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독연구원 폴틸리히 스터디
현대기독교연구원에서 개최하는 폴틸리히 신학스터디에 참여중이다. 오늘은 드디어 폴틸리히의 '문화의 신학'을 읽는다. 틸리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신학자로서 조직신학자이다. 그러나 틸리히는 문화신학자요, 종교신학자로도 평가된다. 이것은 틸리히가 칼 바르트로 대표되는 <교회의 신학>의 범주를 넘어 종교일반과 문화에 대한 폭넓은 사상적 층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틸리히는 종교신학을 말할 때, 그것의 초점은 일차적으로 종교간의 대화의 의미로서 종교신학이 아니라, 종교의 본질과 의미, 즉 종교가 지닌 의미 해석, 종교의 본질에 대한 종교 학적이고, 신학적 해명에 집중했다는 부분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종교란 궁극적 관심이다”라는 진술이 있다. 이런 의미로 종교신학자로 분류된다. 이런 점에서 틸리히의 종교신학은 엄밀히 말해 종교간의 대화 에 집중하면서, 종교다원주의자로 분류되는 폴 니터, 라이문도 파니카 등의 종교신학자들과 구분된다.물론 틸리히는 “기독교와 세계종교”Christianity and the Encounter of the World Religions, Bampton Lecture 1961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행한 강연집이 있다). 또한 틸리히는 문화의 신학자로 특징짓는다. 그런데 틸리히에게 있어서 문화란 ‘인간의 총체 적 활동’으로서 문화나, 대중문화나 고급문화로 구분되는 그런 문화라기보다 세속문화를 가리키거나, 혹은 예술을 의미하고, 무엇보다 <종교와 관련한 것으로서 문화>를 의미한다. 틸리히의 종교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사고변화가 있다. 19세기의 틸리히는 두 관계를 이상적, 낙관적으로 보았던 반면, 후기 틸리히는 현실적으로, 그리고 비관적으로 보았다.
틸리히의 종교신학의 주제들
종교간의 대화: 배타주의, 포용주의, 다원주의
기독교와 타종교의 구별점과 공통점
기독교 우월주의와 절대주의, 대화주의
틸리히의 문화신학의 주제들
세속문화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 기독교문화관/세계관
복음과 문화
선교학의 주제로서 문화: 개종론, 대화론, 토착화.
틸리히의 문화란 무엇인가?
종교 , 사상, 관습, 가치관, 정치, 경제, 과학기술, 예술과 오락, 스포츠
문화란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간이 습득한 모든 능력이나 습관들을 포함한 복합적인 총체“(Edward B. Tylor, Primitive Culture).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문화를 단순한 예술, 풍습, 제도, 또는 기술의 총합으로 보지 않고, 인간 존재의 실존적 질문과 궁극적 관심이 표현되는 방식으로 정의하였다. 그의 문화 이해는 신학, 철학, 존재론, 해석학을 아우르며, 단순한 사회현상의 분석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표현하는 인간 정신의 표현 양식으로 파악된다. 틸리히에게 문화는 인간이 존재와 의미에 대해 응답하려는 구체적 형식이며, 종교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틸리히에게 문화는 단순한 사회적 생산물이나 인간 활동의 총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실존적 구조, 궁극적 관심, 자기초월의 지향이 표현되는 상징적 장이며, 종교적 본질을 담고 있는 해석학적 공간이다. 문화는 인간이 존재의 의미를 묻고, 그에 응답하며, 신적 실재를 마주하는 구체적인 장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문화는 종교를 담는 그릇이며, 종교는 문화를 통해 스스로를 해석하고 드러낸다. 틸리히의 문화 이해는 종교와 문화, 신학과 예술, 초월과 역사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 존재 전체를 신학적 해석의 장으로 확장한다.
틸리히의 문화개념
문화는 인간의 실존적 자기표현이다 : 틸리히는 문화를 인간 정신(spirit)의 산물로 보았다. 그는 문화를 단순한 활동의 축적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의미인가?”—에 응답하고자 할 때 생겨나는 실존적 자기표현의 양식으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문화란 인간이 존재의 불안과 갈망, 한계와 초월에 대한 응답을 심미적·이성적·윤리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장이다. 이때 문화는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존재를 해석하고 형성해 가는 실존적 공간이 된다.
