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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일기

자연을 해석하는 방식은 왜 달라질까?

처음읽는 중국현대철학 2장_옌푸와 천연론

by 낭만민네이션

매주 나이오트와 함께 중국현대철학을 진행하고 있다. 벌써 캉유웨이를 지나서 옌푸로 왔다. 옌푸의 고민을 들으면서 변화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과도기 혹은 전환기에서 고민하는 지식인들을 보면서 남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국가론과 통치론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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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해석은 다르다. 해석은 이미 번역되어 있는 것을 자신의 나름대로 이해하는 과정이다. 번역이 되어야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번역은 완전히 다른 개념들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선택이 이루어진다. 라인하르트 코잘렉은 '개념사 시리즈'에서 개념은 '장소와 시간'의 교차점에서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깐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시간에 만들어지는 개념은 시간과 장소가 바뀌면 그 개념의 사용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언어'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프로토랭귀지'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어떤 단어나 개념이든 4단계로 구분하면 언어 속에 포함되어 있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원-정의-연결-유의'가 바로 그것이다. 개념의 시작에 대한 기원, 현재의 정의, 현재의 정의와 연결되는 것들, 비슷하지만 이 개념과 다른 것들을 차례로 살펴보는 것이다.


번역과 해석은 다르다.


개념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과 그것을 다른나라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라캉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의 무의식에 구조화되어 있는 개념들의 그물을 길어 올려서 어떤 것들이 실제로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일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기존의 생각들의 형식이 물러가고 외부에서 넘어오는 개념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때가 이다. 서양보다는 오히려 동양은 근대에 들어서 자주 있었던 일이다. 한국이나 일본보다 앞서서 중국은 먼저 '번역'의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오늘 우리가 알아볼 근대의 지식인인 옌푸는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의미있게 서양사상을 정의하고 번역한 사람이다. 그가 2년간의 영국 유학을 통해서 배웠던 서양사상의 정수는 기존의 중국사회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옌푸가 바라본 서양과 중국의 교차점에서 어떤 해석을 얻을 수 있을까? 특히 자연에 대한 해석이 사회에 대한 해석으로 넘어오는 사이, 그러니깐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가 바뀌면서 사회과학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는 과정을 깊이 있게 고민해보자.


옌푸는 누구인가

옌푸(嚴復, 1853~1921)는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에 활동한 중국의 근대 계몽 사상가이자 번역가이다. 그의 일생은 서양의 학문을 중국에 소개하고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격변의 시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초기 생애와 영국 유학 : 옌푸는 1853년 푸젠성(푸저우) 후관현에서 의사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유교 경전을 공부했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과거에 뜻을 접게 되었다. 그는 양무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푸저우 선정학당에 입학하여 서양의 항해술과 과학을 배웠다. 1877년, 청나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리니치 왕립 해군학교에서 해군학을 공부하였다. 영국 유학 중 그의 관심은 단순한 군사 기술을 넘어 서양의 사상과 제도에 대한 탐구로 향하게 되었다.

번역 활동과 사상적 영향 : 1879년 중국으로 돌아온 옌푸는 해군학당의 교관으로 일하였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배하자, 그는 서양의 사상을 중국에 적극적으로 소개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다. 그는 영국 철학자 토마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를 번역한 '천연론(天演論)'을 비롯하여 허버트 스펜서, 존 스튜어트 밀 등의 서적을 번역하였다. 이를 통해 사회진화론, 자유주의, 민권 사상 등을 중국 지식인 사회에 전파하였다. 그의 번역 원칙인 '신(信)·달(達)·아(雅)'는 단순한 언어 전환을 넘어 의미와 품격을 중요시했다. 그의 사상은 당시 중국의 변법자강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말년의 삶과 사상적 변화 : 청나라 멸망 후 옌푸는 베이징 대학의 초대 총장을 역임하고 위안스카이 정부의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공직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목도하면서 서양의 진화론적 사상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는 서양의 과학과 이성이 인류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점차 서양 사상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의 말년 사상은 불교, 노장사상 등 동양의 전통적 사상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였다. 1921년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옌푸의 번역 3가지 원칙

신(信):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번역자는 원문의 내용과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달(達): 의미를 자연스럽고 유창하게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단어 하나하나를 직역하는 것을 넘어, 번역된 글이 읽는 사람에게 매끄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되어야 한다.

