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큉 그리스도교_아우구스티누스, 도나투스파, 펠라기우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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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카톨릭 학자이면서도 교황의 오류설을 주장한 한스큉은 역사를 ‘패러다임‘의 전환의 과정으로 본다. 본질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시대가 지나도 달라지지 않지만 ‘형태‘는 시대에 따라서 다른 옷을 입는다. 그러니깐 그리스도를 기반으로 하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지만 형태는 초대교회나 교부철학이나 로마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나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패러다임은 항상 바뀌었지만 그리스도의 영광과 구원은 달라지지 않았다. 본질이 안 바뀌었기 때문에 사실 모두가 같은 것이다.라고 보는 것이 한스큉의 관점이다. 이러한 접근은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정말로 본질이 바뀌지 않은 것이 맞는가? 본질과 형태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형태가 본질을 바꾸는 부분은 없는가? 이런 질문들을 해보면서 한스큉을 매주 읽고 있다. 오늘은 중세 로마카톨릭 패러다임에 대해서 알아본다.
은총은 자연을 폐기하지 않고
그것을 완성한다.
오늘은 특히 중세 로마카톨릭의 중요한 논쟁인 ‘도나투스파‘와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한스큉은 아우구스티누스를 비판적으로 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은총을 강조하면서 자유의지를 반대하는데, 이것은 또한 신학적인 주제이다. 인간의 원죄와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중요한 주제였다. 이에 대해서 반대한 사람들이 바로 성례전에 있어서는 도나투스파이고 자유의지와 은총론에 대하여는 펠라기우스주의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원죄론‘과 ’구원론’이 인정되어서 공식적이 되지만 여전히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도나투스파가 던진 질문과 펠라기우스가 남겨 놓은 질문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한스큉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지난시간 살펴본 동방교회 즉, 정교회에 대해서 알아보자. 서방교회는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라틴어(Latin) 사용 지역이라면, 동방교회는 콘스탄티노플 중심의 그리스어(Greek)를 사용하는 지역을 말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A.D.330년에 옛수도였던 로마에서 새로운 수도인 동로마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영어), Constantinopolis(라틴어)로 옮겼다. 콘스탄티노플의 원래 명칭은 비잔틴(Byzantium)이었다. 서로마에서 동로마로 수도이전(1453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함락까지 제국의 수도. 현재는 튀르키에의 이스탄불)하였고 곧 395년 서로마와 동로마의 분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콘스탄티노플은 동방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정교회는 동방정통교회(the Eastern Orthodox Church)의 약칭이다. 동방교회는 지금의 터키, 알렉산드리아, 팔레스타인, 발칸반도, 동유럽 일부, 러시아를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동방정교회는 니케아공의회(325)와 칼케돈 공의회(451)의 교리를 정통으로 고수하며 강조한다. 동방정교회는 ‘알려지지 않는 기독교’다.
기독교의 역사는 서방교회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로마, 제네바, 캔터베리가 그 중심이었다. 최초의 교회분열은 종교개혁으로 개신교(protestant)와 가톨릭(catholic)의 분열이 아니라,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분열이다. 기독교는 서유럽에서 로마 교황 중심의 로마 가톨릭교회와 비잔틴 제국의 동방정교회로 나누어졌다.동방정교회는 로마가톨릭처럼 교황과 주교에 의한 고위성직자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화된 조직이 아니라 자치적인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동방교회는 총대주교(Patriarch) 아래 총대주교관구별로 자치적으로 또는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4개 고대 총대주교관구는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예루살렘이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에큐메니칼 총대주교로 모든 동방정교회에서 특별한 명예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다른 총대관구에 간섭할 권리는 없다. 이는 성공회 연합교단의 캔터베리대주교와 유사하다. 동방정교회는 하나의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앙안에서 일치와 성례전안에서 교제(친교)라는 이중적 결합에 의해 모인다. 동방정교회의 각각의 총대주교관구와 독립교회들은 독립적이지만, 교리에 있어서 서로 동의아래 있고, 성례전 안에서 교제를 이룬다.