문화는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적 체계이다 : 틸리히는 문화가 단순히 세속적인 것이라는 이분법을 거부한다. 그는 모든 문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궁극적인 것에 대한 지향을 담고 있으며, 따라서 종교적 차원을 지닌다고 보았다. 예술작품, 철학, 윤리, 정치제도, 교육체계 등은 모두 인간이 의미와 가치를 담아내기 위해 창출한 것이며, 그 안에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는 상징적 구조가 숨어 있다. 이때 문화는 종교적 상징성을 지닌 해석학적 구조로서 작동하며, 종교는 이러한 문화 안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낸다.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고, 종교는 문화의 본질이다 : 이 명제는 틸리히의 종교-문화 이론의 핵심이며, 문화 정의의 중심축이다. 그는 “종교는 문화의 본질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라고 말하며, 문화와 종교를 대립하는 두 실체가 아닌 서로 내면적으로 얽혀 있는 구조로 본다. 다시 말해, 종교적 내용(신에 대한 응답, 궁극적 의미)은 문화적 형식(언어, 예술, 전통, 제도) 없이는 표현될 수 없으며, 문화는 그 속에 종교적 깊이와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는 계시의 가능성이 열리는 장이다 : 틸리히는 계시(revelation)가 반드시 교회나 성경 같은 종교적 공간에서만 일어난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문화 안에서 계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며, 문화적 창작물(예: 문학, 영화, 예술작품, 철학적 사유 등)을 통해 인간은 궁극적인 것과 마주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때 문화는 인간 정신과 초월적 실재 사이의 접점이 되며, 신적 의미가 파열적으로 드러나는 계기의 공간이 된다. 따라서 문화는 단순한 인간 활동이 아니라, 초월적 실재와 만나는 해석학적 현장으로 이해된다.
문화는 비판과 갱신의 대상이다 : 틸리히는 문화를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문화가 때때로 궁극적인 것을 왜곡하거나 우상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민족주의, 소비주의, 권력 이데올로기 등이 문화 속에서 종교화되면, 이는 참된 궁극적 관심을 대체하는 위장된 신성화, 즉 우상이 된다. 이때 종교는 문화에 대해 비판적 통찰과 갱신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며, 인간 정신을 다시 근원적인 물음으로 되돌아가게 해야 한다. 틸리히에게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해석되고 평가되어야 할 실존의 표현장이다.
문화는 인간의 자기초월의 표현이다 : 틸리히는 인간 정신이 본질적으로 자기초월(self-transcendence)적인 존재라고 보았으며, 문화는 바로 그 초월의 시도가 집단적, 역사적, 상징적으로 구체화된 결과물이다. 문화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너머에 있는 더 깊은 의미, 더 높은 질서, 더 진리된 존재를 추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자기초월의 운동 속에서 문화는 단순한 풍속이나 일상이 아니라, 존재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인간의 실존적 몸짓이 된다.
폴 틸리히가 문화를 이처럼 존재론적이며 종교적으로 해석한 이유는 단순히 문화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학을 인간 실존 전체의 해석학으로 확장하려는 근본 목적 때문이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와 신학이 점점 주변화되고, 삶과 단절되어가는 현실에 직면하여, 종교가 다시금 인간 정신과 문화 전체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틸리히가 문화를 깊이 있는 신학적 해석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다음과 같은 철학적, 신학적, 실존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틸리히는 20세기 초중반 유럽과 미국 사회에서 종교가 점점 세속화(secularization)되고, 문화와 종교가 분리되어 가는 현실을 목격하였다. 전통적 기독교의 교리나 제도는 더 이상 현대인의 실존적 물음에 응답하지 못했고, 신학은 점점 폐쇄적인 교회 담론 안에 갇히고 있었다. 틸리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를 다시 문화 안에서 발견하고, 신학을 인간의 문화적 경험 전체와 통합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즉, 그는 종교를 교회 담장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문화 속에 내재된 초월의 흔적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신학을 재정립하고자 하였다.
