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큉 '그리스도교'_고대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헬레니즘 패러다임
지난시간에 알아본 고대교회의 헬레니즘 패러다임에서는 점차 교부철학이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교회적 전통으로 직분으로서 목사나 집사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울을 지나면서 교회라는 구조가 시스템으로 만들어지고 유대를 넘어서 로마와 고린도 지역까지 넘어가면 점차 이성의 영역의 확장으로 토론과 변론이 주가 되는 로마제국의 방식에 적응한다. 그러다보니 국가종교로서 그리스도교는 리더가 생기고 리더를 따르는 계층이 생기기 시작한다. 하나님나라를 선포하는 예수님에게는 이러한 계층이 없으나, 바울을 지나면서 로마시대에 적응한 결과 직분과 리더십 그리고 1대 교황인 베드로가 등장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확실히 우리의 왕이시지만 우리에게 지금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대리하는 인간의 존재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인간들 안에서 하나님과 더 가까운 인간이 존재한다는 교리가 생겨난다.
오늘은 이러한 체제가 형성되는 시간을 넘어서 조금 더 확장되는 부분을 살펴보자. 공의회의 발전을 통해서 교리가 정해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니케아 공의회에서부터 시작해서 칼케돈 공의회를 넘어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가 서로 분열하는 부분까지 살펴볼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는 고백을 하기까지 근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많은 이들이 화형을 당했다.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의 논쟁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논쟁, 비잔틴과 로마의 논쟁과 같은 것들이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는 역사적인 산물이다. 한번에 뚝딱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수 많은 논쟁과 싸움과 죽음의 토대 위에서 세워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minnation/4360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헬레니즘의 학문과 과학이 꽃피웠던 지역이다. 이 학파는 그리스도-로마를 대표하는 헬레니즘과 기독교를 종합을 꾀했던 학파로 신플라톤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결합하려고 했던 흐름이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유대인 학자 필론(Philon B.C.20-A.D.42)에서 태동하였고, 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수용하려 했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s Alexandrinus, 150-215), 뒤이어 이를 가장 활발하게 꽃을 피우게 한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가 대표적이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론은 인성보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치우침으로써 가현설적이거나 영지주의적 경향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극도로 강조하며,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결합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 학파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했던 아리우스파에 대한 강력한 반박으로 발전했으며, 그들의 기독론은 종종 '말씀-육신(Logos-flesh)' 기독론이라 불린다. 이 명칭은 하느님의 말씀(로고스)이 인간의 육신을 취하여 성육신이 이루어졌다는 그들의 핵심 주장을 잘 보여준다.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성육신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인 로고스가 인성을 흡수하고 지배했다고 보았다. 그러다보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성은 비인격적이고 수동적인 도구에 불과했으며, 신성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 안에 신성과 인성이 분리될 수 없이 하나의 위격 안에서 연합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은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육신만을 취했다고 설명하는 초기 형태의 견해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기독론적 입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하느님으로서의 권위를 확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대표적인 신학자로는 아타나시우스와 키릴로스가 있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파와의 논쟁에서 예수의 신성이 성부 하느님과 "동일한 본질"(Homoousios)을 가졌음을 주장하며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신학적 기초를 닦았다. 이후 키릴로스는 예수 안에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하나의 '자연'(physis)만 존재한다는 주장을 펼쳐, 마리아가 단순히 인간의 어머니가 아니라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라는 칭호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이는 예수가 완전한 신이면서 완전한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되, 두 본성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위격 안에서 통합되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신성 강조는 예수의 완전한 인성을 간과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예수의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어 독자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후에 단성론(Monophysitism)과 같은 이단으로 발전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단성론은 예수가 성육신 이후 신성과 인성이 합쳐져 오직 하나의 본성만을 가졌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논리가 극단적으로 전개된 형태였다. 결국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론은 안디옥 학파와 대립하며 에베소 공의회(431년)와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 논쟁을 통해 정통 기독교의 기독론이 정립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그렇다면 아리우스 학파는 어땠을까? 