아(雅): 문장이 아름답고 우아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옌푸는 번역된 글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문학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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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적 지식인의 탄생


1840년의 아편전쟁으로 중국의 근대철학이 시작되었듯이, 1894년 청일전쟁의 패배로 인해서 중화의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서양에게 졌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여전히 패자라고 생각했던 중국인들에게는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서 살펴본 캉유웨이와 같은 전통의 보수적이 측면에 반대하여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 전반적인 중국의 정치, 사회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더욱이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성공으로 청일전쟁에서의 화력을 보여준 것에 대해서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모방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따라서 청일전쟁 이후에 청나라 조정은 관비로 일본에 유학을 보냈고 민간 차원에서 일본의 신문물과 제도를 배우자는 논의가 일어났다. 사실 신해혁명으로 만들어진 1912년의 중화민국과 모택동이 만든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서양의 근대적 정치체제를 본받아서 건린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서양의 사상은 어떻게 중국에 소개된 것일까? 그 실마리가 바로 우리가 알아볼 옌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옌푸는 중국에서는 이르게 유학을 다녀왔다. 서양의 기술을 배우자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된 양무운동은 기존의 교육시스템을 바꾸어 놓았다. 양무운동의 일환으로 서양의 기술을 배우는 선정학당에 입학한 옌푸는 영어와 항해술, 자연과학을 배웠고 1977년에 그리니치 왕립해군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여기서 옌푸는 영국의 경험주의에 입각한 철학을 배우고 이후에 번역될 헉슬리와 스펜서와 같은 서양정신을 번역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다. 유학 전부터 서양지식을 배웠던 옌푸는 실제로 영국에서 발달된 기술과 철학, 사상을 배우면서 중국이 기존의 '전통'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바꾸지 않으면 아편전쟁과 같은 치욕은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옌푸는 유럽으로 떠난 최초의 유학생 답게 기존의 중화사상에서 벗어나 서양의 관점에서 국가론과 사회제도, 과학과 논리학을 배운다. 그리고 옌푸는 최조의 근대지식인 답게 '번역'을 시작한다.


옌푸가 번역한 책들

천연론(天演論) : 토머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Evolution and Ethics)'를 번역한 책이다. 그는 사회진화론의 '적자생존'을 민족 간의 생존 경쟁으로 재해석하며 당시 중국의 위기 상황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원부(原富)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서양의 경제학 이론을 소개하였으며, 자유 시장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개념을 중국에 전파하였다.

법의(法義) :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On Liberty)'을 번역한 책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서양의 사상을 소개하며 중국의 지식인 사회에 자유주의의 개념을 심었다.

사회통전(社會通詮) :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학 연구(The Study of Sociology)'를 번역한 책이다.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스펜서의 사회학 이론을 소개하며, 사회 질서와 진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군학이언(群學肄言) :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학 연구'를 번역한 책. '사회통전'과 함께 사회진화론과 사회 유기체론을 소개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명학천(名學淺) :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의 '논리학 입문(Elementary Lessons in Logic)'을 번역한 책이다. 기호 논리학의 기초를 소개하며 과학적 사고와 합리적 추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법의정신 :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The Spirit of the Laws)'을 번역한 책이다. 삼권분립과 같은 서양의 정치 및 법률 제도를 소개하며 근대 국가 체제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정치학사(政治學史) : 젠크스(Edward Jenks)의 '정치의 역사(History of Politics)'를 번역한 책이다. 서양의 정치 제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설명하며 중국의 정치 개혁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무나학(無那學):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학 체계(A System of Logic)'를 번역한 책이다. 논리학의 연역적, 귀납적 방법론을 심도 있게 소개하며 서양의 과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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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과 근대 중국


어느 나라나 국가가 위기에 빠지면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한다. 전통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고, 혹은 본질에 집중하자고 하면서 사람들의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옌푸와 같은 지식인들 그룹은 자발적으로 서양 세계의 다양한 사상을 수용하고 중국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서 해야하는 일이 서양사상을 학습하는 일이었다. 학습을 하려면 당연히 읽어야할 책이 필요했고, 근대의 지식인인 옌푸는 '번역'을 시작한다. 번역의 방식으로 새로운 외부의 지식을 배운 것은 이 때가 시작은 아니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인도불교를 수입하면서 불경을 한어로 만들었고, 천주교가 들어올 때는 유럽의 카톨릭 성경을 번역했다. 청나라 말기의 번역은 그러나 정치와 사회 전체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소위 말하는 거대한 논의를 하기 위한 재료였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일본은 서양사상을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일본어를 다시 중국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다.