틸리히는 실존주의 철학(특히 하이데거)과 해석학의 영향을 받으며, 인간 존재의 근본 구조를 해석하려는 철학적 경향을 수용하였다. 그는 인간이 단지 이성적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불안과 소외, 유한성과 죽음의 의식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실존적 존재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문화는 바로 이러한 실존적 질문이 언어, 예술, 철학, 제도 등으로 표현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단순한 취미나 장식이 아닌 존재의 구조적 표현이다. 따라서 문화를 해석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실존을 해석하는 일이며, 신학은 이 해석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틸리히의 입장이다. 또한 틸리히는 종교를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으로 정의하면서, 종교가 단지 제도적 신앙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최종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가에 관한 구조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문화는 인간이 자신의 궁극적 관심을 표현하는 장이 된다. 사람들은 종교가 아니라 예술, 과학, 국가, 이념에 궁극적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때 신학은 이러한 문화적 실천들을 단순한 세속 영역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 관심의 왜곡 혹은 실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틸리히가 문화를 깊이 분석하고 신학적으로 접근하는 이유는, 문화 속에서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 어떻게 표현되고, 또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틸리히는 현대 신학이 자기 언어만 사용하는 폐쇄적 체계로 머무르면 사회와의 대화가 단절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신학이 철학, 예술, 정치, 심리학 등과 대화 가능한 언어와 범주를 회복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위해 문화 분석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다. 문화는 신학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공통의 해석학적 공간이며, 종교는 문화 속에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동시에 그것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틸리히는 이 과정을 통해 신학이 다시금 현대 인간의 실존에 응답하는 공적 담론(public discourse)으로 자리매김하길 원했다. 틸리히 신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신성과 세계, 영원성과 역사, 초월성과 내재성 사이의 긴장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는 이 둘을 단절시키거나 대립시키기보다는, 서로 긴장 속에서 조화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문화는 바로 이 긴장의 장이다.
문화는 인간의 역사적 행위이고, 종교는 영원한 실재에 대한 응답인데, 이 둘은 단절되지 않고 문화 속에서 함께 움직인다. 틸리히가 문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신이 인간 역사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 현존하는지를 해석하는 통로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틸리히는 종교, 예술, 철학을 서로 분리된 영역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이 셋이 모두 인간이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묻고 표현하는 방식이며, 서로를 해석하고 보완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문화는 신학과 예술, 철학이 만나는 통합적 장이며, 이 안에서 신적 진리와 인간 실존은 함께 해석될 수 있다. 틸리히는 문화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가능해야 종교가 다시 인간의 전체 삶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폴 틸리히가 문화를 이처럼 신학적으로 깊이 해석한 이유는 단순한 문화비평을 넘어서, 신학이 다시금 인간 실존 전체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세속화된 사회에서 종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문화 속에 숨어 있는 궁극적 관심과 존재의 깊이를 해석해야 하며, 신학은 곧 인간 실존 전체를 해석하는 통합적 작업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틸리히의 문화 이해는 단지 신학의 확장이 아니라, 인간 정신과 존재의 진리를 향한 신학의 해석학적 소명을 보여준다.
폴 틸리히(Paul Tillich)에게 종교란, 전통적 의미의 제도적 신앙 체계나 특정 교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종교를 인간 실존의 본질적 구조로서, 궁극적인 것(The Ultimate)에 대한 전인적 지향으로 정의하였다. 틸리히는 종교를 인간 삶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으로 이해하며, 그것은 인간 존재 자체의 깊이를 밝히는 해석학적 열쇠이자, 인간이 자기 존재를 성찰하고 해석하는 존재론적 기능으로 작동한다. 그의 종교 개념은 다음과 같은 핵심 요소를 통해 체계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틸리히가 종교를 정의하는 가장 대표적인 표현은 다음과 같다. “종교는 인간이 궁극적 관심을 가지고 존재 전체를 걸고 응답하는 삶의 방식이다.” 여기서 궁극적 관심이란, 단순한 흥미나 취향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전체를 건 전적인 헌신의 대상이다. 인간이 어떤 대상을 자신의 전 생애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짓는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대상이 바로 종교적 대상이 된다. 이 궁극적 관심이 향하는 대상은 전통적 의미의 ‘하나님’일 수도 있고, 예술, 과학, 국가, 권력, 성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참된 궁극자가 아니라면, 그것은 우상(idol)이 되며 인간을 파괴하게 된다.