아리우스파의 논리는 예수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은 성부 하느님만이 스스로 존재하며,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유일한 신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예수는 성부와 본질적으로 같지 않으며,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보았다. "한때 성자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주장은 아리우스파의 핵심 논리로,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예수가 하느님보다 열등한 존재임을 강조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들은 예수를 피조물 중 가장 완벽하고 위대한 존재로 인정했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느님과 같을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기독교의 근간 교리인 삼위일체론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아리우스파의 주장은 초기 기독교 신학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이들은 하느님의 절대적인 유일성을 지키려는 신학적 입장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격하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들은 성부, 성자, 성령이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하고,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로서 신적인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기독교 교리 정립 과정에서 중대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아리우스파 논리의 영향은 단순한 교리 논쟁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졌다. 아리우스주의는 로마 제국 곳곳으로 확산되었고, 특히 여러 게르만족 부족에게 전파되어 로마 가톨릭 교회와 충돌하는 원인이 되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니케아 신경을 통해 예수가 하느님과 "동일한 본질"(Homoousios)을 가졌다고 선포하며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단죄했다. 그러나 이들의 사상은 이후 수십 년간 기독교 세계를 분열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아리우스파는 신학적으로는 패배했으나, 이 논쟁은 오히려 기독교 교리를 더욱 명확하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역사는 서서히 흐르다가 어느순간에 문제를 일으킨다. 역사상 유명한 니케아공의회가 325년에 있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아리우스에 대한 비판과 바른 교리 정립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여기서 공의회란 무엇일까? 공의회는 ‘콘칠리움’(Concillium)으로 부르는데, 이는 ‘주교들의 회합’, ‘혹은 ’그 회합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말한다. 이 공의회에서 신학적 의견의 차이로 인한 토론을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기독교를 믿는 신자들의 합의‘를 의미하는 콘센수스 피델리움’(Consensus fidelium)이라 부렀으며, 여기서 합의에 따라 신경의 조항이 만들어 졌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4대 보편공의회(ecumenical council)은 '니케아공의회(325) - 콘스탄티노플공의회(381) - 에베소공의회(431) - 칼케돈공의회(451)'로 정의해볼 수 있다. 이러한 공의회를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다양한 논쟁들이 정리 되었다.
니케아 공의회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열린 보편 공의회이다. 이 공의회는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가 주장한 이단 교리, 즉 아리우스파 이단을 단죄하기 위해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주도로 소집되었다.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이며, 따라서 하느님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공의회는 격렬한 논쟁 끝에 아리우스의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공의회는 예수가 성부 하느님과 "동일한 본질"(호모우시오스, Homoousios)을 가졌음을 선포하고, 이를 명시한 니케아 신경을 채택했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과 동일한 신성을 가진 존재임을 공식화했으며, 삼위일체 교리의 기초를 굳건히 다졌다.
이 공의회는 로마 황제가 직접 주관했다는 점에서 교회의 정치적 위상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381년)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도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논쟁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다. 특히 성령의 신성 문제가 새로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일부 신학자들은 성령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 주장을 펼쳤는데, 이들을 마케도니아파라고 한다. 이들은 성령이 하느님과 성자와 동일한 본질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피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의 주재로 콘스탄티노플에서 두 번째 보편 공의회가 소집되었다. 이 공의회는 성령 역시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신성을 가진 존재임을 재확인했다.
공의회는 니케아 신경을 확장하고 보완하여, 성령이 "성부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분"임을 명시했다.
이로써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동일한 신성을 가진다는 온전한 삼위일체 교리가 확립되었다. 이 공의회의 결과는 오늘날까지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앙고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에베소 공의회 (43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이후 삼위일체론이 정립되자, 교회는 새로운 논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결합되었는지를 다루는 기독론 논쟁이다. 이 논쟁은 주로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 간의 신학적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네스토리우스는 예수 안에 신성과 인성이 두 개의 분리된 위격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리아가 하느님이 아닌 인간 예수를 낳았으므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며,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키릴로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하나의 위격이라고 반박했다. 에베소 공의회는 키릴로스의 주장을 지지하며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단죄했다.
공의회는 예수가 하나의 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분리될 수 없이 결합된 존재임을 선언하고,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 Theotokos)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했다. 이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 중요한 사건이다.
