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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an 04. 2018

존재와 시간

민네이션 팡세 4

#1. Multi Transfromation


Multi Transformation라는 개념이 있다

사회학에서 쓰는 개념인데 핵심은 시간이다


칼포퍼의 의하면 자연의 규칙과

인간의 규범은 다른 시간대를 가진다


인간의 규범은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회적 계약에 의해서 하나의 시간대로 묶인다


Multi transformation은 이러한 한 단위의

공동체 혹은 집단이 공유하는 변화이다


그 변화는 시간의 변화이면서도

또한 존재의 변화이기도 하다


한 사회 안에 작게는 한 개인에서부터

크게는 국가단위까지 수 많은 집단이 있다


그리고 그 집단은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나름의 흐름과 방향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사회는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지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정지해 있는 진공상태는 존재할 수 없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움직이는 것들의 그룹에서는

항상 다른 시간대의 변화가 일어난다




#2.  사회화과정


사회화과정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규범을

익히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그 집단의 규범을 체화해가는 시간이다

몸에 집단의 시간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사회화가 되고 나면 좋은 점은

자신이 스스로 시간을 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스스로 시간설정을 못하기에

자유도가 떨어지고 존재의 이유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국가라는 개념이 1648년에 근대적으로 나타나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19세기의 발명품이라면


우리 스스로를 정체지우고 있는 것들이

과연 계속 그자리에 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사회'라는 것도 16세기 이후의 발명품이라면

사회화라는 것을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3. 미시적세계의 시간


미시생물학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미시생물들은 서로 약속하지 않는다


하나의 연결에서 구성되는 유기체들은

연결자체로 같은 시간대를 가진다


상전이라고 하는 형질전환은

일정량의 연결이 증가하면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


재미있는 사실은 미시생물들이 오히려

높은차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거시 세계로 갈수록 낮은 차원이 된다는

이야기가 뉴턴 잡지에 나오기도 한다


더 높은 차원이라는 말은 4차원 이후에

시간이 꼬여서 곡선을 넘어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미시생물의 세계에서는 확산의 속도나

중력의 작용들이 양자물리학처럼 변칙적이다


우리는 3초정도 물질의 확산을 예상하지만

미시세계는 연결되는 순간 확산된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이어서 생각하려면

차원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4. 프랙탈


프랙탈이라는 개념은 자기형체를

차원에 상관없이 유지한다는 것이다


물론 차원이 커질수록 복잡해지지만

복잡해지는 만큼 다양한 구조를 갖는다


공간의 프랙탈도 있지만

시간이 프랙탈도 있다


그래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용어는

사실 시간대가 2개 이상으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가지 프랙탈이 겹치면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프랙탈끼리 충돌하거나

약속이 사라져버렸을 때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공간과 시간에서 동시에

프랙탈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5. 역사의식


이제 역사의식을 생각해보자

이렇게 까지 고민해 본 결과


분석철학이 하고 있는 오류이기도 하지만

의미가 다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마치 정교한 물체를 분해하고서

다시 조립하면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유기체적인 우리의 삶의 시간을 분해해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생명을 잃어버린 우주의 모습이다


시간을 역사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면

결국 인간의 시간을 잃어 버린다


역사에 대한 의식이 사라지면

역사의 의미가 사라지고


우리가 왜 이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한

의미가 사라지면서 결국은


존재는 시간을 망각하고

존재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6. 지향성


근본적으로 삶은 일정한 지향을

가지고 흘러간다


인간의 의식이 그렇고

인간이 가진 시선이 그렇다


우리는 아무 생각도 안하고 살수가 없고

어떤 곳도 쳐다보지 않고 살아갈 수가 없다


의식과 시선의 지향은

항상 어리론가 우리가 흘러가게 되어 있으며


그 흘러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종교개혁 이후에 르네상스가 준 선물이다


이러한 지향성을 자신의 것으로

스스로의 소유로 놓고서


하나하나 결정하고 선택하는 가운데

자유는 비로소 자유의 옷을 입기 시작한다




시간 위의 존재인 인간이

시간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


결국은 인간의 이미도 상실하게 되고

여기서부터 전체주의와 파시즘이 등장한다


미시적 파시즘에서부터

거시적 파시즘까지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듯이

프랙탈은 원리이지 정의가 아니다


이렇게 세상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역사에 의해서


Multi Transformation의 다양한

현실태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회화를 말하고

지향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할까?에 대해서

쉽게 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시간과

개인의 시간이 어긋나고


사회화'라는 압력이 계속해서

인간의 시간을 억압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시간을 구원해 내는 것'이

사회를 바꾸는 길이면서


인간 존재가 진정한 인간이되는

낭만적인 길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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