정교회(Orthodoxy)라는 단어는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영광’(올바른 예배)이라는 의미를 지 닌다.
정교회 인간론은 어떻게 정의되어 있을까? 서방교회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법적, 상업적 채무와 책임을 지불해야 하는 관계로 본다. 정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죄인인 인간은 죄에 대한 채무이행과 책임을 감당해야 할 의무가 전제되어 있다. 죄의식으로 둘러싸인 인간은 신의 용서없이는 신에게 나아갈 수 없다.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이 하나님께서(편에서) 주어질 때, 인간은 죄사함과 그의 자녀됨이 가능하다는 인간관 (하나님의 용서없이 인간은 용서받을 수 없다 십자가를 통한 죄사함의 은총이 아니면 인간은 의로워 질 수 없다: 속죄, 칭의, 화해)이다. 동방교회는 인간본성의 타락을 강조하는 서방교회처럼,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정적’이고 ‘닫힌’ 실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현실로 바라본다. 인간현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종의 상승과정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자유롭게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부름받았으며,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선물이면서 과제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노력을 통해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 능동적, 향상적(상향적) 존재이며,자연 본성과 은총은 대립적이지 않다.
신화(神化)로서 구원에 대해서 알아보자. 신화라는 단어는 (theosis): /divinization/deification)는 신화화, 신성화, 신격화에 대해서 사용 할 수 있다.“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구원의 모티브로서 성육신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게 해기 하나님은 성육신(incarnation)을 통해 ‘인간이 되어감’(Menschwerdung)을 실현하였다면, 그러한 모범은 인간 편에서 반복적으로 모방함으로써 인간이 하나님의 삶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되어감”으로 구원을 실현하게된다. 신화란 신적 삶, 불후성(immorality)에 참여, 관여하는 것을 뜻한다. 만약 인간의 신성화가 가능하려면 구속자인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면서 완전한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만약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원하려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처럼 인간이라야 인간은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할 수 있다.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가 놓여졌다.
동방신학의 특징은 ‘참여의 신학’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불연속성보다 연속성을, 분리와 대립보다 결합과 하나됨(일치)를 강조한다. “비잔틴 신학의 원리는 인간에 대한 하나의 동일한 관점을 제출한다. 즉 인간은 하나님을 ‘알도록’, 또 하나님의 삶에 ‘참여하도록’, 그래서 단지 하나님의 겉으로 드러난 사역이나 명제적 진리들에 대한 이성적 인식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이 되어감’을 통해서 ‘구원 받도록’ 부름받았다는 것이다. 비잔틴 신학 안에서 인간의 이 신화(神化, Theosis)는 비인격적 일자(一者)로의 신플라톤주의적 회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화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과 신약성서에 나오는 ‘성령의 교제’에 대한 새로운 표현이다.”
자 이제 오늘의 본론인 중세 로마 가톨릭 패러다임에 대해서 알아보자. 중세시대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타락과 암흑기였던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범적 그리스도교의 이상적 시대도 아니었다. 이런 질문을 해보자. 그렇다면 중세적 패러다임의 성격은 게르만 패러다임인가? 아니면 라틴 패러다임인가? 결론은 중세 서방교회 패러다임은 게르만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라틴적으로 형성되었다. 이 당시에 라틴어가 서방교회와 신학, 법률과 국가 공식 언어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교체(360-382년)하였다. 이후에 역설적이게도 동방에서 서방으로 이동했으며, 그리스적에서 라틴적으로 이동하였다. 라틴신학 태동은 북아프리카에서 터툴리아누스에서 출발하였다. 터툴리안은 최초의 라틴 교부였고, 라틴 그리스도교계의 신학적 관심을 보였다. 라틴신학에서 보면, 철학적 성향의 그리스 정신은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의 이론적 문제에 집중하였다.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사람됨과 인간의 신화의 가능성 형이상학적, 사변적 문제들을 주로 다루었다.