칼케돈 공의회 (451년)
에베소 공의회 이후에도 기독론 논쟁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에베소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파를 물리쳤지만,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신성 강조는 또 다른 이단, 즉 단성론으로 발전했다. 단성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 이후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 오직 하나의 본성만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이는 예수의 완전한 인성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마르키아누스 황제의 주재로 칼케돈에서 공의회가 소집되었다. 이 공의회는 칼케돈 신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정통 기독교의 교리를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칼케돈 신경은 예수가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인간으로서,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거나 변화되지 않고(불혼합, 불변화), 분리되거나 나누어지지 않게(불분리, 불가분) 하나의 위격 안에서 연합되었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기독교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온전히 인정하는 교리를 확립했다. 칼케돈 공의회는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공의회 중 하나로 평가된다.
아리우스의 기본전제는 다음과 같았다. 아리우스는 오리게네스에 의해 강조되고 있던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hypostasis)에 관한 설명이 한 분 하나님을 삼신론(tritheism), 즉 다신교(polytheism)로 전락될 것을 우려했다. 아리우스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 분이다”라는 유일신론(Monotheism)을 유지
하는 것에 있었다. 그가 한 분 하나님의 신성을 강조한 이유는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의 영향 때문인데, 만물은 일자(the One)로부터 유출되어(유출설Emanation: 일자-정신-세계영혼-물질) 다시 일자에게 회귀한다는 일원론적 사고를 말한다. 신플라톤주의는 궁극적 실재 나 존재는 ‘하나’로 귀착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사고로부터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독립된 신적 본질을 지닌 하나님이 아니라 성부 한분만이 참된 하나님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며, 성부 외에 다른 존재는 피조물이 될 수 밖에 없다.
고대기독교에서(특히 3세기 교부신학에서) 성부와 성자의 본질적 동등성을 정립하기란 쉽지 않았다.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의 유일신론적 사유체계로부터 완전히 구별된 신학을 정립하기 전이었으므로, 성부 하나님의 신성은 부인할 여지가 없는 신앙고백이었지만, 성자의 신성을 고백하는 것은 유일신론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처럼 인식되는 문제였다. 따라서 오리게네스같은 여러 신학자들은 성자의 성자에의 종속론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기독교는 하나님의 유일성에 집중하여, 모나키아니즘(Monarchianism, 군주신론, 단일신론)을 내세우는데, 그들은 성부와 성자를 언급하면서도 하나님을 ‘유일한 원리’로 파악함으로써 성부와 성자를 동일위격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런 논리로 다신론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유일성을 보존하려했다.
아리우스 논쟁의 핵심
성경에 하나님의 아들인 성자가 성부이신 아버지로부터 “낳으셨다”는 표현이 여러 부분 등장한다. 그렇다면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피조된 존재가 되는데, (물론 아들이 세계를 지으셨다고도 말하지만, 어쨌든 아들은 출생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성자는 모든 피조물가운데 기원과 등급에서 가장 첫째이고 가장 으뜸이지만(그는 창조의 첫 번째 피조물이다), 그럼에도 어디까지나 그는 창조된(피조된) 존재일 뿐이다(피조물적 존재). 성자는 “완전한 피조물이기는 하나 다른 피조물가운데 하나가 아니며 출생한 존재이기는 하나 출생한 존재이기는 하나 출생한 다른 존재들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성자는 세상의 창조자이며 세상보다 먼저, 모든 시간에 앞서 존재한 분이지만, 그럼에도 성자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아들은 피조물적 존재이다. 아들은 다른 피조물보다는 우월하지만(피조물가운데서는 가장 으뜸이지만), 하나님보다는 열등한 중간적인 존재일 뿐이다. 성부만이 “출생하지 않은 분”이다. 아버지는 아들보다 먼저 존재하신 분이며, 아들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따라서 아들은 피조된 존재이다.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이 아니다. 동일본질(homoousios)이 아닌, 다른 본질(heteroousios)이다.
왜 아리우스는 아들에게 하나님의 동등한 신성이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을까?