틸리히는 종교를 인간 밖에서 주어지는 외적 제도나 체계로 보지 않고, 인간 존재 그 자체 안에 내재한 존재론적 구조로 보았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왜 사는가’, ‘무엇이 진리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존재이며, 이 물음은 결국 초월적 실재에 대한 갈망과 지향성으로 이어진다. 이 지향성 자체가 종교이며, 인간은 종교적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종교는 피할 수 없는 실존의 구성 요소이다. 틸리히는 인간이 경험하는 불안(anxiety)—죽음에 대한 불안, 무의미함에 대한 두려움, 죄책감—이야말로 종교적 물음의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과 존재의 불확실성 속에서, 단지 생존이 아니라 궁극적 의미에 대한 응답을 필요로 한다. 종교는 이러한 불안을 무감각하게 만들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안을 직면하게 하며, 참된 의미와 구원을 향하도록 안내하는 실존적 구조이다.
틸리히에게 종교는 개념이나 논리로만 파악될 수 없고, 반드시 상징과 신화를 통해 표현된다. 왜냐하면 종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것’은 인간 이성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며, 그것은 은유, 상징, 신화라는 상징적 언어를 통해서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구원, 영생과 같은 종교 언어는 역사적 사건이나 교리만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와 초월을 열어주는 해석학적 상징이다. 틸리히는 “종교는 문화의 본질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종교가 반드시 특정 문화적 형식 속에서 표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종교는 순수하게 존재하지 않고 언어, 예술, 제도, 전통, 관습 등 문화적 형식을 통해 구체화된다. 동시에 문화도 그 자체로 종교적 차원을 담고 있으며, 궁극적 관심이 향하는 상징과 구조를 담는다. 따라서 종교와 문화는 상호 해석적으로 연결된다.
틸리히에게 종교는 단순히 인간의 주관적 내면 활동이 아니라, 신적 실재(God)와 인간 존재가 만나는 장이다. 이 만남은 도그마나 제의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위기와 고뇌 속에서 존재의 근원을 열어주는 계시의 사건으로 발생한다. 이때 종교는 초월과 내재, 하나님과 인간, 영원과 시간 사이의 존재론적 긴장과 화해의 공간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종교는 인간을 초월적 실재로 연결하는 해석적 매개체이다. 틸리히는 종교가 자기 자신을 비판하지 못하면 경직되고 우상화되며, 사회적 억압의 도구가 된다고 보았다. 진정한 종교는 자신이 지닌 형식, 교리, 제도 등을 절대시하지 않으며, 항상 참된 궁극자 앞에서 스스로를 비판하고 갱신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종교는 자기보존이 아니라 자기초월(self-transcendence)을 통해 살아있게 되며, 인간 존재를 끊임없이 더 깊은 차원으로 인도해야 한다.
폴 틸리히는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깊이 있는 상호작용의 구조로 이해하였다. 그는 "종교는 문화의 본질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두 영역의 관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즉 종교는 문화의 중심에 놓인 궁극적인 의미와 가치를 다루며, 문화는 그 종교적 내용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예술적 문화를 통해 구체화되며, 반대로 문화는 종교적 차원을 지니지 않으면 그 깊이를 상실하게 된다. 틸리히의 사상에서 중심이 되는 개념은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다. 그는 인간이 어떤 대상을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 만큼 절대적인 가치로 여길 때, 그것은 이미 종교적 태도라고 본다. 이와 같은 궁극적 관심은 문화의 다양한 양식, 곧 예술, 철학, 도덕, 정치, 제도 등을 통해 표현된다. 예술 작품이 고통과 희망을 상징화하고, 정치 제도가 정의와 질서를 구현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이 모두는 인간이 직면하는 궁극적 의미에 대한 응답이며 종교적 성격을 띤 문화적 표현이다.
틸리히는 종교가 단지 문화의 반영물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문화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문화가 궁극적 가치가 아닌 것들, 예를 들어 민족, 돈, 권력, 이데올로기를 절대화하고 우상화할 때, 종교는 이를 고발하고 참된 의미로 되돌리려는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종교는 문화에 내재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문화를 초월하여 그 정당성을 성찰하도록 요구하는 역할을 한다.
