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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과학일기

인간과 사물은 어떻게 동맹을 맺는가? feat. 라투르

부르노라투르의 '사물의 역사'

by 낭만민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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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르의 접근의 핵심은 우리가 지식과 과학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각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는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말 전시에서 영감을 받아, 지식이 단일한 흐름이 아니라 두 가지 연속적인 형태의 결합임을 발견한다. 첫째는 생물학적 진화, 즉 자연 그 자체의 점진적인 변화인 '재생산 양식(REP)'이다. 둘째는 이 변화에 대한 인간의 해석, 다시 말해 과학적 지식이 발전하는 과정인 '지시 양식(REF)'이다. 라투르는 이 두 가지 흐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혼종적 관계임을 강조한다. 과학적 지식은 단순히 불변하는 대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라, 대상의 역사와 그 대상을 인식하는 우리 자신의 역사가 동시에 작동하는 복잡한 결과물인 것이다. 재생산양식과 지시양식의 결합이 결국 과학지식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지식이나 사실은 불변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물의 동맹을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우리는 흔히 과학적 발견을 이미 존재하는 진리를 인간이 찾아내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뉴턴이 중력을 '발견'했고 파스퇴르가 미생물을 '발견'했다고 말할 때, 마치 중력과 미생물은 인간의 발견 순간만을 기다리며 불변의 상태로 존재해 온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라투르는 이러한 전통적 관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는 과학적 발견을 발견하는 주체(과학자)뿐만 아니라 발견되는 대상도 함께 변화시키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사물은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역사성과 행위성을 가진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이 잘 알려진 행위자 네트워크의 핵심이며, 사물이 스스로 '행위'한다는 개념의 신유물론적 관점이 등장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늘은 부르노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후 사물과 지식이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를 알아보자.



부르노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행위자(Actor)의 확장 : 라투르는 '행위자'의 개념을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사물, 기술, 개념, 미생물 등)까지 확장한다. 전통적인 사회 이론이 인간 행위자만을 중심으로 사회 현상을 분석했다면, ANT는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행위자'라고 본다. 예를 들어, 과학적 사실이 정립될 때 과학자(인간)뿐만 아니라 실험 장비, 논문, 데이터(비인간) 역시 그 사실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네트워크(Network)의 유동성 : ANT에서 네트워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형성되고 변화하며 해체되는 유동적인 연결망이다. 행위자들은 서로를 번역(translation)하고 조정(co-ordination)하면서 일시적인 연결을 맺는다. 이러한 관계는 안정적인 '구조'로 굳어질 수도 있지만, 언제든 새로운 행위자가 참여하거나 기존의 행위자가 이탈하면서 변화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 관계가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들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칭성(Symmetry) 원칙 : 라투르는 분석자가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모두를 동일한 원리로 설명해야 한다는 '일반화된 대칭성'을 주장한다. 이는 인간의 의도나 사회적 요인으로만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적 혁신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술의 성공을 오직 과학자의 뛰어난 아이디어로만 설명하는 것은 불완전하다. 그 기술을 가능하게 한 재료의 속성이나, 기술을 확산시킨 사회적 시스템의 역할 등 비인간 행위자들의 기여 또한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번역(Translation) 개념 : '번역'은 다양한 행위자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다. 이는 한 행위자가 자신의 이익이나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른 행위자들을 설득하고, 유도하고, 때로는 강제하여 자신의 네트워크에 편입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다. 번역은 네 가지 단계(문제화, 이해관계 설정, 동원, 번역)로 이루어지며, 이 과정을 통해 행위자들은 일시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고 네트워크를 확장해나간다. 지식이나 기술이 확산되는 것은 곧 이 번역의 성공적인 결과인 것이다.