신적 본질은 하나일 뿐이다. 만일 신적 본질이 다른 존재와 공유한다면, 즉 신적 본질이 다른 존재에게서도 발견된다면, 하나님이 여럿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단 한 분 하나님이라는 전제가 무너진다. 따라서 하나님의 신성(신적 본질)은 공유될 수 없다. 신적 존재의 비공유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은유어법이다. 이는 다른 피조물들가운데 아들의 등급을 강조하기 위한 높힌 말이지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한 존재이거나 지위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들의 지위는 그 자체로 아들의 본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의지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초월한 존재이며 변하지 않는 존재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한 신이 역사속으로 들어와 인간의 몸을 입을 수 있겠는가? 아들은 변화하는 존재이고, 도덕적으로 발전하며, 고통, 두려움, 슬픔, 피로를 느끼는 분이다. 그러한 아들의 특질은 불변성을 특징으로 하는 하나님 관념과 부합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무감정하고 부동의 신이다. 하나님은 불변적이다. 생성, 변화가 그에게 있어서는 안된다.
아타나시우스의 반론
아리우스파에 대해서 아타나시우스의 반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동일한 신성을 가진 존재라는 주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예수를 하느님이 창조한 피조물이라고 주장했던 아리우스파의 논리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었다. 아타나시우스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 핵심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구원론적 반론 : 피조물은 피조물을 구원할 수 없다. 아타나시우스는 구원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아리우스파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했다. 만약 예수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라면, 어떻게 그가 인류의 죄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오직 창조주만이 피조물을 구원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간을 구원하고 죄를 사하는 것은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만일 예수가 피조물에 불과하다면 그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의 죄를 구원하는 효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하느님과 동일한 신성을 가진 존재여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예배적 반론 : 피조물을 예배하는 것은 우상숭배다. 아타나시우스는 교회 공동체의 예배 행위를 근거로 반론을 펼쳤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를 하느님처럼 예배하고 경배해왔다. 아리우스파의 주장대로 예수가 하느님이 아닌 피조물이라면,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이 아닌 피조물을 예배해온 것이 되므로 우상숭배를 해온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아타나시우스는 이러한 모순을 지적하며, 교회가 처음부터 예수를 하느님으로 예배해왔다는 사실은 곧 예수가 참된 하느님이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아타나시우스는 예배의 본질을 통해 예수의 신성을 논증했다.
아타나시우스의 이러한 반론들은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니케아 신경을 채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니케아 신경은 예수가 성부 하느님과 "동일한 본질"(Homoousios)을 가졌음을 선포하며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을 정통 교리로 확립했다. 그의 신학은 이후 삼위일체 교리를 온전히 정립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으며, 그는 기독교 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니케아공의회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공의회라고 할 수 있다. 아리우스파에 대한 이단을 정죄하면서 그 논리를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더 알아보자. 아버지의 본질에서 태어나신 외아들인 예수그리스도. 이 구절은 성자는 성부의 본질을 전혀 공유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반박하게 위해, ‘성자는 성부로부터 태어났으며’, 그런데, 그것은 “성부의 본질로부터” 태어나셨다. 그 말은 성자는 하나님의 본질을 충만하고 완벽하게 공유하고 있다는 표현을 명시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참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으로서'라는 구절을 볼 수 있다. 아리우스는 성자는 하나님이기는 하지만, 비유적으로 그렇다거나 2등급 하나님이거나 열등한 하나님이거라는 식의 주장을 반박하게 위해 성자는 ‘참 하나님’으로 표현이다.
