 어떤일을 하는 것도
자유롭게 선택하는 의지의 향연 가운데
인간이 인간이 되어가는 길이
있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그 분이
임마누엘이라면
항상 우리와 함께 선택을 같이 하게 될 때
구성적으로 우리의 삶은 매번 새롭게 되지 않는가
옳음은 미리 정해져 있는게 아니라
순간순간 나를 만드신 분과 함께 선택하는 것
그럼 나는 너무 기쁘다
그럼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지금이
사실은 복음의 확신이라 불리는
크리스쳔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임을
알고 믿고 느낀다면
이 기쁨을, 이 부끄러움을
누리고 또 살아봐야지한다
예수님이 너무 좋다
너무너무
빌리보에 알리는 편지에서
나의 부끄러움을 발견한다
기쁜 부끄러움이지 않는가
산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