번역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번역은 1대 1의 등가성 교환이 아니다. 두 언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번역이란 번역하는 쪽의 주체적 선택을 동반한다. 번역하는 쪽의 선택이란 번역을 통해 만들어낸 신조어가 번역되는 쪽 언어의 의미를 토대로 하면서도 번역하는 쪽 사회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고 사회적 권위를 확보하는 과정이다. 그러니깐 번역이란 번역을 하는 곳에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어떤 책을, 어떤 어휘와 문장으로 번역하는가는 번역자가 인식한 그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번역에는 그래서 가져오는 개념과 번역을 읽는 그 사회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 번역본을 버전대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옌푸가 번역한 '천연론'은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 즉, 'evolution and ethics'를 '자연선택'으로 번역한 것이다. 자연에 대한 번역을 통해서 서양 사회가 어떻게 진화를 이해했는지를 볼 수 있다. 물론 헉슬리는 자연은 진화하고 인간은 윤리를 만들어 낸다고 하는 방식으로 책을 썼지만 옌푸는 오히려 '적자생존'의 의미를 더욱 담아서, 자연에 적응하여 살아남은 존재만 현존할 수 있다고 번역했다. 그래서 옌푸는 서양의 사회진화론을 중국으로 가지고 와서 정치적 개혁의 정당성과 변법의 이론을 제안한다. 이러한 옌푸의 번역으로 이 책을 읽는 지도층들은 국제정치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었고 열강의 침략에 대해서 일을 갉고 있던 청년들에게는 혁명이 가능해지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다. 옌푸에게 번역은 지적인 상상력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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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연과 진화_근대 중국의 사회진화론


이제 본격적으로 옌푸가 번역한 책들을 알아보자. 옌푸가 번역한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는 원래 제목이 'Evolution and Ethics And Other Essays'였다. 이 책이 1893년에 출간되었는데 옌푸는 3년 후에 1896년에 초벌 번역을 마쳤다. 옌푸는 자신의 견해와 해석 그리고 각주를 통해서 유럽사회에서 헉슬리의 논의가 어떻게 소개되고 평가되는지 보여주었다. 헉슬리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후 계속해서 회자된 '진화론'의 옹호하는 편에 섰다. 그러나 헉슬리는 죽기 1년전에 생물학적 진화론을 무한으로 긍정하면서 '경쟁의 원리'를 극한까지 밀고 나가는 것은 개인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적자생존'으로 끝까지 살아남은 개체가 윤리적으로도 최선이라고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마지막까지 남았으면 '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 남았다고 해서 옳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이러한 비판은 스펜서를 두고 한 말이었다. 스펜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진화론으로 확장하여 생물의 영역 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회 모든 영역에서 진보가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서 헉슬리는 자연세계의 가혹한 생존경쟁과 인간사회의 윤리적 과정을 서로 적대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이것을 헉슬리는 자연과 인위의 과정으로 구별하고, 인위의 과정은 경쟁을 유발하는 조건들을 제거함으로써 가혹한 경쟁을 멈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자히한 자기주장이 펼쳐지는 무한경쟁의 '적자생존'이 아니라 자제와 자기억제라는 윤리적이고 인위적인 기준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연의 변덕스럽고 욕망적인 본성에 대해서 헉슬리의 '번역'은 인위를 통해서 잘 다스려야 한다는 '도적적 진화'를 주장했다. 이름하여 moral evolution이다. 따라서 헉슬리가 내다 본 사회진화론의 과제는 이러한 자기억제를 내재화하는 것이었다.