창조되지 않고 태어나신 분이라는 주장이 중요하다. 아리우스는 어떤 때는 성자가 창조되었다고 말하다가 어떤 때는 낳으심을 받은 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니케아는 “성부와 성자는 영원으로부터 존재를 공유하시 는 분이요, 성부는 영원으로부터 성자를 낳으신 분이다”라는 해석을 한 것이다. 이어서 아버지와 동일본질(homoousios)이시고라는 부분에서는 니케아공의회의 가장 탁월한 반아리우스적 표현을 위해, 그 유명한 ‘호모우시오스’(homoousios=homo+ousia)를 사용했다. 이 말은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으로부터 나신 분으로서 참된 하나님이시며 성부와 “같은 본질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사용된 호모우시오스(동일본질)는 성경에 등장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성자가 성부로부터 영원으로부터 낳으셨다는 신적 본질에 관한 적절한 표현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런데 호모우시오스(동일본질)라는 이 용어를 영지주의자들이나 사모사타의 바울은 다른 의미로 이해
했다. 발출, 즉 성자가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났다는 것이며, 둘째로, 하나님 밖으로의 발출, 즉 창조
라든가 성자가 세상으로 육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아리우스는 성부로부터 성자의 발출을 ‘하나님으로부터의 창조’(creatio extra deum)으로 생각한 반면, 니케아는 이 발출이 하나님안에서의 내적 발출, 즉 영원으로부터 낳음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니케아의 호모우시오스는 성자가 성부와 닮았다는 것만이 아니라 성자의 내적 발출(영원으로부터의 낳음)로 말미암아 성자는 성부와 완벽하게 같은 하나님이며, 그러므로 성자가 성부의 신적 본질을 완전하게 공유 한다는 것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니케아공의회의 실체와 본질에 대해서도 논의하게 된다. 여기서 hypostasis(위격)와 ousia(본질)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나 362년 삼위일체 교의를 선포할 때, 위격은 삼위일체의 위격의 의미로, 본질은 신성을 가리킬 때 사용하게 된다. 그리하여 칼케돈 공의회(451)는 hypostasis(위격)와 ousia(본질)의 용어를 구분하여 사용한다.
아폴리나리우스의 기독론
아리우스주의에 반대하고 니케아 신경을 지지하였다. 알렉산드리아 학파 전통에 서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구분은 오류라고 하여 두 본성을 반대하고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하나의 본성’이라 주장하였다. 그는 육체에 대한 말씀의 우위를 강조하여 “예수는 육체와 결합하였지만,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강조하여 말씀-인간 기독론의 유형인 안디옥 기독론을 반대한다. 말씀과 인간 예수가 두 본성으로 존재한다면 예수는 인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 ‘인간’은 우리가 예배하거나 경배할 수 없으며,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고 보았다.
아폴리나리우스에게 두 본성은 하나의 본성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그는 신성과 인성이 서로 교류한다는 속성교류에 공헌하였다.
네스토리우스의 기독론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였으나 기독론의 입장은 안디옥학파에 속한 인물이다.
인성을 강조하는 인디옥학파를 따라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격상하여 하나님을 낳은 자(Theotokos)라는 표현을 반대했다. 마리아가 하나님을 낳았다는 것은 신성과 인성의 구분이 혼동되므로사람을 낳은 자(anthropotokos)라고 하거나 그리스도를 낳은 자(Christotokos)라는 명칭을 주장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고마리아론(high Mariology)을 유지했다면(가톨릭과 동방정교회 전통), 안디옥학파는 저마리아론(low Mariology) 관점(개신교 전통처럼)에 서 있다.
성육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성은 결합 이후에도 변화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말씀과 육체가 뒤섞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말씀과 인간은 구별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신성과 인성은 나란히 각기 고유한 특성을 손상없이 간직되어야 한다.
두 본성은 JX안에서 구별없이 혼합(mixture)되거나 혼동(confusion)없이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두 본성은 연결되어 있으되, 위격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위격(hypostasis)으로, 즉 ‘단일한 위격’으로 통일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단성론이라는 오해가 있지만, 그는 참 하나님과 참 인간을 천명한 칼케돈신경에 서 있다. 여기에는 네스토리우스와 네스토리우스주의 사상의 차이에서 연유된 측면이 있다.