블랙박스(Black Box)화 : '블랙박스화'는 한때 복잡하고 논쟁적이었던 과정이 해결되어 마치 당연한 사실처럼 굳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전기는 수많은 과학적 논쟁과 기술적 실험을 거쳐야만 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복잡한 과정을 알 필요 없이 전등 스위치를 누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ANT는 이러한 블랙박스가 열리고 닫히는 과정을 분석하여,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지식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기술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라투르의 인간-사물 동맹의 3가지 논제 feat. 인간, 사물, 동맹

비대칭적 분석의 거부: 라투르는 과학이나 사회 현상을 오직 인간의 의도나 사회적 요인만으로 설명하는 것을 거부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술의 성공을 발명가의 천재성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그 기술을 가능하게 한 물질의 특성, 실험 장비, 그리고 그 기술을 확산시킨 사회적 시스템 등 비인간 행위자들의 역할 또한 동등하게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물의 행위성: 라투르에게 사물은 단순히 인간의 의도를 담는 수동적인 도구가 아니다. 사물은 그 자체로 인간 행위자들의 행동을 제약하거나 가능하게 하는 능동적인 힘을 가진다. 예를 들어, 속도 감시 카메라는 운전자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좁은 통로는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며, 닫힌 문은 외부인의 진입을 막는다. 이처럼 사물은 인간의 의도와 별개로 특정한 행동을 유발하거나 억제하는 '행위성'을 지닌다.

지식의 생성 과정: 라투르에게 지식이나 사실은 불변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물의 동맹을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과학자는 실험 도구와 재료, 데이터, 그리고 다른 과학자들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새로운 사실을 '번역'하고 '구성'한다. 이 과정은 과학자라는 인간 행위자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수많은 비인간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복잡한 네트워크 안에서 이루어진다. 결국 지식은 이 동맹의 일시적인 안정화인 셈이다.


부르노라투르는 누구인가

부르노 라투르는 1947년 프랑스 디종에서 태어난 신학자이면서, 철학자이자 인류학자, 사회학자이다. (신학자라는 지칭은 박사논문에서 가져온 것이다.)와인 생산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에는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이후 인류학에 대한 관심으로 코트디부아르에서 연구를 수행하며 현지 기업의 기술자와 종교 의식을 조사했다. 이 경험은 그의 후기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학 연구소에 몸담으며 과학 연구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그의 주요 저서인 '실험실 생활(Laboratory Life)'은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어떻게 연구하고 지식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록으로, 과학이 결코 사회와 분리된 객관적인 진리 탐구 과정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라투르에게 '사실'은 불변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물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되는' 결과물이다. 과학적 발견은 과학자 개인의 천재적인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실험 도구, 데이터, 문서, 그리고 연구 자금과 같은 수많은 비인간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처럼 라투르는 한때 논쟁적이었던 주장이 여러 행위자들의 동맹과 노력으로 '블랙박스화'되어 마치 당연한 사실처럼 굳어지는 과정을 분석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자연과 사회를 분리하는 근대적 사유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라투르의 사상은 과학기술학을 넘어 사회학, 인류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했다.

라투르가 보는 행위자들의 연결망


1. 지식의 역사와 사물의 역사


라투르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바로 '사물의 역사'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사를 '세계에 대해 우리가 가진 지식의 역사'라고 생각하며, '세계 그 자체의 역사'와는 분리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라투르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한다. 그는 과학의 대상 그 자체도 역사를 가지며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다고 말한다. 이 관점은 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여기는 '사실'의 생성 과정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한병철의 '사물의 소멸'을 보면 사물들이 인간과 동일하게 생성되고 나서는 각자의 시간을 가진다. 들뢰즈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사물들은 우리가 투사하거나 유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무의식'이다. 우리가 의식할 수 업슨 대상이다. 그러니 이런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는 '해석과 번역'의 작업은 지금까지 한쪽의 이야기만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스퇴르가 효모를 발견한 사건을 살펴보자.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파스퇴르의 발견 이전에 이미 효모가 존재했으며, 파스퇴르는 단지 그 숨겨진 실체를 드러낸 것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라투르는 이러한 관점이 효모라는 사물의 역사성을 박탈한다고 지적한다. 효모가 단지 발견되기를 기다린 수동적 존재라면, 그 발견의 역사는 오직 인간의 역사, 즉 과학자 개인의 노력으로만 남게 된다. 라투르는 이와 달리, 효모가 파스퇴르의 잘 설계된 실험실 안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실험 과학자, 도구, 기호, 텍스트 등)과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사실'로 제조되고 구성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이 과정을 통해 효모는 존재하지 않던 상태에서 존재하게 되는 역사성을 획득하게 되며, 이로써 발견의 역사와 사물의 역사는 분리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파스퇴르화