옌푸는 헉슬리가 사용하는 자연nature을 '천행'으로, 인위artificial를 '인치'라는 전통어로 번역했다. 중국고대철학은 오래전부터 인간과 하늘, 천과 인의 조화를 이야기했었다. 헉슬리의 주장을 옌푸는 학습하면도 오히려 스펜서가 말한 자유주의로 받아친다. 스펜서는 자유주의 사고에 근거한 낙관적 사회진화론을 주장했고, 옌푸는 이를 받아서 사람이 하늘에 의지하지 않고 자연세계를 극복해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관을 정립하고자 했다. 이른바 천일분리론은 하늘과 인간을 분리하고 그 두 주체의 천인합일론으로 나아갔다. 스펜서의 견해로 비판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헉슬리가 주장한 인간행위를 통해서 사회가 자강과 종족보호, 정치적 영역으로 확장되기를 원했다. 아편전쟁 이후로 열강의 공격으로 무너진 청나라 말기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꺼내 헉슬리와 스펜서의 카드였다. 이렇게 보면 결국 번역 작업을 통해서 청나라 사람들의 세계관을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

진화론적 과정과 윤리적 과정의 대립 : 헉슬리는 진화의 과정과 윤리적 과정이 서로 대립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무자비한 생존 경쟁을 벌이는 곳이며, 이는 이기적이고 냉혹한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반면에 윤리는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며 만들어낸 인위적인 산물로, 자연의 법칙에 저항하며 연민, 협력, 자기희생과 같은 이타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우주 과정'과 '원예 과정'의 구분 : 헉슬리는 진화의 자연적 과정을 '우주 과정(cosmic process)'으로, 인간이 윤리를 통해 사회를 가꾸는 과정을 '원예 과정(horticultural process)'으로 비유한다. '우주 과정'은 통제 불가능한 자연의 무질서한 경쟁을 의미하며, '원예 과정'은 인간이 정원을 가꾸듯 윤리를 통해 야만적인 자연을 극복하고 문명화된 사회를 건설하는 노력을 의미한다.

진화론이 윤리적 근거가 될 수 없음 : 헉슬리는 사회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진화론이 윤리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자연의 법칙이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며, 인간은 자연의 냉혹한 법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거스르고 윤리적인 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윤리는 자연의 적자생존을 넘어서는 인간의 도덕적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허버튼 스펜서의 '사회학 연구'

사회진화론 : 스펜서는 찰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사회 현상에 그대로 적용하였다. 그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고, 자연의 냉혹한 생존 경쟁이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보았다. 그는 사회가 군사형 사회에서 산업형 사회로 진화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전쟁과 강압에 기반한 단순한 사회에서 상호 협력과 개인의 자유에 기반한 복잡한 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진화는 점진적이고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였다.

사회 유기체론 : 스펜서는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에 비유하였다. 사회는 개개인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초유기체(super-organism)'이며, 사회의 각 부분(정치, 경제, 종교 등)은 마치 생명체의 각 장기처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회의 분화와 전문화는 생명체의 진화 과정과 유사하며, 각 부분의 기능이 점점 더 특화되면서 전체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효율적으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자유방임주의 (laissez-faire) : 이러한 진화론적 관점에 따라 스펜서는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최소한 개입을 강조하는 자유방임주의를 옹호하였다. 그는 정부가 빈곤 구제나 교육과 같은 사회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사회의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을 방해하고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인류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믿었다. 약자들이 자연스럽게 도태되어야 사회가 더 강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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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유와 민주_근대 중국의 자유주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기존의 중국 철학의 전통에서 보면 그렇게 흔한 단어는 아니다. 오히려 서양철학사에서는 꾸준히 자유와 민주라는 개념을 다루어 왔다. 옌푸는 중국이 서양에 비해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기술이나 힘이 약한게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질서를 형성해가는 기본 원칙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규정하였다. 그래서 자유와 민주 등 서양의 정치적 이념을 통해서 새로운 사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옌푸는 서양 사회의 근본원리는 학문에서 진리를 존중하고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물론 이러한 진리와 사회 정의 추구는 중국 역사에서도 계속 있어 왔지만, 서양의 자유와 중국의 부자유는 큰 흐름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인은 '자유'의 가치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에서부터 국가가 자유라는 가치를 사용하는 것까지 옌푸는 분석하기 시작한다.


중국 사회는왜 자유라는 개념을 억압했을까?


