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이지 않은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습관은
보수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어린날 혹은 어떤 날
혼나야 했고, 수치를 당해야 했고, 굴욕적인 대우를 받아야 했기에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할 수 있도록
완벽이라는 자아의 벽을 세워야 했던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이들에 대해서 머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세상은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것과 함께
사랑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길도 있다는 것을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정체성을 만들어 냅니다.
스스로 지켜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서
그리고 자아와의 부단한 확신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했겠지요.
그렇게 한두 번 성공을 거두고 나면
그것이 진리와 나란히 서게 됩니다.
그 경험은 오직 자신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타적인 진리와 같은 선상에서 춤을 추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굳어진 세계관은 이제 온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 속에서 그대로 전해집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사회의 어떤 측면들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실의 어느 풍경
그리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정치의 한 단면들도
모두 두려움과 자기 확신에서 나오는 정체성이
거쳐간 곳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한편,
맞아요 당신의 말이.
한 때 그러한 때가 있었지요.
두려움과 한숨 그리고 절망의 한 가운데서
내일을 기대할 수 없었던 때를.
그때 우리 스스로 지키는 것조차 어려웠던 바로 그때
당신의 땀방울을 우리는 기억하고, 추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어서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길은
어느 정도
여유와 낭만과 자유가 있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변화된 세상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흑과 백의 분리로부터 나온
정확하고 명확한 한쪽의 논리가 아닙니다.
즐거움이란 것은,
놀이라고 부르는 것은
갈등으로 점철된 수 많은 경계선을 지워버리니까요.
그러니깐
사랑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을 경우에
대게 우리의 일상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늦잠을 잤습니다.
- 괜찮아요.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죠.
오늘 시험을 못 봤습니다.
- 아 그렇군요. 다음의 기회에 열심히 해 봅시다.
오늘 열심히 살지 못했습니다.
- 열심히 사는 것보다는, 매 순간 진정으로 했는가가 중요하겠죠?
오늘 이기지 못했습니다
- 삶은 이기고 지는 식의 단순한 길이 아니에요. 오늘 당신이 졌기 때문에 승리한 사람도 있을 테니. 기쁜 일이 아닐까요?
우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굳이 확실히 무엇인가를 나누는 식으로 당신의 정체성을
확정 짓지 않아도 됩니다.
삶은 이제 우리에게 좀 더 자유로워지라고 말하는데
이제 우리가 보수적으로 바라보면 정지된 세상을
조금은 느슨하고, 조금은 즐겁게
움직이는 세상으로
열어 놓으면 어떨까요?
저는 보수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아닙니다.
좌파와 우파를 나누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당신과 함께
이 아름다운 인생을 조금 더 희망적으로 만들어 가고 싶을 뿐입니다.
누군가 우리의 걸음을 볼 때
오롯히 동행하지만 절대 다른 이의 발을 밟지 않고도
즐거운 여정을 했노라고
기억하는 역사가 되길 희망할 뿐입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듯이
오늘도 당신과 함께 걸어가려고 하다 보니
생각하는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