실천적 성향이 강한 로마정신은 참회, 그리스도교적 생활방식, 교회질서 등 개인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목적을 두고 개인적 문제 해결에 집중하였다. 로마의 주된 관심사는 그래서 죄, 속죄와 사죄, 교회 조직, 직무, 성사 등 심리적, 윤리적, 규율적 문제들이었다. 주요한 학자들은 키프리아누스가 있다. 이는 카르타고 출신, 북아프리카 주교, 주교권 강화시켰다. 또한 중세시대의 위대한 학자였던 암부로시우스는 그리스적인 것과 라틴적인 것의 결합하였고 이어서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시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가 등장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라틴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서방신학과 신앙을 형성하였고, 중세적 패러다임의 신학적 아버지였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시자로 묘사되며 그리스어를 몰랐던 라틴 신학자였다. 동방교부,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교류하지 않은 서방 라틴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문헌을 라틴어로 번역된 것만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핵심 사상은 은총론, 원죄론, 예정론 등이다. 그는 인간은 아담의 원죄로 인해 타락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오직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또한, 그는 ‘고백록(Confessiones)‘에서 자신의 내면적 갈등과 회심 과정을 기록하며 주체적인 자아의 발견을 보여주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가장 유명한 책인 ‘신국론(De civitate Dei)‘에서는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도시(civitas terrena)와 신의 도시(civitas Dei)를 대비하여 역사관과 종말론을 제시했다. 한스 큉(Hans Küng)은 ‘그리스도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큉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이교의 신플라톤주의적 사상을 그리스도교 신학에 과도하게 접목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스큉은 이원론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큉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고, 지상 세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그리스도교 본래의 창조 세계 긍정과 맞지 않다고 보았다.
또한, 큉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과 예정론이 그리스도교의 기본 정신인 인간의 자유의지와 상충한다고 비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원죄로 인해 자유의지를 상실했다고 주장했지만, 큉은 이러한 주장이 인간의 책임과 신의 정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고 본다. 큉은 신의 은총이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을 통해 완성된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아우구스티누스의 결정론적 경향을 경계한다. 한스 큉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헬레니즘 철학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교 신학을 왜곡했다고 평가한다. 큉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이 중세 교회의 교리적 권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그리스도교의 본래적이고 역동적인 메시지를 약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큉의 관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단순한 교부 철학자가 아닌, 그리스도교 신학의 방향성을 결정지은 복잡하고 논쟁적인 인물이다. 큉은 이런 관점에서 본질을 흐트리는 일을 하는 학자들에 대한 비판도 다루게 된다.
한스큉의 그리스도교에서는 본질과 형태에 대해서 비교하면서 중세시대의 도나투스파 논쟁에 대해서 다룬다. 성례에 대한 질문은 성례를 집행하는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가? 아니면 성례자체로 은혜가 넘쳐서 누가 집행하든 문제가 되지 않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성례전 혹은 요즘으로 치면 ’리추얼’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여기서 사효성과 인효성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인효성(ex opere operantis)이다. 인효성은 성례는 성례를 베푸는 그 사람의 거룩성 여부에 의해 효과가 있다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성례는 성례 집행자와 수령자의 성덕에 의해 성례의 은총을 입는다. 따라서 배교자에 의해 집례되는 성례나, 거룩하지 못한 자가 받는 성례는 무효하다. 도나투스파가 여기에 속한다. 반대로 사효성(opere operato 事效性)은 성례는 성례를 집례하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성례를 수여하는 그 행위 자체에 의해 유효하다. 성례 자체로서 은총이 전달된다고 보는 것이 사효성이다. 성례의 집례자는 성례를 제정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성례가 정당하게 거행되었다면 그것으로 은총은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추후에 종교개혁 시기에 루터는 성례의 마술화를 반대하면서 성사의 효과는 없으며, 신자의 믿음에 의해 은총이 주어진다고 보았다. 무엇이 참된 성례인가?: 성례 자체인가? 사람인가?이렇게 질문하면서 ‘의례’의 어떠함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태도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주는 자와 받는 자 중에서 누가 더 성스러워야 하는가? 아니면 성례 자체가 성스러우면 받는 사람이 어떠함에 상관이 없는가? 도나투스파는 위에서 본 것처럼 인효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한 ‘혼합주의’가 결국 인정된다. 따라서 한스큉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아우구스티누스가 헬레니즘 문화를 들여와서 제대로된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도나투스파의 쇠퇴와 주장
도나투스파는 4세기 초 북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분리주의적 그리스도교 교파이다. 이들은 로마 제국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시기에 배교(背敎)했던 성직자들의 유효성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하거나 고난을 겪었던 신자들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였다. 도나투스파는 도나투스(Donatus)라는 주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성직자의 도덕적 순결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도나투스파의 핵심 주장은 성사의 유효성은 성사를 집행하는 성직자의 도덕적 상태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박해 시기에 성경을 로마 관리들에게 넘겨주었던 배교자(traditor)들이 집전한 세례나 성체성사는 무효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들은 배교자들에 의해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성사의 유효성이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 개인의 순결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근본적인 신학적 차이를 보여준다.