옌푸는 당송팔대가의 일원이면서 불교와 도교를 비판하고 유교의 정당성의 기초를 제시한 한유(768-824)를 찾아낸다. 한유가 전제한 것은 동물보다 약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사회을 구성해야 하며, 이러한 정치적 사회는 '군주-신하-인민'이라는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이루어 진다. 개개의 인민은 자발적으로 사회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인민을 조직하고 사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충돌을 조절하고 자연적 재해와 사회적 재난을 해결하기 위한 '성인'이 필요하다. 성인은 정치적 지도자이며 군주로서 인의에지의 도덕을 가지고 인민을 교화하는 스승이기도 하다. 바로 이것이 문제이다. 사회 전체가 군주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나라는 흔한 말로 엘리트주의에 의한 사회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에 사회변화나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옌푸는 사회는 성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사회진화론인 것이다. 여기에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민이며, 인민은 사회를 형성할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민들에게 자유를 확대함으로써 사회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인민은 욕망이 있고 생산과 유통활동에 종사하고 있어서 자신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동시에 할 수 없기 때문에 '분업'을 통해서 협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에 따라서 군주는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개인은 생산의 일부를 군주에게 제공한다.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는 영원불변의 법칙이 아니라 부득이하게 요청되는 이념인 것이다. 이것을 보통은 '통치론'이라고 부르고 나라마다 그것을 헌법에 기록하고 있다. 근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옌푸와 같은 학자들은 '주권재민'의 원리를 외치며 입헌군주국에서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전환을 외치는 것이다.


'자유를 체로 하고 민주를 용으로 삼는 것'이라는 주장을 한 옌푸는 자신의 책 '강함이란 무엇인가'에서 인민의 자유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며, 인민이야말로 천하의 참된 주인이다'라고 주장한다. 한명의 성인이 만들어가는 국가질서가 결국 아편전쟁과 청프전쟁, 청일전쟁을 패배로 이끈 요인이다. 더욱이, 인민들의 역량을 무시하고 의욕을 상실하게 하는 엘리트주의가 문제이다. 따라서 인민들의 자유를 증진하면서 분업에 의한 생상력이 증대하고 이를 통해서 개개인의 성과가 사회 전체로 확대하는 꿈을 꿀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천연적인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발전하고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보편원리에 따라서 운영되는 국가체계를 가진 서양 사회는 발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유와 분업의 진화의 원리는 곧 과학기술로 연결되며 서양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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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양의 과학과 철학, 그리고 중국의 근대철학


주국은 경사자집의 4분류법을 사용했다. 경전, 역사, 제자백가, 개인 문집으로 분류하는 전통적인 구분법은 사서오경을 중심으로 하는 유교가 기본적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아편전쟁 이후 서양서적이 대량으로 번역되면서 기존의 체계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분과학문' 체계가 수입되면서 근대적 교육제도가 만들어진다. 중국 최초의 근대적 대학이라고 볼 수 있는 '경사대학당'은 1898년에 설립되었으며 전문 분과에 유교의 경전을 포함하여 8개의 학과를 가르쳤다. 정치, 문학, 격치, 농업, 공예, 상무, 의술에 더해서 경학까지 하면 8개의 분과학문이 된다. 옌푸는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이 근대적 학제를 가질 수 있도록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사회진화론을 소개하면서 생물학과 사회학을 소개했다. 앞서 살펴본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가 바로 그것이다.


천연론의 서문에는 '논리학, 수학, 화학, 물리학이야말로 서양의 학문에서 가장 실제에 부합하고, 그 법칙을 이용해서 다양한 변화를 설명해 낼 수 있다'라고 하면서 서양학문의 특징을 적어 놓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철학'은 일본인 학자 '니시 아마네'가 이해한 philosophia를 '깨달을 철, 배울학'으로 번역한 것이다. 일본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일제시대에 한국에 들어오면서 '철학'이라는 단어로 굳어졌다. 이에 비해서 옌푸는 철학의 원래 의미인 philo(사랑하다)와 sophia(지혜)의 뜻을 살려 '애지'로 번역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옌푸는 서양사상을 소개할 때 나름대로 중국의 상황과 시대적 배경에 맡는 단어로 번역을 했다. 분과학문의 다양한 서약 서적들도 이런 기본에 의해서 번역되었다.


