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 요즘들어 그래 요즘들어 나르시스트들을 자주 만난다.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생각해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건 마치 병처럼 나도 저러고 있는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나르시스트의 특징을 찾아보고 다시 나에게 적용해보고 이런다. 나르시스트는 왜 탄생하게 되는 걸까? 이것은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병리적인 현상으로 부각된 것일까?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해결하는 방법은 있나? 아니 해결을 해야하나? 이런 생각들.
나르시스트의 가장 큰 무기는 가스라이팅이다. 자신이 한 것을 자신이 안 한것처럼, 마치 상대방이 한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대방이 스스로 뉘우쳐서 자신에게 사과하도록 만드는 것.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기 때문에 자신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하면 안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세상을 바꿔서라도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환경과 상황인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나르시스트하고 있으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미안해'를 연신 남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가스라이팅이라는 방법을 흔하게 사용하는 것은 방어기제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는 것. 또는 반대로 자신이 받아야하는 찬사와 보호를 다른 사람이 받고 있다는 희생자주의적 관점. 이러한 관점은 어릴 때 양육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 너무 무관심하거나 부모가, 너무 과도하게 케어를 하는 경우다. 적절하면 좋으려만, 지나치게 방임적이거나 과도하고 감싸고 돌아서 그렇다. '오냐오냐'가 되는 과정을 생각하면 당연하게 나르시스트의 과거가 그려진다.
자기애적 성격장애라고 하지만, 후천적으로 보면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 방어기제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방어기제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성장하면서 혹은 사회에 나와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공격이나 실수, 사고들이 일어날 때 피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 같이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통제권 안으로 밀어 넣고, 그것을 벗어나는 순간 화를 내거나 가스라이팅을 하거나. 취약성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취약하지 않은 척, 강한 척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많이지는 이유는 결국 외로움과 고립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이 점점 떠나가겠지. 연인도 떠나가고 차가운 냉소가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낼 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까지 오자 내가 그동안 심하게 도망쳤던 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물론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도망치는 것이 과연 맞았을까?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들어 더 자주 만나니깐 이것은 시대적 유행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내가 왜 예전 생각을 하는가 봤더니 내가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나의 숨통을 쪼여오면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거나 무마해보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남탓을 하기 일쑤였던 것도 같다. 그래서 집에 오면 허무하고 애매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안절부절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그것이 사라진 것은 하나님을 만나고 부터였다. 탕부하나님. 아무리 퍼주고 퍼주어도 모자르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감싸고서는 끊임없이 돌이키게 하시고 희생을 보여주시면서 나에게도 희생을 선택할 자유를 주셨던 것 같다.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놓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다른 이들을 향해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도 생긴 것 같다.
이런 연습이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서는 비로소 아무런 댓가 없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시간과 돈을 쓰면서도 아깝지 않았던 기회들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아깝고 어렵고, 다시는 못 가질 것 같았지만. 오히려 누군가 갚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하는 것들이 더 큰 기쁨으로 여겨졌으니깐. 누군가 돈을 주고 멘토링을 해달라고 하면 절대로 안 나갈 것이지만, 그냥 도와달라고 하면 언제나 기쁘게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러니깐 이러한 조그마한 변화의 경험이 나를 나르시스트들로 부터 도망치는 선택만 만들지는 않는다. 나 역시 그렇게 도망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야속하게 느꼈으니깐.
아직은 잘 모르겠다. 도망치는 것 밖에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다만, 기도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충분히 저며들도록 기도하는 수 밖에. 지금은 그렇다. 나중에 자녀들을 낳으면 나르시스트가 되지 않게 잘 길러야겠다는 생각정도이다. 비판하면서도 나르시스트들의 비전을 본다. 변화되는 비전. 아무것도 안해도 괜찮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고. 퍼주고 또 퍼줘도 남아도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길. 그런 사람들이 되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