칼케돈 공의회
두 본성론에 대한 결론은 칼케돈 신경(451)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우리는 이 동일하신 아들이 신성에서 완전하시고 또한 인성에서도 완전하시며, 참 하나님(vere Deus)이시고, 참 인간(vere homo)이시며, 우리와 동일한 이성적 영혼과 몸을 가지셨음을 고백합니다. 성자는 신성에서 성부와 동일본질이시고, 인성에서 죄를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은 동일본질이십니다. 성자는 신성으로는 성부로부터 시간 이전에 나셨고, 인성으로는 마지막 날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동정녀 마리아,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에게 나셨습니다. 우리는 유일하신 한 분이며, 동일하신 그리스도, 성자, 주님, 독생자가 두 본성 안에서 혼동(confusion)이나 변화(change)나 분할(division)이나 분리(separation)되지 않음을 인정합니다. 두 본성의 상이성은 결코 연합으로 인해 제거되지 않으며, 오히려 각 본성의 고유한 성격은 보존되고 한 인격과 위격 안에서 결합합니다. 왜냐하면 두 본성은 분리되거나 두 인격으로 나누어지지 않고 오직 연합하며, 유일한 한 분이시며 동일하신 독생자 하나님, 말씀,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칼케돈의 의미 :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다. 신성에 있어 성부와 동일한 참 하나님이며, 인성에 있어 우리와 같은 참 인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두 본성과 한 위격이시다: 두 본성에도 불구하고 혼동이나 변화나 분할이나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위격으로 존재한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는 초기 기독교 교리,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설명하는 기독론에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졌다. 두 학파의 차이는 성경 해석 방법, 신학적 배경,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력하게 강조하는 기독론을 발전시켰다. 이들의 신학적 배경에는 헬레니즘 철학, 특히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이 있었다. 이들은 성경을 해석할 때 알레고리적(우의적) 해석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는 성경 본문의 문자적 의미보다는 그 안에 담긴 신비롭고 영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방식이다.
알렉산드리아 기독론의 핵심은 '말씀-육신(Logos-flesh)' 기독론이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로고스)이 인간의 영혼이 아닌 육신만을 취하여 성육신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이 관점에서 인성은 신성에 의해 흡수되고 지배되는 수동적이고 비인격적인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타나시우스와 키릴로스가 있으며, 이들은 아리우스파의 예수 신성 부정에 맞서 싸우고,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로 부르는 것을 옹호했다. 이들의 신학은 예수의 신성을 확고히 하는 데 기여했지만, 예수의 완전한 인성을 간과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후에 단성론으로 발전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안디옥 학파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대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강조하는 기독론을 주장했다. 이들은 성경을 해석할 때 역사적이고 문자적인 해석을 중시했으며, 성경의 내용이 실제 역사적 사건임을 강조했다. 안디옥 학파는 신학적으로 유대교 전통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안디옥 기독론의 핵심은 '말씀-인간(Logos-man)' 기독론이다.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로고스)이 완전한 인간을 취하여 성육신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은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고유한 본성을 유지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두 본성이 마치 한 건물에 두 명의 거주자가 사는 것처럼 결합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하나의 위격 안에서 연합되기는 하지만, 서로 뒤섞이거나 혼합되지 않음을 강조하는 방식이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네스토리우스가 있으며, 그는 예수의 인성을 강조한 나머지 신성과 인성이 마치 두 개의 위격인 것처럼 분리될 위험이 있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알렉산드리아 기독론과 안디옥 기독론의 차이는 마리아의 호칭을 둘러싼 논쟁으로 폭발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주장했고, 안디옥의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에베소 공의회(431년)에서 네스토리우스가 이단으로 정죄되면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논쟁은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 이 공의회는 두 학파의 장점을 절충하고 단점을 배제하는 정통 기독론을 확립했다. 칼케돈 신경은 예수가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인간'으로서,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 나뉘지 않고 하나의 위격 안에서 연합되었다고 선포했다. 이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신성 강조와 안디옥 학파의 인성 강조를 모두 포용하는 교리였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으로 동방정교회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먼저 왜 동방교회를 비잔틴이라 부르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동방교회를 비잔틴 교회(Byzantine Church)라고도 부른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2의 로마제국을 설립하기 위해 330년 비잔티움(Byzantium)이란 도시를 '콘스탄티노플이라고 했고, 이는 콘스탄틴이라는 자신의 이름에 폴리스라는 도시를 붙여서 이름을 만들었다. 이렇게 constantine+polis말이다. 그리고 현재는 투르기예의 이스탄불이다. 