브루노 라투르는 '파스퇴르 효과'를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파스퇴르 효과를 통해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사회적, 물질적 요인들과 결합되어 형성되는지 설명하는 핵심적인 사례로 활용했다. 이는 그의 저서 '프랑스의 파스퇴르화(The Pasteurization of France)'에서 심도 있게 다뤄지고 있다.

파스퇴르 효과의 재해석 : 라투르에게 파스퇴르 효과는 산소의 유무에 따른 효모의 발효 변화를 넘어선다. 그는 파스퇴르의 실험실을 하나의 '행위자-네트워크(Actor-Network)'로 보았다. 이 네트워크에는 루이 파스퇴르(과학자)뿐만 아니라, 효모(미생물), 설탕물, 실험 용기, 현미경, 그리고 심지어 공기(산소)까지 포함된다. 이 비인간 행위자들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효모의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능동적인 참여자이다.

라투르는 파스퇴르가 공기를 실험의 핵심적인 변수로 만들고, 효모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그 결과를 문서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번역(translation)'이라고 설명한다. 이 번역 과정을 통해, 효모의 단순한 생물학적 활동은 산소의 유무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파스퇴르 효과'라는 과학적 사실로 재탄생하게 된다. 즉, 효모의 행위는 파스퇴르의 실험실 네트워크 안에서 새롭게 의미가 부여되고 정립된 것이다.

지식과 사회의 혼종성 : 라투르는 파스퇴르 효과가 단순한 과학적 발견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고 주장한다. 파스퇴르는 이 발견을 통해 미생물이라는 새로운 행위자를 발효 문제뿐만 아니라 질병의 원인으로까지 확장시켰다. 이를 통해 그는 포도주 산업, 목축업, 심지어 공중 보건 시스템까지 '파스퇴르화'시켰다.

라투르에게 파스퇴르 효과는 자연(효모의 생물학적 특성)과 사회(과학자의 실험, 산업적 응용, 공중 보건 정책)가 분리될 수 없는 혼종적 관계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식은 자연적 실체로부터 단순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물들이 얽힌 복잡한 동맹을 통해 생산되고 확산되는 것이다.




2. 전통적 인식론의 도약과 라투르의 연속성: 지식의 궤적


라투르는 지식에 도달하는 방식에 대한 전통적 인식론, 즉 '도약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도약론에 따르면, '원자'라는 용어는 중간 과정 없이 곧바로 원자라는 실체(혹은 이데아)를 직접 지시한다고 본다. 이는 언어와 실재 사이에 어떤 존재론적 간극도 없으며, 용어가 곧바로 존재를 뛰어넘어 지시한다는 관념이다. 그러나 라투르는 이러한 도약론이 지식의 복잡한 형성 과정을 무시한다고 지적한다. 그도 그걸것이 라투르가 말하는 행위자 네트워크의 흐름에서 볼 때는 지식은 인간이 한 순간에 발견해서 지적수준의 성장으로 도약한다는 것은 비인간행위자의 네트워크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도약론이 아니라 오히려 연속적이고 작은 수준의 번역이 핵심이라는 것이 라투르의 주장이다.


도약론의 핵심 내용

불연속성과 비누적성: 도약론은 지식이 점진적이고 꾸준히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 큰 변화(도약)를 통해 한 번에 발전한다고 본다. 기존의 지식과 단절되는 불연속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 쿤에 따르면, 특정 시기에는 '정상과학'이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 패러다임이 해결하지 못하는 변칙 사례들이 쌓이면, 결국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 일어나 완전히 새로운 지식 체계가 등장하게 된다.