틸리히에게 상징은 종교와 문화를 연결하는 핵심 도구이다. 그는 종교적 상징이 단순한 표상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를 열어주는 통로라고 이해했다. 이러한 상징은 특정 종교 안에서만이 아니라, 예술작품이나 문학, 영화, 건축 같은 문화적 산물에서도 나타난다. 예컨대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 상징이면서도, 인간의 고통과 구원을 상징하는 보편적인 문화적 기호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상징을 통해 문화는 종교적 계시의 가능성을 지닌다.
마지막으로 후기 틸리히는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항상 조화로운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둘 사이에 변증법적인 긴장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종교가 문화에서 너무 멀어지면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체계가 되고, 반대로 문화에 완전히 흡수되면 신성성과 초월성을 잃은 세속적 체계가 된다. 이 긴장 속에서 종교는 현실성과 초월성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으며, 문화는 종교적 깊이를 통해 자신을 정화하고 새롭게 할 수 있다. 종교와 문화는 끊임없는 해석과 비판, 통합과 분리를 통해 서로를 살아 있게 만든다. 그래서 항상 문화는 종교와 자연친화적이지 않고 나름대로의 긴장감을 갖고 서로 비판하는 기능들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이러한 다양한 관점 속에서 연결되는 이론과 개념들을 한번 정리해보자.
트뢸취의 유형론
교회유형(church type): 제도적 주류교회. 세상문화에 타협하는 유형.
소종파유형(sect type): 사회-문화적 규범과 그리스도의 법, 세상나라와 하나님나라, 교회와 세상을 대립. 문화와 대립하는 유형. 문화 비타협주의. 비제도적, 소종파집단의 공동체.
신비주의유형(mysticism type): 문화 초월적 유형. 외형적, 형식적 제도와 구조를 배척. 황홀경, 열광, 환상. 내면적, 주관적 신앙체험. 교회와 역사와 문화로부터 탈피.
리처드 니버의 유형론 (그리스도와 문화)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Christ against culture): 문화와 분리하는 기독교. 세상문화는 그리스도의 적이다. 적대적 분리주의. 분리유형
문화의 그리스도(Christ of culture): 그리스도는 위대한 인간 문화의 성취자. 세상문화는 그리스도를 향해 완성하여 나아감. 문화개신교주의, 자유주의. 세상문화와 그리스도는 불화할 이유가 없으며 기독교적인 것은 세상문화안에서 성취된다. 일치유형
문화 위의 그리스도(Christ above culture): 그리스도와 문화는 연속성과 불연속성. 자연과 은총, 신앙과 이성, 그리고 문화는 그리스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완성됨. 아퀴나스, 가톨릭교회. 세상문화는 그리스도를 통해 신적인 목표를 향해 완성된다. 종합유형
문화와 역설관계의 그리스도(Christ and culture in paradox): 그리스도와 문화는 역설과 긴장 관계. 루터의 두왕국론. 세상문화와 기독교(복음)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공존한다.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Christ the transformer of culture): 타락한 인간과 문화를 전제하지만, 그리스도는 문화와 사회의 변혁자이다. 세상문화를 긍정함. 변혁유형. 은총은 자연을 폐기하지 않으며, 계시는 이성과 모순되지 않고 완성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문화를 폐하지 않고 완성한다: 완성-성취 모델
종교와 문화에 대한 틸리히의 유형
틸리히는 <기독교와 문화>, 혹은 <복음과 문화>의 관계가 아니라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모색한다는 점이다.
이는 틸리히의 관점은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로 설명하는 니버의 문화관보다 폭넓은 입장을 틸리히는 종교를 문화의 심층(깊이)의 문제로 접근한다.
틸리히의 종교와 문화의 관계
틸리히에게 종교와 문화는 <종교를 문화와 관련짓고, 문화를 종교와 상관시킴으로써> 이 양자의 관계를 상관적으로 연결하여 해석하는 <상관관계의 방법론>의 특징을 보여준다.
“종교와 문화는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이다”(프로테스탄트 시대, 제4장 종교와 세속문화),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문화적이고, 모든 문화는 궁극적으로 종교적이다. 모든 종교는 문화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으며, 모든 문화는 종교적 형태를 띠고 있다. 문화없는 종교나 종교없는 문화는 불가능하다. 틸리히는 종교와 문화의 이원론적 분리는 거절한다.