어쨌든 콘스탄티노플로 로 개명하고,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로마의 계승”이라는 차원에서 새 로마로도 불리웠다. 395년에 로마제국은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분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대로 동서방교회의 분열은 그 이후였다(1054).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동로마 제국의 중심지 콘스탄티노플은 영향력이 더 강력해졌다. 새 로마는 참된 구원의 국가이다. 비잔틴의 세 가지 근본원천들이라고도 부르는데, 비잔틴교회는 성상(icon)을 강조하고, 예전적인 특이점을 가지면서, 교회의 정치체제에 있어서 '국가와 교회의 일치' 체제를 띠면서 총대주교 합의체로 운영되게 되었다. 1054년 동서방교회의 분열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구별된 동방정교회가 비잔틴제국에서 형성되었다. 비잔틴 제국은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에 의해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멸망 하였다. 그러나 동방정교회는 비잔틴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존속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분열이 일어나면서 이후 중세시대의 교황과 황제의 싸움이 이어지는데, 이는 사실 교리차이와 기후 그리고 언어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구분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구분은 단순히 지리적인 위치 차이를 넘어, 수백 년에 걸친 언어, 문화, 신학, 정치적 환경의 복합적인 차이가 쌓여 발생한 결과이다. 이 두 교회는 1054년 동서 교회 대분열(Great Schism)을 통해 완전히 분리되었으며, 이는 오늘날의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라는 두 개의 주요 기독교 전통으로 이어졌다. 이 분열은 단순히 교리적 차이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분열 이후 서방과 동방이 각자 다른 길을 걸으며 형성된 정체성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언어와 문화적 차이 :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사용 언어에서 비롯되었다. 서방교회는 로마를 중심으로 라틴어를 사용했으며, 이는 로마법 전통의 영향으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방식을 발전시켰다. 라틴 문화권은 조직과 질서, 실용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이러한 특징은 서방교회의 교리와 교회 조직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반면, 동방교회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그리스어(헬라어)를 사용했다. 그리스 문화는 철학과 형이상학적 사변을 중시했고, 이는 동방교회가 교리적 깊이와 신비적인 예전(예배 의식)을 강조하는 신학적 전통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서방교회는 법적, 제도적 측면에 중점을 둔 반면, 동방교회는 신학적 사변과 예배의 신비성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신학적 차이 : 신학적 차이점 역시 두 교회의 분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방교회는 원죄와 구원의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서방 신학은 인간의 죄를 하느님과의 관계를 깨뜨린 법적인 문제로 해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이 죄의 빚을 갚아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삼위일체 교리에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모두 나온다(필리오케, Filioque)는 조항을 추가했다. 동방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동방 신학은 구원을 단순히 죄의 용서로 보지 않고, 인간이 거룩해지는 과정인 신성화(Deification)를 궁극적인 목표로 강조했다. 예수는 하느님의 신성을 인간에게 전달함으로써 인간을 신화시키는 존재로 이해했다. 이들은 삼위일체 교리에서 성령은 오직 성부에게서만 나온다고 주장하며, 서방교회의 필리오케 조항을 교회의 오랜 전통을 훼손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정치적 및 제도적 차이 : 정치적 환경의 차이도 두 교회의 분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서방교회는 세속 권력의 부재 속에서 로마 교황이 교회의 최고 권위자이자 서유럽 세계의 정신적, 때로는 정치적 리더십까지 발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교황의 권위는 점차 강화되었고, 교황이 전 기독교 세계의 수장이라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반면, 동방교회는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교회를 강력하게 보호하고 감독하는 체제 아래에 있었다. 이러한 황제교황주의(Caesaropapism) 경향은 황제가 종교적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을 허용했다. 동방교회는 로마의 교황을 다른 총대주교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존재로 인식하며, 여러 총대주교구(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등)가 분권적으로 운영되는 구조를 유지했다. 이러한 제도적, 정치적 차이는 결국 두 교회의 최고 권위를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져 대분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한스 큉은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를 단순히 역사적, 지리적으로 분리된 두 교파로 보지 않는다. 그는 두 전통이 지닌 신학적, 문화적, 제도적 차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이것이 그리스도교라는 하나의 커다란 나무에서 뻗어 나온 두 개의 다른 가지와 같다고 설명한다. 한스 큉은 두 교회가 서로 대립하고 분열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로를 보완하며 그리스도교의 풍요로운 유산을 형성해왔다는 통찰을 제공한다. 한스큉의 관점에서는 로마적 질서와 실용주의의 서방교회와 그리스적 신비와 영성을 간직한 동방교회를 비교한다. 책을 읽다가 보면 큉은 동방교회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세로 넘어가기 전에 헬레니즘 문화의 마지막 패러다임에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서방교회: 로마적 질서와 실용주의
한스 큉은 서방교회가 고대 로마 제국의 법과 질서, 그리고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본다. 이로 인해 서방교회는 다음과 같은 독특한 특징들을 발전시켰다.
