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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혼일기

함께 걸어간다라는 것을 알게되면

갈라디아서‬ ‭4‬:‭4‬-‭7‬_개혁개정

by 낭만민네이션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 ‭4‬:‭4‬-‭7‬_개혁개정




세상의 모든 관계는 3가지이다

자기자신과의 관계가 첫번째고


타자와의 관계가 두 번째이다

그리고 그 외의 사물과의 관계가 마지막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는 중세시대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발명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내면을 돌아본 결과

생각하는 지성과 무엇가 느끼는 감정


그리고 아주 오랜 후에

무엇을 하게 하는 의지를 발견한다


이른바 영과 혼과 육이라는 구분은

그 전의 영과 육이하는 이분법에 비하면


더 세련되고 복잡해졌다

역사상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논쟁은 끊이지 않았고

무엇인가를 우위에 두는 방식보다는


더 많이 포함하고 있는 설정이

더 유효해 보였다


그러나 이런 논쟁과는 별개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가 쫓아낸 영의 세계는


종교인이라고 치부되는 이들에게 할당된

비이성적이고 무의지적인 영역이 되었다


그러니깐 결국 관계는 3가지가 아니라

영의 영역에서 신과의 관계까지


총 4개의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이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다


다만 영이 다 포함하는지 아니면

인간내면이 가장 우선순위인지에 따라


세계를 보는 세계관이 달라졌고

결국 삶의 방식도 달라졌다




의식의 변방으로 밀려난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그가 말씀하시는 이야기의 세계는


기존의 합리주의적이고 경쟁적인 세계관과는

꽤나 먼 거리가 있었다


인간과 자신을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놓고

그 중심의 가치를 사랑을 놓는 것.


오래된 약속인 구약에서는 이런 사랑이

일정한 툴과 방법으로 보여졌다면


예수님이 오신 후로는 오히려 틀이 아니라

마음이 되고 관계가 되었다


더이상 어떤 형식의 종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나누는 관계가 된 것이다


이런 관계의 특징은 항상 정의가 실현된 후의

사랑의 방식으로 선택이 있다는 것이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을 가지고서는

잠깐 멈추었다가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을 자유의지라고 불렀고

자유로운데도 사랑을 선택하는 이들을


당대에는 바보라고 불렀고

후대에는 기독교인이라고 불렀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관계가 되었다


만물을 만들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을

처음에는 주님이라고 불렀다가


인격적인 만남이 빈번해질수록

살아계신 하나님 안에 가득찬 사랑을 경험하고


비로소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

기독교가 가진 오묘한 진리이다


자녀이니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알게되는 것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일을 이어서 하게 된다


사람을 구원하시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어디서든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참아주고 이해하고 기다린다

이걸 스스로는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가 맺혔다고 했다

거룩의 원래 의미가 거룩하신 분과


함께 걸어간다라는 것을 알게되면

거룩의 결과로 맺혀진 성령의 열매가 결국


아버지와 함께 걷고 함께 대화하며

함께 결정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가 거룩하셔서 자녀들도 거룩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당대에는

바보라고 불렀고 후대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그리스도인들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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