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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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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y 26. 2017

악과 상징

해석의 갈등에서의 리쾨르

- 리쾨르는 어떤 측면에서는 헤겔의 변증법을 사용한다.


- 자신이 해석한 것과 자신의 그 해석에 따라서 행동했을 때 경험하게 되는 것들을 연결해서 새로운 주체의 해석을 만들어 낸다.


-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상징과 새롭게 경험한 것을 먼저 해석하여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반성하는 힘을 사용해서 다시 반성한 것과 승화된 힘을 서로 변증법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 칸트는 악의 문제를 선험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의 영구 평화론은 이러한 선험적인 악에 대해서 이성의 힘을 통해서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철학은 종교를 살아내는 것, 감내하는 것이고 종교는 삶을 승화시키는 것이다.


- 선악과의 문제는 쉽지 않다. 인간이 선악과 이후에 타락했기 때문에 타란된 관계에서 선악과는 욕망의 상징이 된다.


-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 선악과는 내 자리를, 하나님의 자리를 드러내어 주는 것이다.


- 인간의 욕망구조가 완전히 새로워지는 때, 그것이 바로 천국이 될 것이다.


- 우리는 부활하면 우리 내면의 '선악과'가 심기운다. 우리는 매일 선악과를 보면서 우리의 부활을 실감한다. 우리는 다시 선악과 앞에 서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성화되고 변화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날마나 하나님을 기억하고 십자가를 기억하고, 이전의 생각과 삶을 해석한다.


- 우리는 선악과 앞에서 악의 문제가 끝났다는 것과, 그와 대칭으로 십자가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어쩌면 십자가에 선악과가 열려 있을 것이다.


- 내면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인간의 마음은 편하다 그러나 이창동의 '밀양'에서 처럼 연대하여 발생하는 '죄'에대해서는 아예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 기독교의 관계는 타자가 항상 존재한다. 타자에 대한 죄, 타자의 대한 사랑, 관계에서 부터 오는 것들에서 죄가 발생하기도 하고 반대로 사랑이 발생하기도 한다.


- 인간은 항상 언제나 '해석의 갈등'에 상황에 있다.


- 행위는 주어지고, 행위를 해석하는데 리쾨르는 모든 해석은 가능하지만 모든 해석이 다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 행위는 하나의 텍스트인 것이고, 그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이 바로 해석학인것이다. 그해석의 주체는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인 것이다.


- 중요한 것은 의지가 노예의지가 아니라 자유의지라는 것이다. 자유의지이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가 승화된 것이라는 것이 다르다.




20170527_철학아카데미

해석의 갈등_폴 리쾨르_김선하 교수

악의 상징


들어가기


- 오늘은 상징에서 찾아내는 기독교의 원죄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 리쾨르의 해석학은 상징에서부터 해석을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신화가 가지고 있는 상징을 해석한다.


- 당연히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신화?라고 하는 아담신화는 하나의 상징으로 읽혀진다.


- 그렇다면 그 신화에 들어 있는 상징'은 무엇인가?


- 그러한 상징에서 악의 문제를 보면 어떻게 되는가?


원죄, 그 의미를 생각함


- 그 의미'를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그 개념의 의도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 개념 이전에 선포가 있다. 그 선포는 죄를 말하면서 죄사함을 말한다.


- 의미를 생각한다는 것은 '개념을 해체해서' 그 동기들을 뜯어 보고 일종의 지향성 분석을 통하여 뜻의 방향을 재 발견하는 것이다.


- 즉, 케리그마'를 보게 될 것이다.


- 교회는 원죄 개념을 '합리적 상징'이라고 사용했다.


- 죄의 고백 속에 들어 있는 무엇을 드러내는 상징은 원죄이다.


- 영지주의에 맞서 믿음을 변증할 목적으로 개념을 정립 한다.


- 악은 존재가 아니며 자연도 아니다.


- 악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고, 우리의 자유의 문제이다.


악, 영지주의


- 영지주의자들은 악은 물리적 실체라고 생각했고, 악은 바깥에 있으며 실체이고, 하나의 세상을 만든다. 영혼은 그 속에 떨어져 있따고 생각하고,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어떤 실체가 악이라고 생각했다.


- 우주는 신성하면서도 사탄과 같은 것이다. 악은 세상됨이다.


- 악은 세상됨이고 사람이 고백하는 죄는 세상에 있는 존재'상태'라고 생각한다.