틸리히의 유형 - 종교와 문화의 상호적 내재 관계(mutual immanence)
1차 세계대전 이후 종교는 문화에 의해 거부되고 세속문화의 주장은 종교에 의해 거부되는 유럽의 상황에서, 종교와 문화가 보다 상호적인 관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우리는 중동부 유럽에서 abnsghkguraud과 종교전통사이의 깊은 간격을 발견했다. 루터교회,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스 정교회 등은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혁명들을 거부했다. 그들은 문화적 정치적 혁명들을 세속적, 자유적 반항적 표현으로서 거부했다. 그러나 양쪽 모두와 정신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우리들은 결코 이런 상황을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문화와 종교에게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교회들은 근대문화의 세속화된 자율성을 거부했다. 반면에 혁명적 운동들은 교회들의 초월적 타율성을 거부했다”(PE, 117)
이런 상황에서 틸리히의 종교와 문화의 분리를 극복하고 종교와 문화의 상호내재적 관계를 추구하려고 한다.
종교와 문화를 상호내재적으로 연결하는 틸리히의 방법: 신율, 자율, 타율
신율적 문화는 자율적 문화와 타율적 문화와 대립하면서 양자를 변증법적 관계속에서 종합한다.
자율적 문화는 인간 자신의 이성이 삶의 법이므로 합리적이고 비제약적으로 개인적, 사회적 삶을 구축하고자 시도하는 문화이다.
타율적 문화는 외부의 (정치적, 종교적) 권위에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귀속사키는 문화이다.
틸리히가 말하는 신율적 문화는 궁극적 관심이나 초월적 의미를 외부로부터 부과되는 타율적인 형태가 아니라 문화 자체의 영적 근거로서 표현되는 형태를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인간 현실의 내적 근거이다. 하나님의 법은 인간 자체의 내면의 법 안에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신율문화는 인간 외부에 강제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 내부의 문화안에 신율적인 것이 이미 있다).
무한자는 유한자 안에 현존한다. 무한자는 유한자의 외부에 있거나 유한자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세속적인 문화라 할지라도 거기에 모종의 종교적 근거나 실체를 지니고 있다. 틸리히는 모든 문화의 심층(깊이)에는 궁극적 관심, 거룩하고 비제약적인 그 무엇이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라는 의미다.
틸리히는 비종교적인 그림에서도 강력한 거룩의 경험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비종교적인 형식이 거룩에 대한 깊고 강력한 경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반면, 종교적 형식이 오히려 종교적 본질을 갖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종교적 상징이나 예배의식이 도리어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가져 오지 못한다고 말한다.
https://brunch.co.kr/@minnation/4260
틸리히의 종교에 대한 정의와 문화에 대한 정의를 '인간 정신'의 존재론적 구조 안에서 살펴보자. 틸리히는 인간이 원래부터 존재론적으로 종교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인 종교성을 기반으로 문화는 만들어지고 창조된다. 그러나 틸리히가 살았던 시대에는 전쟁과 세속화의 긴장 속에서 사람들이 어느새 문화에서 종교를 구별해 내서 아예 다른 것으로 보고 있었고, 세속화된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존재문제와 궁극적인 관심을 잊어 버리고 살게 되었다. 그래서 틸리히는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면서 인간이 원래부터 존재자체로 가지고 있었던 종교성과 그것이 발현인 문화를 연결하여 인간존재론을 완성시키려고 했다.
종교는 궁극적 관심이다.
“종교는 궁극적 관심이다. 종교는 무제약적이고 거룩하며 절대적인 것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이다”
틸리히의 종교와 문화의 관계유형은 기본적으로 칼 바르트로 대표되는 계시신학적 종교신학을 반대한다.
종교는 인간의 정신생활(spiritual life)의 측면이다. 이 말은 종교를 신적 계시의 산물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종교가 신적 계시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창조적 요소”로 간주한다.
“종교는 인간 정신 생활의 한 측면(종교는 인간의 영적인 삶의 한 측면)이라고 대답한다면” 기독 신학자들은 떠나갈 것이다.
“종교가 인간 정신생활의 한 요소임을 부인하는 신학자들도 일리는 있다”.