도나투스파의 주장은 북아프리카 지역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큰 분열을 일으켰다. 이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별개의 교회를 형성하였으며, 독자적인 주교들을 세우고 교회를 운영하였다.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 분열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노드를 개최하였으나, 도나투스파는 로마 교회의 결정을 거부하며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도나투스파와의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바로 아우구스티누스 주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도나투스파의 주장을 신학적으로 반박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성사의 효력은 성직자의 자격이 아닌, 그리스도 자신의 능력과 은총에 달려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사의 도구적 효력(ex opere operato)'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성사가 성직자의 거룩함과 무관하게 신의 은총으로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도나투스파는 5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반박과 로마 제국의 탄압으로 인해 점차 쇠퇴하였다. 비록 이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논쟁은 성사의 본질과 교회의 성격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질문을 제기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도나투스파와의 논쟁은 이후 서방 교회가 성사론을 정립하고, 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을 강조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스큉이 보기에 교회의 위기는 도나투스파로부터 등장했고 다음으로 구원론에 대한 펠라기우스의 도전이 위기로 부각된다. 구체적으로 질문은 ‘인간은 어떻게 구원되는가?‘와 관련된 도전들이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싸움이었다. 인간과 구원과 연결된 교리들은 인간론, 은총론, 의화론으로 발전하면서 지금 현재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교리들이 여기서 정리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언제나 창세기 3장에 의해서 죄는 영원히 존재하게 되었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교리가 생긴다. 의지에 대해서 자유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자유가 타락 이후에도 존재하는가 아니면 타락이후에 자유도 타락하는가에 대해서 고민이 생긴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양심이 없는가? 역사적으로는 추후에 칼빈을 넘어가면서 신칼빈주의자들에게서 등장하는 ‘일반은총’에서 다시 이 주제를 다룬다. 이부분은 한스큉과 함께 조금 더 지나서 다루어보고 여기서는 펠라기우스가 어떻게 도전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
인간 본성은 원죄로 인해 타락하였으며, 타락한 인간본성, 즉 (어거스틴에 의하면) ‘상처받은 인간 본성’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은총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인간은 은총의 도움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
최초의 아담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posse non peccare) 능력과 죄를 지을 수 없는(non posse peccare) 능력(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타락한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non posse non peccare) 상태가 되었다.
따라서 어거스틴에 따른 인간은 원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 상황에 대해 은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은총이 없이는 인간 조건의 개선은 불가능하므로 하나님의 은총은 필수적이다.
인간 본성은 타락으로 인해 상처받았으므로 은총의 도움으로 치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은총은 ‘도움’(아욱실리움 auxilium)으로 표현된다.
은총은 치료약이다. 은총은 타락한 인간 본성(혹은 인간 조건)을 치유하는 차원을 가지고 있다.
펠라기우스의 입장
펠라기우스는 어거스틴과 달리 원죄를 부정한다.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원죄로 인한 타락의 결과가 아니라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악한 ‘습성’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악한 습성으로서 죄의 문제가 있다.
