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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는 거다

외롭고 쓸쓸한 길을 꾸준히.

by 낭만민네이션

꾸준히 걸어가야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이라도 꾸준히 걸어가야할 때가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누가 보고도 그냥 평범한 발걸음일 것이지만, 그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걸어가야할 때가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완성된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을 찬양하고 우러른다. 누구나 정상에 서고 싶어한다. 그래서 욕망은 하지만 '저 사람은 원래부터 저런 사람이었어'라고 하면서 자신은 아니라도 한다. 그런데 진짜로 그 정상에 서고 싶고,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 설려면 꾸준히 걸어야 한다. 한번에 완성된 사람은 없고, 단시간에 정돈된 대안은 없다. 누군가 천재적인 기질로 무엇인가를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 한 번 뿐일 것이다. 천재든 영재든, 평범한 사람이든 매일 매일 걸어간 그 발자국들이 쌓여서 지금의 높이에, 지금의 깊이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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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지 않아도, 쓸쓸해도, 외로워보이고 심지어 죽을 것 같아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시간이 쌓인 만큼 발자국의 깊이는 깊어진다. 예전에는 이런 비밀을 모르고 이것도 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하다보니. 언제나 책상 위에 여러가지 책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마음 속에서는 이리갔다가 저리갔다가 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대단해보여도 쫓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바빴다. 마치 아마데우스에서 베토벤을 질투한 살리에처럼. 그러나 베토벤도 아주 어릴적 부터 한 발자국씩 걸어갔던 것의 결과였다. 신동이라도 마찬가지다. 매번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려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음계의 다양한 변주를 실험할 수 있었을까? 물론 그 결과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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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것이 그렇다. 누군가 알아봐주면 좋겠지만, 그걸 알아봐준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달라지는 것은 내 직장과 월급이 달라지겠지. 그러나 그것을 알아봐준다고 해서 실력이 달라지거나 내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철처히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구도 보지 않을 때 자기자신과 싸워서 이 무료함을, 이 권태를, 이 무의미의 축제를 가로질러 간 사람만이 어디에선가 빛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빛나려고 공부한 것도 아닌데, 자칫하다가 위선이 되기 싶상이다. 그래서 뒤돌아보고 계속해서 옳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지를 돌아본다. 요즘들어서는 박사과정에서 다 못 정리한 글들을 모아서 정리하고 있다. 하나하나 주옥같은 내용들인데, 어떤 글은 일 주일을 투여해서 공부하고 써야하는 글도 있고, 바로바로 정리할 수 있는 글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글을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누가 알아주거나 그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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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달라지냐면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과 방법을 배우고, 어떤 상황에 섰을 때 그것을 넘어서는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시력이 달라진다. 그러니 아직도 가야할 길. 험하고 험한 길을 걸어가야 하지만, 누구보다 외롭게 걸어가야 한다. 지금까지 분에 넘치는 배움을 얻었다. 좋은 선생님도 만났고, 친구들도 여럿이 만났다. 응원도 받고, 격려도 받고, 사랑도 받았다. 그들이 해준 것은 결국 꾸준히 걸어가서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배워서 남주자라는 구호에 걸맞게 배워서 남주려면 이렇게 공부하면 안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내가 빛나려고 하는 공부보다 몇 배의 공부가 필요했다.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이 알게 도와줄려면 말이다.


지금도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철학을 공부하고, 정책을 공부하고, 과학기술과 사회학을 공부한다. 이것들이 바로 효익을 주지도 않는다. 한 글자, 한 장 더 본다고 무엇인가 달라지거나 돌아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나의 영혼은 안다. 나의 두뇌는 알고 있다. 이것들이 어떤 때 어디에서 사용될지를. 그러니 마치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빈틈을 매울 지식들을 찾아다니고 공부하고 정리한다. 그렇다. 처량한 웃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글이 끝나면 다시 과학과 사회학, 정책학과 정치학으로 돌아가야 한다. 꾸준히 걷고, 공부하고, 정리하고, 나의 생각으로 나의 말을 해야 한다. 괴롭다. 지치지는 않지만, 계속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누구나 안그랬겠냐만. 그러다가 결국 사람들은 한 마디 하게 된다. 그러니깐 그냥 하자.


그냥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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