“종교는 인간이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 오히려 인간에게 주어지며, 어쩌면 인간에게 맞
서는 어떤 것을 수용했음을 의미한다” 종교는 전적으로 인간 밖에서, 인간적 산물이 아니라, 전적 타자이신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어떤 것이다.
결론: “양쪽의 비판자들에 맞서서 우리는 종교가 인간 정신의 한 측면이라는 주제가 타당함을 주장한다”
“종교는 인간 정신생활에 있는 특수한 기능이 아니라. 모든 정신적 기능에 있는 깊이의 차원이다”
“종교는 인간 정신에 있는 특수한 기능이 아니다!”
그럼 틸리히가 말하는 “깊이라는 은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종교의 측면이 인간 정신생활의 궁극적인, 무한한, 무조건적인, 것을 가리킨다는 의미다. 종교는 그 단어의 가장 광범위하고 기본적 의미에서 궁극적 관심이다. 그리고 궁극적 관심은 인간 정신의 모든 창조적 기능에서 나타난다. 종교는 인간 정신 생활의 실체, 근거, 깊이이다. 이것이 인간 정신의 종교의 측면이다" ”하나님이 만유안에서 만유가 되시기 때문이다. 세속영역도 없을 것이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종교 영역도 없을 것이다. 종교는 다시 그 본질적 모습, 즉 인간 정신 생활의 모든 것을 결정 하는 근거이자 실체가 될 것이다" ”종교는 우리에게 거룩한 존재에 대한 경험을 주는데, 건드릴 수 없고 두려움을 심어 주는 궁극적 의미이며, 궁극적 용기의 원천인 것에 대한 경험이다“ ”이것을 깨닫는 정도에 따라서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갈등은 극복되고, 종교가인간 정신 생활에서, 즉 그 깊이에서 종교의 참된 자리를 재발견했다. 바로 그 깊이를 통해서 종교는 인간 정신의 모든 기능에 실체, 궁극적 의미, 판단, 창조적 용기를 제공한다."
철학과 신학
기본적으로 틸리히는 철학과 신학의 관계도 이원론적 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틸리히의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 하나님은 다름 아닌 철학자들의 하나님이다 (성서종교의 실재에 대한 탐구, 마지막 문장, 조직신학1권 철학과 신학의 관계).
틸리히의 종교와 문화는 상호내재성의 모델이다.
그럼에도 틸리히의 종교신학은 로고스적 그리스도에 근거한 계시신학적이면서 자연신학적 측면을 포함한다. 일단 틸리히는 기독교와 문화를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포괄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활동에는 종교적 지향성이 깃들어 있다. 모드 문화활동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지시한다. 그 쪽으로 향하고 있다.
틸리히는 왜 기독교와 문화 관계라고 말하지 않고 종교와 문화의 관계라고 했는가? 그는 종교신학적으로 틸리히는 배타주의는 물론 (극복하려고 한다), 포괄주의자, 다원주의자 입장에 서 있다
틸리히의 관심과 주제 : 틸리히의 문화신학은 니버의 변혁주의 문화관이 아니라(기독교 우월주의나 기독교 정복주의,승리주의 문화관) 루터적 양립적 공존모델이다: 기독교가 세속문화를 정복할 수 없고 해서도안된다. 왜냐하면 이미 세속문화속에 종교적 실재,궁극적 관심이 내용적으로(형식으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렀다고 하여 마냥 교회가 세속을 향해 무대응하라고만 하지 않는다
어떤 모델인가?: 비관주의적 이윈론모델은 아니다. 소종파적 혹은 도피주의 기독교처럼 상호내재적주의 모델이다. 틸리히가 직접 언급하고 있다 서로는 서로에게 포섭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그러나 틸리히는 어쩌면 니버식으로 말한다면 <문화의 그리스도 모델>인지 모른다: 일치유형, 루터적 이원론 유형은 아니다 그럼 양립주의인가 종합주의인가? 상호내재주의가 가장 적합한 모델이다
종교철학의 두 유형
종교철학의 두 가지 주요 유형: 존재론적(ontological) 유형과 우주론적(cosmological) 유형
틸리히가 종교철학의 두 유형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마지막 문장이다.