인간은 어거스틴처럼, ‘죄 짓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죄 짓지 않을 수 있으며’(posse non peccare) 죄를 짓지 않아야 할 책임이 있다. 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펠라기우스에 의하면 인간은 은총의 도움없이도 인간본성의 개선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은총없이도 선을 행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인간의 본성안에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선을 행할 수 있는 은총이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된 인간 본성 그 자체를 은총으로 본다.
죄짓는 오랜 습관으로 선한 본성을 묻어버린 자들조차도 회개를 통해 회복될 수 있으며, 그들이 택한 삶의 방법을 바꿈으로 다른 습관으로 바꿀 수 있고, 죄악의 부류들을 최상의 부류의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
인간론: 인간의 본성에 대해
펠라기우스: 인간은 선한 본성으로 창조되었으며, 그 창조된 본성은 죄로 인한 타락에도 변함이 없다. 원죄로 인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악한 습성에 의한 결과일 뿐이다. 펠라기우스는 인간 본성의 가능성에 초점을 둔다. 창조된 인간 본성은 선함의 능력이 있으며, 따라서 선을 향해 인간은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 자체가 은총이다. (본성 자체가 죄스러운 상태(罪性)이 아니므로 은총이 필수적으로 요청되지 않는다).
인간은 충분히 도덕적인 능력을 유지하여 살 수 있고,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으며, 선을 행할 수 있으며, 완전한 삶도 가능하다. 여기서 은총은 도움을 주지만, 구원을 얻는데 은총이 반드시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은총은 단지 이것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는 ‘본성-은총’(natura-gratia)의 관계에 있어서 대조적인 관점을 보이고 있다. 펠라기우스는 인간 본성을 선하며, 결함이 없다고 옹호함으로써 은총의 필요성을 부인했다면, 어거스틴은 인간의 상태는 ‘타락한 본성’이므로, 은총은 본성에 초자연적으로 첨가되는 것(펠라기우스처럼)이 아니라, 결함있는 본성이 치유됨으로써 복구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인간 본성은 죄로 타락하였으며, 완전히 부패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거스틴에게 인간은 본성적인 죄인이며 죄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면, 펠라기우스는 본성적인 죄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악한 습성으로 죄를 지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 본성은 그 자체로 창조 은총이며, 양심, 율법, 자유의지를 통해 선을 행할 수 있다.
은총론과 구원
펠라기우스가 원죄를 부인하고, 인간 본성의 선함을 긍정한다 하여 구원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길은 시내산에서 제시된 율법의 계시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서 찾는다. 본래 율법은 인간 본성에 주어졌으나 죄로 인한 타락으로 왜곡된 하나님의 형상이 되었다. 따라서 율법은 타락한 본성에 대한 ‘교정’으로, 그리고 안내하는 본보기로 주어졌다. 율법이 인간에게 들어 올 때,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간의 본성사이에 공명(共鳴, 반향)이 일어나면서, 본성이 견책을 통해 정화되어 원래의 광채를 회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펠라기우스는 율법의 명령보다 그리스도의 모범이 더 변화로 이끌어 낸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한 교사’로서, 그 분의 가르침과 모범이 구원에 효과를 가져온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영향 아래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믿음에 동의에 도달한 사람에게 세례를 통하여, 죄를 사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능력이 더해지면, 회심 때까지 행해진 모든 죄의 잘못이 용서될 뿐만 아니라 죄된 습성도 무력화된다”(펠라기우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인간에게 죄된 태도를 버리고 의로운 삶의 변화를 가져 오도록 한다.