옌푸가 번역한 '천연론'은 사회진화론의 핵심으로 과학과 논리학을 꼽는다. 근대 교육을 받고 유학을 다녀온 옌푸는 '격치'라는 용어에 누구보다 익숙해져 있었다. 원래 '격치'는 유교의 경전인 '대학'편에 나오는 격물치지의 하나로 송대의 사상가인 주희에 의해서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탐구하는 것'으로 이해 되었다. 일상 속에서 지식을 연마하고 도덕적 실천을 확보하는 수련의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분과학문이 들어오고 나서는 격치는 천문학, 지질학, 고등산학, 화학, 물리학, 동식물학 등 자연과학을 가리키는 용어들로 바뀌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옌푸는 부국강병을 위해서 격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언제 어디서나 성립하는 보편타당한 공리를 확립해 가는 과정'이 격치였다.


격물의 해석

격물(格物):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다

전통적 의미: 유교 철학에서 격물은 사물의 이치(理)를 끝까지 탐구하여 궁극적인 도덕적 원리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옌푸의 재해석: 옌푸는 격물을 실험과 관찰을 기반으로 한 서양의 과학적 탐구로 보았다. 즉, 책상에 앉아 사물의 이치를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현상을 직접 연구하고 과학적 법칙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전통적 학문 태도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치지의 해석

치지(致知): 지식을 완전하게 하다

전통적 의미: 치지는 격물을 통해 얻은 지식을 완성하고 마음의 앎을 온전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도덕적 앎을 극대화하는 정신 수양의 과정이다.

옌푸의 재해석: 옌푸는 치지를 과학적 지식을 확장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것으로 보았다. 과학적 탐구(격물)를 통해 얻은 지식을 실제 국가 운영이나 산업 발전에 활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루는 실용적 목표로 삼은 것이다.


'천연론'에 이어서 밀의 '자유론'과 제번스의 '논리학 입문'을 번역하여 출판한 옌푸는 논리학에 진심이었다. 특히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이 가지고 있는 귀납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주희의 격물치지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했다. '주역'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보이는 것으로 나아가고, '춘추'는 보이는 것을 미루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아간다는 풀이를 했는데, 주역은 연역적 방법, 춘추는 귀납적 해석으로 본 것이다. 캉유웨이와 다르게, 옌푸는 서양의 철학을 가지고 과거의 경전들을 재해석해 간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을 보는 방식'을 논리학과 경험주의로 보는 영미철학 전통을 번역해서 중국의 고대철학은 근대로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자연의 논리가 사회의 논리가 되고, 사회의 논리가 국가의 논리가 되는 것이다. 옌푸는 이렇듯이 연역법보다는 귀납법을 중시했다. 이는 서양철학이 가지고 있는 자연과학에서의 귀납법이 근대 이후 사회를 '과학적으로 보는' 방식으로 설명한 '사회진화론'의 의도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밀의 경험주의와 로크의 백지설도 수용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본유관념이 있는게 아니며, 양지와 양능도 존재하지 않는다. 양지와 양능처럼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경험이나 학습은 없으며 로크가 말하듯이 인간은 태어나면서는 백지상태인 tabula rasa인 상태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백지 상태에 인간이 귀납법적으로 실험하고 살펴본 지식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옌푸는 스펜서의 '사회학연구'를 '군학이언'으로 번역하면서 과학적 법칙을 이용해서 인간의 집단 변화의 단서를 살피고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설명력을 갖는 자료들을 수집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정치도 '정치과학'이 된다. 요즘에는 '정치공학'이른 말이나 '사회과학'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지만 이미 120년전부터 중국에서는 옌푸와 같은 학자들이 정치를 과학으로 이해했다는 것은 그 시대에 '정치적 개혁'이 핵심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적 방법론의 한계는 없었으며 옌푸가 정리한 분과학문들은 모두 과학적 방법론으로 정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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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옌푸는 그의 스승들이 인정한 것도 수용했다. 그것은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으며, 경험주의적 인식이 미칠 수 없는 불가지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인지학파'가 말하는 것처럼 인지영역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수용했고 '대칭성'으로써 존재하는 것들만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인용하면서 인간의 인식이 관념과 경험이 서로 일치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음 속의 과념이 대상세계와 일치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자연과학의 핵심이었다. 이렇게 자연을 인식하는 방법론을 사회를 인식하는 방법으로 확장했으며 더 나아가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으로 정립하였다는 데에서 옌푸의 효과가 평가 받는다. 과연 자연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인간이 만들어가는 사회를 분석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직도 미지수이기는 하다. 아니 더 많은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 사회진화론에서 더 나아가 진화경제학의 측면에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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