”종교와 문화의 숙명적 분리를 최대한 극복하는 것, 그래서 서로애개 낯선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 소외되어 있었더을 뿐인 관심을 화해시키는 것이다“
종교적 문화분석의 여러 측면들
“궁극적 관심으로서의 종교는 문화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체이고(실체적 내용이며), 문화는 종교의 기본적 관심이 자신을 표현하는 형식들의 총체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종교는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종교는 문화의 내용이며,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 이런 고찰은(이러한 성찰은) 종교와 문화의 이원론이 형성되는 것을 결정적으로 (확립을 분명하게) 막는다(방지한다). 모든 종교적 행위는 제도화된 종교뿐 아니라 영혼의 가장 내밀한 움직임속에서도 (영혼과 친밀한 움직임 속에서도-남성민) 문화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형식화된다)”
Religion as ultimate concern is the meaning-giving substance of culture, and culture is the totality of forms in which the basic concern of religion expresses itself. In abbreviation: religion is the substance of culture, culture is the form of religion. Such a concideration definitely prevents the establishment of a dualism of religion and culture. Every religious act, not only in organized religion, but also in the most intimate movement of the soul, is culturally formed. (Aspects of a Religion Analysis of Culture, in TC, 42)
종교는 문화의 의미를 제공하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을 제공한다.
종교는 문화를 매개로 하여 표현되므로 문화적 형식을 취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문화적 형식들은 종교가 제공하는 의미의 궁극적인 근원으로부터 분리됨이 없이 존재한다.
종교는 문화의 실체다:이것은 문화의 중심에는 항상 종교적 의미나 궁극적 가치가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화 속에 담긴 예술, 법, 제도, 전통 등을 깊이 파고 들면, 그 밑바탕에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 즉 틸리히는 이를 종교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 : 이는 종교가 단지 내면적인 체험에만 머무르지 않고, 언어, 예술, 제도, 전통, 상징 등 문화적 형식을 통해 표현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종교는 문화라는 그릇을 통해 드러나고 전해진다.
“종교는 문화의 중심 내용이고, 문화는 그 종교를 드러내는 표현 방식이다.” “문화 속에 담긴 깊은 의미는 종교에서 나오며, 종교는 문화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은 틸리히의 '문화의 신학'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았다. 오늘날 더욱 틸리히의 '문화'에 대한 접근은 합리적이고 타당해 보인다. 시의적절한 고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오늘날 종교와 문화는 이미 일상이지만 일부러 이것을 떼어서 놓고서는 문화가 너무 종교적이라던가 종교가 너무 문화적이라는 말로 이것을 구별해내고 떼어 놓을려고 하는 사람들을 본다. 실존주의의 늪을 넘어서 종교와 문화를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서 틸리히는 이 둘을 모두 살려내기 위해서 먼저 연결하고 이것을 다시 인간 본질과 연결하고 다시 이것을 그리스도와 연결시킨다. 틸리히는 종교와 문화를 분리해서 볼 수 없으며, 문화는 종교 없이는 공허하고, 종교는 문화 없이는 표현될 수 없다고 말한다. 종교는 문화의 근본적인 내용(실체)을 제공하고, 문화는 그내용을 전달하고 구현하는 외적 형식(도구)이라는 통합적 시각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2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와 문화의 상호 내재성(mutual Immanence)
아돌프 케슬러(Adolf Käsler): “종교와 문화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으며, 하나는 다른 하나를 통해 존재하고 표현된다”.
즉, 종교는 문화 속에서만 나타나며, 문화는 종교적 의미 없이 공허 할 수 있다. 로버트 니버스(Robert Neville)는 "종교는 문화의 중심 내용이고, 문화는 종교를 감싸는 껍질이 자 표현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종교는 문화의 의미 구조를 형성하고, 문화는 그 종교적 의미 를 구체적 삶 속에서 형상화한다고 말한다.
'실체(substance)'와 '형식(form)'의 틸리히적 의미
틸리히의 ‘실체’(substance) 개념은 철학적으로 존재론적인 기반(ontological ground)을 의미한다.
따라서 종교는 문화 속에서 존재하는 궁극적 의미의 근원, 다시 말해 인간의 실존적 질문과 그에 대한 응답을 포함하는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다.
‘형식’(form)은 그 실체가 구체적인 삶, 예술, 제도, 언어 등으로 드러나는 방식이다. 문화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가치가 아니라, 종교적 실체가 표현되는 통로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22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