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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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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Apr 03. 2017

경계와 관계

죄인이라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를 쓰셨다


그들은 계속해서

그분을 다그쳤다


예수께서 몸을 펴고 일어나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죄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쳐라"


그런 다음 다시 몸을 굽혀

땅에다 뭔가를 더 쓰셨다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는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시작해서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그 여자만 홀로 남았다


예수께서 일어서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사람들이 어디있느냐"


너를 정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냐?

없습니다. 주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 갈길을 가거라"

이제부터는 죄를 짓지 마라


메시지_요한복음 8장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는게 있다

비판을 할 수 있지만 정죄는 할 수 없다


누군가에 대해 잘못했다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죄인이야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이 만든 규범에서 죄를 정하는 사람은

재판관이라서, 재판장의 선고가 없는한


그 사람은 무죄이면서 더더욱

법의 보호를 받게 되어 있다


이보다 더욱 더 하나님의 법에서는

오직 법을 주관하는 분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죄할 수 있는것이

아닌 성격이다


인간이 죄인입니다'라고 하는 고백은

개인의 고백이지


타자가 나에게 너는 죄인이야

라고 하는 선포의 성격이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에 대해서 죄인이라는 판결을


하나님께 직접 듣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오해가 생긴다




복음은 좋은 소식이다

말 그대로 소식인데 좋은 것이다


그럼 소식은 알려주는 것이지

충고나 선포가 아니다


케리그마라는 헬라어는 전언의 의미로

하나님만 케리그마를 하실 수 있다


오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케리그마를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여기에 카리스마를 더해서

케리그마의 정당성을 입증한다


이렇게 정당화가 일어나고 나면

누군가의 죄와 잘못을 이야기할 때도


죄인이다, 죄인들의 무리다

라고 하는 식의 권위를 가진다라고 스스로


그래 스스로 인식하고

스스로 재판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신학교에서 그런 권위를 주었는가

사람들이 그에게 권위를 위임했는가


생각해보면 그 권위의 출처가 없다

간혹, 하나님이 하나님이 종으로 선택하셨다


라는 식의 특별은총의 권위를 가지고오지만

그럼 누구든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으셨나




자신의 생각의 오류로

인생의 집을 짓고 나면


그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과

들어오지 못하는사람이 결정된다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은 죄인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이웃으로 만들어서


자신들의 왕국에서 자신들의 목적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져다 쓰곤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 예수님은 오늘도

이런 상황과 정확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우리에게, 나에게 말씀하신다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정죄하지 않으신다

그럼 누가 정죄할 수 있을까?


아무도 없다, 정죄를 할 수 있는건

오직 하나님만 알고 계신다


그래서 정죄하는 이들은 더더욱

하나님께 불순종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해지면

일어나는 일은 경계가 없어지는 일이 생긴다


나와 타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하나님과 나의 경계가 무너져 관계가 된다


경계에서 관계로 넘어가는 시간

나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아무것도 연결되지 않은 외로운 자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고, 정죄받지 않는 인간


태초에 그렇게 함께 거닐던

에덴의 평화가 회복되는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거.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고

그 소식을 듣고 나는 자유의지로 결정했다


오늘 그 삶을, 그 부활의 삶을

그 평화의 삶을 살기로, 누리기로!


노파심으로 이야기하자면.

죄인이 죄를 고백하는 것은 타의가 아니라


자신이 깨끗해질수록

내면에서 더이상 견딜수 없어서 고백하고


뱉어내는 것을 통해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거룩해지면 죄는 고백되게 되어 있다


율법의 목적은 죄를 정하는게 아니라

거룩이었으니까 말이다




오늘 나는 하나님과 관계하며

타자와의 경계를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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