법률적-제도적 사고: 서방 신학은 인간의 죄를 하느님의 법을 어긴 것으로 간주하며, 구원의 문제를 '속죄'와 '보상'이라는 법률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짊어진 대속적 희생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법률적 사고는 서방교회의 교회법과 제도에 깊이 뿌리내려, 교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교황 제도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로마 교황은 세속 권력의 공백을 메우며 교회의 최고 권위자이자 서유럽의 정치적 리더십까지 발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교황의 수위권은 서방교회의 핵심적인 특징이 되었다.
필리오케(Filioque) 논쟁: 서방교회는 삼위일체 교리에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모두 나온다는 '필리오케' 조항을 채택했다. 한스 큉은 이 조항이 성부와 본질이 동일한 성자의 신성을 강화하려는 서방 신학의 의도를 반영한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신학적 결정은 서방교회가 성자와 성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그들의 위격적 동일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동방교회: 그리스적 신비와 영성
한스 큉은 동방교회가 그리스 철학의 영향 아래 신비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신학을 발전시켰다고 평가한다. 동방교회의 전통은 로마의 법적 사고방식과는 다른, 영적인 경험과 존재론적 이해에 더 집중한다.
신성화(Deification) 교리: 동방 신학에서 구원은 단순히 죄의 용서가 아니다. 구원의 최종 목표는 인간이 성령의 은혜를 통해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과정, 즉 '신성화'이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과 신비로운 연합을 이루어 하느님의 신적 본성에 동참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학적 관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신성을 인간에게 전달하여 인간을 신화시키는 구원자로 이해하게 한다. 이로 인해 동방교회는 예배와 성사에 담긴 신비와 상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분권적 공동체: 동로마 제국 황제의 보호 아래, 동방교회는 로마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고 여러 총대주교구가 동등한 위상을 갖는 분권적 구조를 유지했다. 동방교회는 공의회를 통해 중요한 신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전통을 지켰으며, 이는 모든 주교들의 합의를 중시하는 공동성(conciliarity) 정신을 보여준다. 이들은 교황을 '동등한 자들 중 으뜸'으로 존중할 수는 있었으나, 그에게 전 교회를 다스리는 절대적 권한이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성령의 기원: 동방교회는 삼위일체 교리에서 성령이 오직 성부에게서만 나온다는 전통적인 교리를 고수하며, 필리오케 조항을 정통 교리에서 벗어난 것으로 간주했다. 이들의 신학은 성부 하느님을 삼위일체의 유일한 기원(source)으로 강조함으로써, 삼위의 위격적 질서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한스 큉은 서방교회와 동방교회가 서로 다른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 두 전통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깊이와 넓이를 풍요롭게 했다고 결론짓는다. 그는 두 교회의 분열이 비극적이지만, 그들이 지닌 상호 보완적인 유산을 통해 미래의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이렇게 보면 공의회를 통해서 소위 말하는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교리가 잡히고 그것이 제국 로마의 컨텍스트 안에서 각각 안착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큉이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지만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다수의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서 있는 현실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역사를 본질과 형태로 나눈다고 하면 각 패러다임마다 형태를 달라질지라도 본질인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 물론 그리스와 하나님, 마리아, 성령님과의 관계에서 다양한 이단이 나오기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동방교회의 전통과 서방교회의 전통이 모두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https://brunch.co.kr/@minnation/4352
https://brunch.co.kr/@minnation/2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