어거스틴은 율법이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모범을 통해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의로운 행위는 자유의지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의 도움없이 인간의 자유 의지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성령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은총이 작용해야만, 율법과 그리스도의 계명의 요구에 다다를 수 있다. 어거스틴에게 은총이란 본질적으로 내적 은총으로, 하나님의 사랑이며, 성령이며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선물이다. 또한 펠라기우스에게 모범으로 구원이 가능하지만, 어거스틴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이며, 모범과 성례(exemplum et sacramentum)를 통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은총과 자유의지
어거스틴에 따르면, 죄로 오염된 인간 본성은 선을 행하도록 작용받지 못하며, 도리어 죄의 성향앞에서 인간의 ‘자유’는 무기력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먼저 은총의 작용이 선사되어야 한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는 인간 편의 자유보다 하나님편의 주도권이 우선적이다(은총의 우위성).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총은 인간의 협력없이도 인간 안에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총에 직면하여 인간은 은총을 거절하거나 선택할 자유가 없다.
은총의 작용역사에서 인간은 은총에 의존적이며, 수용적이다. “은총은 인간이 의존해야 하며, 기다려야 할 것으로, 먼저 하나님께서 그의 자유로 선사해야만 하는 특별한 힘이며, 선물이다. 그것은 인간이 이미, 항상 보유하고 있는 소유물인양 (인간으로부터) 출발점을 갖는 그런 것이 아니다”
어거스틴 신학에서 자유의지론은 정확한 분석이 어려운 주제이다.자유의지(liberum arbitrium)란 선을 선택하고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어거스틴은 타락 전 아담은 자유의지를 소유했지만, 타락한 인간은 죄에 대해 무능력하게 됨으로써 <노예가 된 자유의지>(liberum arbitrium captivatum-노예의지가 아니다!)를 지니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의 상실’이지, ‘자유의지의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죄 이후에도 자유의지는 상실되거나 소멸된 것이 아니다. 다만 자유의지는 선을 행하는데, 부적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유의지는 은총에 의해 치유될 가능성이 있다.
어거스틴의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는 루터의 노예의지(servum arbitrium)와 내용적인 면에서 차이점이 있다. 루터는 타락 이후 인간의 의지도 타락하여 자유의지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며, 인간은 필연적으로 죄를 짓는 경향성만 있다는 것이다. 결국 타락한 인간의 의지는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할 능력을 지니지 못하고, 하나님이든 마귀든 초자연적 힘에 대항할 능력이 인간에게 없으며, 의지는 죄에 연약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한다. 루터는 ‘의롭게 되지 못한 죄인은 오직 악을 의지하고 행할 뿐’이므로 타락한 자유의지는 선을 행하는데 무기력하여 구원을 얻는데 아무런 능력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의지에 관한 어거스틴과 루터의 차이점은 루터는 인간의 죄된 행위를 숙명론적으로 바라보면서, 모든 일을 필연성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모든 악한 행위의 저자가 하나님이라고 단정한 반면, 어거스틴은 죄의 원인(책임)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어거스틴의 자유의지론은 오히려 루터의 관점과 다르게 악을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필연적으로 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운명주의나 결정론적 사고에 연루된 마니교적 가르침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은 타락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인간의 잠재력은 존재한다고 본다. 손상된 인격이나 품성이 너무 심각한 수준이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드러난다. 드러나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유명한 학자들은 이에 대해서 다양한 고민을 남겨 놓는다. 이는 신학적인 접근에서만이 아니라 사회계약론이 형성되는 시기에도 문제가 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그리고 자연에서 배우는 국가의 존재론, 소유권과 인간의 악함을 방지하기 위한 법의 정신 등등. 창조는 절대로 폐기되지 않지만 인간의 타락은 영원하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 세속적이라고 부르는 관점은 ‘국가‘와 ’법’을 통해서 인간의 죄악에 해방을 선사한다. 국가는 그런 의미에서 중세시대를 넘어서 현대가 되면 구원자로 등장하게 된다. 이것의 시작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서 등장한다. 많은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지난시간 교부신학을 넘어서 중세 카톨릭으로 오면 ‘자유의지‘의 문제와 ’성례’의 문제는 여전히 다양한 교파를 만들어내는 시작점이 되고 있다.
https://youtu.be/nZDnFPmp9Jg?si=cPSBVa5Bz39SmQ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