비합리성: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은 때때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거치기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과학자 사회의 집단적인 믿음이나 심리적 변화에 더 의존한다고 본다. 이는 기존의 합리주의적 과학관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라투르는 지식이 도약이 아닌 '연속성', 즉 '연쇄' 또는 '작은 도약'을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과학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원자가 그 존재를 인정받기까지는 수많은 이론적 변화와 더불어 윌슨의 구름상자나 입자가속기와 같은 구체적인 실험 장치들을 거쳐야만 했다. 즉, 원자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행위자들이 연합되고 조율되는 복잡한 궤적을 통해 '사실'로 확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시 관계는 한 번의 도약이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긴 '궤적'이며, 이것이 바로 라투르가 말하는 지식의 연속성인 것이다. 이 과정은 또한 정화와 번역의 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복잡한 현실이 단순한 사실로 번역되고 다시 새로운 지식으로 정화되는 반복적인 순환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지식의 본질

관계적 지식: 지식은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네트워크 안의 관계들에 의존한다. 과학적 '사실'은 과학자들의 합의, 실험 장비의 신뢰성, 논문의 재현 가능성 등 수많은 요소들이 일시적으로 안정화된 결과물이다. 이 관계들이 깨지면 지식의 진리성도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물질적 지식: 지식은 추상적인 개념만이 아니다. 실험 장비, 그래프, 문서, 심지어 특정 공간(실험실)과 같은 물질적 요소들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지식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거나 확산될 때, 이 물질적 요소들도 함께 이동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과학 이론이 성공적으로 증명되기 위해서는 관련 실험 장비와 데이터가 함께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식의 생성 과정

라투르는 지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번역'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한 행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행위자들을 설득하고, 유도하며, 자신의 네트워크에 편입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다.

문제화: 특정 문제가 정의되고, 이를 해결할 잠재적인 행위자들이 규합된다.

이해관계 설정: 각 행위자(예: 과학자, 효모, 실험 장비)의 역할이 명확히 설정된다.

동원: 행위자들이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그들의 힘이 결집된다.

번역: 모든 행위자들이 새로운 사실이나 기술에 대해 합의하고, 네트워크가 일시적으로 안정화된다.




3. 논쟁과 사실의 생성: 블랙박스화


라투르의 관점에서 '사실'은 논쟁이 해결된 결과이다. 논쟁이 해결되고 나면, 참과 거짓, 자연과 사회의 경계가 확정되고, 지식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한 복잡한 과정은 잊혀지게 된다. 이를 라투르는 '블랙박스화'라고 부른다. 블랙박스화는 지식 생산의 과정을 은폐하고, 마치 사실이 처음부터 당연하게 존재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망각은 익숙함이 빚어낸 가공의 산물이며, 지식의 기원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블랙박스화는 단순한 기술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의 결과이다. 라투르는 과학적 사실이나 기술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추적하면서, 한때 유동적이고 불확실했던 것들이 수많은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과학자, 실험 도구, 문서, 자금 등)의 상호작용과 합의를 통해 안정된 상태가 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 안정화 과정이 바로 블랙박스화이다.


블랙박스화

복잡성 은폐: 복잡한 내부 메커니즘이 단순한 기능적 단위로 압축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할 때 중앙처리장치(CPU) 내부의 수많은 트랜지스터와 회로를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논쟁의 종결: 한때 격렬한 논쟁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했던 지식이나 기술이, 논쟁이 해결되고 표준화 과정을 거치면서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할 필요 없는 '사실'로 굳어진다.