- 존재하는 자의 불행은 '죄가 내면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 구원도 밖에서 오고 저쪽에서 온다. 사람의 책임이나 인격에 관계 없이 순전히 마술 같은 힘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


- 악은 실체이고 사실과 실체의 문제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어거스틴, 무


- 악은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 사람이 악의 주인공이 아니라 신의 희생물이라고 보는 '비극적' 세계관을 물리친다.


- 악을 정의해 보면, 잘못됨이라는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로 기울어지는 것이다.


- 무(무로 향하여  ad non esse)는 삶의 방향이다. 하나님에게로 향하지 않고 '피조물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 원죄는 본성의 죄이고, 어거스틴은 유전으로부터 죄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결국 죄는 이미 주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가 현재 저지르는 죄가 아니라 나면서부터 속해 있는 죄의 상태를 말한다.


원죄, 개념


- 원죄의 개념은 아담 신화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 상징은 두가지이다. 원형적인 인간유형arhetype을 제시한다는 입장에서 근본주의적인 태도를 갖는다.


- 두번째로 상징은 신비와 악을 상징하게 된다.


- 신화에서 드러나는 상징은 악의 체험'을 찾아낼 수 있다.


자유의지, 악


- 죄 혹은 악이라는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죄나 악은 실체가 없는 무'라는 개념이나, 결핍이라는 개념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 그렇게 되면 자유의지로 선을 결정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하면 노예의지로 무를 선택하는 것이 악이라는 것이다.


- 이러한 노예의지는 유전적으로 다음세대로 연결되고 생물학적으로 실재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 노예 의지와 대비해서 자유의지를 사용할 때 도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체, 자유의지


- 리쾨르가 이야기하는 해석의 주체는 상징적인 현상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반성하는 자아이다.


- 반성철학에서는 자신이 믿고 있는 것, 주어진 현상에 대해서 다시 돌이키 보는 힘이다. 반성철학은 한계에서 다시 돌아가서 반성해서 새로운 문을 연다.


- 리쾨르는 아담을 통해서 원죄가 들어오고, 그러한 태어남은 항상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는 어거스틴의 논의를 가지고 와서, 상징해석학으로 승화시킨다.


상징, 종교현상학


- 종교현상학에는 3가지의 방법이 있다.


- 첫번째는 상징들끼리 연결해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이 때는 텍스트 자체에서만 드러나는 상징들을 묶는 작업이다.


- 두번째는 상징들을 해석한 것들을 가지고 상징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주석학이라고 할 수 있다. '알기 위해서 믿는다' 라는 것은 주체적인 행동, 경험과 체험들과 상징을 연결하는 작업이다.


- 세번째는 반성철학이다. 상징들을 다시 반성해 보는 것이다. 상징을 반성하여, 새로운 변증법적 상승작용을 갖게 되는 것이다. 리쾨르는 이렇게 자신이 경험한 것들과 해석된 상징과 결합하여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 간다.


마니고, 펠라기우스


- 마니교는 악에 대해서 이원론적인 입장을 취한다. 악은 실체적이기 때문에 악이 아닌 선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본주의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실체로 악을 해석하기 때문에 강력하다. 악이라는 실체를 인정해야만 비극이 해석이 된다.


- 반대로 펠라기우스 주의에서는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악의 문제나 선의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칸트, 악


- 칸트는 근본악의 개념을 가지고 온다. 악을 지향하는 것은 칸트의 개념에서는 선험적인 것이다.


- 그래서 태어나기도 전에 인간 내면에 깊숙히 내제해 있는 것이다.


- 그래서 이러한 악을 해결하고 해방하기 위해서는 이성과 감정을 통해서 역전시키는 관계의 역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근본악은 그 자체로는 알 수 없다고 한다.


- 리쾨르는 반성의 어더움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생각하고 반성할 때 상징철학이 가지고 있는 상징은 다양하고 다의성을 가진 의미를 준다고 생각했다.


리쾨르, 악의 상징


- 흠은 흠짓 혹은 때와 같은 의미이다. 외부에서 접촉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흠의 경우에서는 비나이다' 혹은 정화의식 등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 죄는 공동체적인 것이고 상대방이 있어야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타자가 있어야 죄라는 개념이 존재하게 된다.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대적으로 실재적인 죄를 인정하고 죄가 가진 권세를 대비해서 해결해야 한다.


