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마지막을 제주에서
연말이면 모든 일이 정지한다.
생각도 마음도, 낭만도 정지한다. 그래서 좁은 1.5평의 방을 떠나서 제주도로 떠났다. 이번에는 연극을 준비하는 지훈이와 함께 했다. 제주도는 그녀가 살고 있는 땅이기도 하다. 사실 출발하기 한달 전부터 그녀에게 연락을 해볼까 고민했지만 막상 연락을 하려고 하니 보낼 수가 없었다.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자기절체와 마음의 공백사이에서 방황했다. 그리고 결국 보내기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제주도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은 보내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한참이 지난 오늘 이 시간에서야 회상하면서 아쉬워하면서 마음을 정리해본다. 함브로 정할 수 없는 시간을 바다 위에 펼쳐 놓고 한 없이 그 시간에 매몰되었던 때, 어쩌면 나는 너무 많은 당위 속에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해야하고 바꿔야하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더욱이 하나님 없이는 이제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는 인생의 흐름에서, 너무 빨리 달라서 하나님도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녀와 하나님 사이에서 아니 누군가 나 자신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보아줄 수 있는 존재들을 뒤로 하고 너무 깊이 내가 하고 싶어서 했다고 우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저런 시름과 걱정거리를 안고서 비행기에 올랐다. 삼방산이 보이는 휘게호텔에서 머무르며 저 멀리 섬들을 바라본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그렇지만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섬들 사이로 태양이 지고 있었다. 내일이면 태양은 다시 떠 오르겠지만, 오늘의 이 빛은 오직 이 시간에만 볼 수 있으니깐. 잠시 앉아서 지나가는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저 멀리 고기잡이를 떠나는 배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나의 인생에서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럼 나는 제대로 된 방향을 가고 있을까?
저 멀리 깊은 바다로 나아가는 속도쟁이가 아니라
올바르고 제대로된 방향으로.
나이가 들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성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관점으로 스스로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역량이면서 또 가장 자기다워지는 시간인 것 같다. 잠시 자신이 서 있던 위치에서 빠져 나와서 '타자로서 자기자신'을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낭만적이고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아주 깊은 호흡을 내 쉬게 한다. 타자로서 자기자신이 바라보는 나는 어떤 사람, 어떤 선택, 어떤 마음으로 살아온 것일까?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항상 그 사람에게 최선을 선물해주고 싶어한다. 이런 감정이 너무 과한 나머지 나도 잊어버릴 만큼 과하게 잘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내 자신이 뒷전으로 밀려 있었다. 더군다나 나를 인생의 중심에 세우신 하나님도 밀어 버렸던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 왜 이럴까? 이런 자책들도 해보면서 뉘엿뉘엿 다른 곳의 시간을 열어재끼는 태양이 꼬리를 감추었다.
의식의 흐름이 이끄는대로, 인생의 시간이 흘러가다가 멈추는 곳에서 나는 멍하니 서 있다. 정말 말 그대로 멍하니 서 있다. 다른 것을 해볼려고 하거나 무엇인가 힘을 내서 열정을 불태우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돌아간다. 한병철 선생님은 이것을 '관조의 힘'이라고 한다. 무엇인가에 붙잡히지 않으면서 자신 앞에 주어진 것들을 직관할 수 있는 힘. 어쩌면 나는 그것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걸어온 발자국의 절반을 정확히 가려질러서 나의 마음, 나의 의지가 머물렀던 그것을 찾는다.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 속에서 어떤 감정들이 결정체처럼 모아진다. 그리고서는 이렇게 자판 위에 손을 얹어 놓으면 알아서 그 감정들이 서로들 만나서 노래를 부르고, 오케스트라를 만든다. 나는 작곡가가 아니라 감상하는 사람이 되고, 지휘자가 아니라 관객에 되어서 그 화음을 바라본다. 바로 지금.
나는 왜 그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싶었을까?
왜 그렇게 사랑을 갈구하는 걸까? 사람들은 어릴적에 사랑을 못받아서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어쩌면 나는 존재의 공백, 의식의 구멍을 메우려고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채울 수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도피하는 방식으로 채워졌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그 공백을 메꾸어야 할까? 그냥 그대로 놓아두면 안될까? 타자로서 자기자신이 말한다. 그런데 그건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 자체로 무엇인가를 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을 가지고 마라도에 가는 배에 올랐다. 한국에서 발을 내 딛은 섬 중에서 가장 평온하고 안정적이었던 섬. 지훈이와 함께 이 길을 걸으면서 지난 20년간의 만남을 돌아보았다. 하나님을 만나고 더욱 깊어진 지훈이와의 대화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제는 이렇게 하나님과 대화하며 서로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함께 걸으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운영하시는 이야기들을 하니 너무나 기뻤다. 영적인 대화는 영적인 회복을 주는 것 같다. 그렇게 많던 고민들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로 한단락이 되었다.
시간이 머물고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기서는 굳이 다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햇빛을 받으면서 그 시간을 누렸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이 시간만큼은 흘러가는 구름을 관조하면서 시간을 누렸다. 아까 했던 고민들은 온데 간데 없었다. 사랑을 받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시간 속에 묻혀서 흘러갔다. 제주에서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포도뮤지엄을 가고 싶었다. 사실 2년전에 그녀와의 만남이 시작된 것도 포도뮤지엄의 전시때문이었기도 했으니깐. 아주 소중한 존재들을 현대미술로 풀어낸 작품들, 특히 제니홀저의 작품은 내 마음 속에 또아리를 풀고 있던 격정들을 풀어내기에 충분했다. 오랜동안 걷고 머물고 생각하면서 포도뮤지엄을 나왔다. 무언가 제주에서의 3일은 아주 작은 시작의 힘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사실 이 글은 아무런 방향성이 없다. 마음에 있는 것을 풀어내는 시간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라는 전시였다. 포도뮤지엄에서 2년전의 전시는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있다. 제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면서 못내 아쉬웠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아마도 내일도 그렇겠지. 이렇게 묻어두고 살아가겠지. 그녀의 그림자를 그려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이런 생각도 잠시 새해가 밝으니 또 새로운 일들이 몰려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그녀를 넘어서 모든 사람에게 '다시 사랑으로,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기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