사용의 용이성: 내부의 복잡성을 몰라도 외부의 입력과 출력만을 통해 시스템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투르는 과학 연구의 초점을 '논쟁적인 사실물'이 '사실물'처럼 취급되기 전의 과정에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자가 '사실'을 발견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 다양한 주장과 논쟁 속에서 어떻게 조율되고 합의되는지를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그동안 과학기술학(STS)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핵심적인 내용과 일치한다. 라투르는 이러한 논쟁의 과정을 '흥분한 대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표현하며, 지식의 생산이 정적이고 단절적인 사건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진행되는 역동적인 실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네트워크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내러티브의 결과물이다. 그 내러티브에 항상 인간과 비인간이 등장하고, 매우 복잡한 역동을 통해서 결과물들이 만들어진다.



4. 실재론과 구성주의의 한계: 탈인식론화와 재존재론화


라투르는 지식에 대한 논의가 실재론과 구성주의라는 양 극단에 갇혀 있음을 지적한다. 실재론은 과학의 결과물이 시간에 독립적이고 인간과 무관한 것처럼 주장함으로써, 사실이 생성되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을 은폐한다. '사실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과학의 겸손한 실천을 무시하고, 지식에 대한 비역사적인 관점을 고착화하는 것이다. 반면, 구성주의는 지식의 사회적 구성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객관성 자체를 해체하고, 지식의 존재론적 무게를 약화시킨다. 라투르에 따르면, 이 두 극단은 '인간적 대 인간과 무관'이라는 같은 선상에 놓여 있으며, 어느 쪽도 지식이 어떻게 현실에서 생산되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라투르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식 활동을 '탈인식론화'하고 '재존재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인식론이 '인식'과 '존재'의 간극에서 오직 '인식'만을 다루어 왔다면, 라투르는 '존재' 또한 지식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라고 본다. 즉, 지식이 단순히 인간의 주관적 인식 활동이 아니라, 대상 그 자체의 변화와 깊이 얽혀 있는 존재론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시간은 둘 모두의 핵심이다"라고 말하며, 지식과 존재를 모두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루어야 진정한 과학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라투르가 주장하는 핵심이다. 존재들을 '사물의 의회'로 불러서 함께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지금의 인식론을 벗어나야 한다.


탈인식론화 (De-epistemologization)

탈인식론화는 지식의 문제를 인간의 인식 능력이나 정신적 활동에 국한시키려는 시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전통적인 인식론은 주체(인간)가 대상(세계)을 어떻게 아는가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지식이 마치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추상적인 활동인 것처럼 다루어졌다.

라투르는 이러한 접근 방식이 실제 과학 활동의 복잡하고 물질적인 측면을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과학적 지식의 형성은 단순히 인간의 정신적 활동이 아니라, 실험 도구, 문서, 미생물 등 수많은 비인간 행위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사건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지식을 인식의 문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존재론화 (Re-ontologization)

재존재론화는 지식의 문제를 다시 존재론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전통 철학은 인식론과 존재론을 분리하여, 지식이 세계에 대한 '표상'일 뿐, 그 자체로 어떤 존재론적 무게를 가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라투르는 지식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것은 단순히 '알려진'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거나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루이 파스퇴르가 '세균'이라는 지식을 만들어냈을 때, 세균은 더 이상 불확실한 존재가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키는 행위자가 되었다. 이 지식을 바탕으로 위생 관념과 의학 체계가 재편되고, 세상은 '세균이 존재하는' 세계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라투르에게 지식은 존재를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를 구성하고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사건인 것이다.




5. 지식의 방향성에 대한 소급적 관점: 벡터의 잠정적 끝


라투르는 지식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소급적 관점'을 도입한다. 그는 지식이 마치 일직선으로 누적되고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실제로는 현재의 지식이라는 '잠정적 종점'에서 과거의 지식을 재평가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즉, 지식은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선형적인 경로가 아니라, 현재의 종점에서 과거를 향해 투사되는 '벡터'라는 것이다. 이러한 소급적 관점은 왜 과학이 수많은 과거의 이론들과 연구 프로그램들을 망각하는지를 설명해준다. 현재의 지식이 확고해질수록, 그 지식에 이르지 못한 과거의 시도들은 '실패한 역사'로 치부되거나 아예 기억에서 사라지게 된다. 라투르는 이와 관련하여 '판도라의 희망'에서 한 심리학자와의 대화를 인용한다. 그 대화에서 그는 과학이 과거보다 '더 많이 안다'고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많은 지난 과거들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과학이 누적적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이처럼 라투르는 지식의 형성이 과거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과정이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선택하고 재배열하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판도라의 희망: 과학의 실재에 대한 논문(Pandora's Hope: Essays on the Reality of Science Studies)