- 허물은 개인적이고 내면화된 죄책감과 같은 것이다. 허물은 개인의 죄책감이고 이러한 죄책감을 해결하기위해서는 내면의 죄를 바깥으로 꺼내는 작업들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율법'이다.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럼 허물 차원에서 한단계 내려온 죄의 차원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해결은 제사를 통해서 연대적인, 실재적인 죄를 인정하고 사하여지는 것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선험적으로 죄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것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부터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그러한 선험적인 셋팅이 완전히 바뀌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수 밖에 없다. 다시 태어나려면 죽어야 하고, 부활해야 하는데 그 부활은 어떻게 가능하냐 했을때 리쾨르는 부활'이라는 신비 혹은 신화가 상징해석학에서처럼 계속해서 생명력을 가지고 의미를 준다는 것이다.


- 정죄는 벌이고 위로는 사랑이다 이것이 변증법적으로 승화되어서 우리의 구원이 임한다고 리쾨르는 정리한다.


선악과, 뱀


- 뱀의 존재는 인간이 있기 전에 이미 악이 존재한다는 상징을 가지고 있다.


- 선악과는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러한 신비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선악과가 가지고 있는 전체성, 창조의 질서를 생각해 보자.


- 선악과는 인간의 관계와 하나님의 관계를 상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체이고 인간은 부분이다.


- 뱀이라는 것은 이미 있던 악이고, 그 악이 인간을 유혹하는 것이다.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고, 그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발생하게 된다. 사실은 인간의 욕망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잠재력이었을 지도 모른다.


- 인간이 가진 부분성을 전체성으로 확장하기 위해서 인간은 질서를 파괴한다. 그럼으로 질서는 깨어지고 관계는 단절되어서 죄가 발생한다.


- 그러한 죄는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내면화되는 허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한 허물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가지 왕의 모습이나 사람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민네이션, 생각


- 리쾨르는 어떤 측면에서는 헤겔의 변증법을 사용한다.


- 자신이 해석한 것과 자신의 그 해석에 따라서 행동했을 때 경험하게 되는 것들을 연결해서 새로운 주체의 해석을 만들어 낸다.


-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상징과 새롭게 경험한 것을 먼저 해석하여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반성하는 힘을 사용해서 다시 반성한 것과 승화된 힘을 서로 변증법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 칸트는 악의 문제를 선험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의 영구 평화론은 이러한 선험적인 악에 대해서 이성의 힘을 통해서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철학은 종교를 살아내는 것, 감내하는 것이고 종교는 삶을 승화시키는 것이다.


- 선악과의 문제는 쉽지 않다. 인간이 선악과 이후에 타락했기 때문에 타란된 관계에서 선악과는 욕망의 상징이 된다.


-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 선악과는 내 자리를, 하나님의 자리를 드러내어 주는 것이다.


- 인간의 욕망구조가 완전히 새로워지는 때, 그것이 바로 천국이 될 것이다.


- 우리는 부활하면 우리 내면의 '선악과'가 심기운다. 우리는 매일 선악과를 보면서 우리의 부활을 실감한다. 우리는 다시 선악과 앞에 서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성화되고 변화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날마나 하나님을 기억하고 십자가를 기억하고, 이전의 생각과 삶을 해석한다.


- 우리는 선악과 앞에서 악의 문제가 끝났다는 것과, 그와 대칭으로 십자가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어쩌면 십자가에 선악과가 열려 있을 것이다.


- 내면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인간의 마음은 편하다 그러나 이창동의 '밀양'에서 처럼 연대하여 발생하는 '죄'에대해서는 아예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 기독교의 관계는 타자가 항상 존재한다. 타자에 대한 죄, 타자의 대한 사랑, 관계에서 부터 오는 것들에서 죄가 발생하기도 하고 반대로 사랑이 발생하기도 한다.


- 인간은 항상 언제나 '해석의 갈등'에 상황에 있다.


- 행위는 주어지고, 행위를 해석하는데 리쾨르는 모든 해석은 가능하지만 모든 해석이 다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 행위는 하나의 텍스트인 것이고, 그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이 바로 해석학인것이다. 그해석의 주체는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인 것이다.


- 중요한 것은 의지가 노예의지가 아니라 자유의지라는 것이다. 자유의지이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가 승화된 것이라는 것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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