과학은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 라투르는 과학이 자연에 존재하는 불변의 사실을 그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 과학은 복잡하고 역동적인 과정을 통해 사실을 '만들어가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라투르는 파스퇴르가 효모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실험실 환경과 장비, 미생물, 그리고 과학자의 노력이 얽힌 네트워크를 통해 효모라는 존재를 '사실로 제조했다'고 본다. 이 관점은 지식과 실재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구성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과학적 발견은 곧 사회적 구성 : 이 책은 과학적 지식이 단순히 자연의 법칙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물질적 요소들이 얽혀 만들어진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라투르는 과학자들이 동료를 설득하고, 자금을 얻고, 실험 장비를 조작하는 모든 과정이 지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과학 활동이 실험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의 동맹 : 라투르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모두를 동등하게 취급한다. 과학자(인간)뿐만 아니라 실험 장비(비인간), 문서(비인간), 그리고 탐구 대상인 사물(비인간)까지 모두 하나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행위자로 본다. '판도라의 희망'에서 라투르는 자신이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흙의 성분을 조사하는 과정을 통해, 과학자의 연구가 복잡한 측정 장비와 흙이라는 사물과의 끊임없는 협상을 통해 이루어짐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객관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 : 라투르는 객관성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한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객관성은 주관적인 편견을 배제하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라투르에게 객관성은 '수많은 행위자들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 견고한 네트워크의 결과'이다. 즉, 과학적 사실은 주관적이지 않아서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수많은 행위자들이 그 사실에 동의하고 지지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객관성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게 만든다.

과학은 지식의 축적이 아닌 '번역'의 과정 : 라투르는 지식의 발전이 계단을 오르듯 점진적으로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대신, 그는 지식이 '번역(translation)'을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한 행위자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행위자들을 설득하고, 유도하며, 자신의 네트워크에 포함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다. 지식은 이러한 번역 과정을 통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며, 더 큰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지식의 역사를 단순히 '누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복잡한 협상과 동맹의 결과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0. 나오기


라투르의 철학은 주체와 대상, 인식과 존재의 경계를 허물고, 지식이 두 가지 연속적인 흐름, 즉 '재생산'과 '지시'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성되는 복잡한 사건임을 보여준다. 그는 지식이 단순히 인간의 인식 능력에 의해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인간, 실험 도구, 텍스트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얽힌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과학적 객관성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객관성은 더 이상 인간과 분리된 자연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이 공동으로 구성해내는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결국 STS가 다양한 영역에서 재인식화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STS에서는 라투르에서 시작해서 헤러웨이까지 넘어가는게 아닌가 한다.


우리는 근대인인적이 없었다


궁극적으로 라투르는 우리가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선언한다. 이는 자연과 사회, 주체와 대상의 경계를 명확히 분리하려는 근대적 시도가 처음부터 불가능했음을 의미한다. 대신 그는 '혼종'의 개념을 통해 지식이 생성되는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경로를 추적한다. 라투르의 철학은 지식 생산의 과정을 논쟁과 협상, 그리고 수많은 행위자들의 연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재정의한다. 그의 논의는 우리가 지식을 단순히 수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식을 능동적으로 창조하는 행위자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오늘은 라투르의 존재론과 인식론을 기반으로 '지식'을 재편하기 위한 과정을 살펴보았다. 앞으로는 자연스럽게 STS를 거치지 않는 과학지식은 의미가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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