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한 만큼 성장한다
최근들어, 더더욱 많은 고민들이
삶 속에 넘쳐나면서
풀리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질문의 연속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런 고민들도 있고 혹은
가장 초보적인 고민도 있었다
나는 어른일까?
너무 감정적인건 아닐까?
이런 고민들이 해결되지 않은체
인생의 실타래 안으로 들어와서
108번뇌와 같이 인간의 죄악과
사회의 악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된다
가장 편한 것은 한마디로 정리하기를
생활화 하거나
유형화 시켜서 이해하고
이럴 때는 이렇게 대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
그러나 그렇게 메뉴얼화된 삶은
새로움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변화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만
가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
아마도 이런 시기에 사람들은
보수화 과정에 돌입하는 듯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사람이 똑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나는 매번 새로움을 진보적으로
바라보고 변화에 민감하고 싶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민해야 하는
방법론의 한가지는 '똘레랑스'다
똘레랑스는 '여왕마고'에서처럼
구교와 신교가 싸우던 프랑스의 종교전쟁시기
카톨릭이 개신교를 인정하고
개신교가 카톨릭을 인정하면서
국내정치를 안정화하던 시기에
만들어지는 하나의 방법론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신과 불화할 수 있는 용기'
이것이 똘레랑스의 정의이다
그러므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병균처럼 몰아내려고 하지 말고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유형화해서 몰아내려고 하지 말고
그 불편함 속에서 계속 고민하고
대화를 시도하고, 이해를 노력하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너무 논리적이 되지 말고
너무 감정적이 되지 말고
삶을 좀 여유롭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부분들이 필요한것이 아닌가?
예술작품을 보면 무엇인가
삶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공감이 생기는 만큼
수용의 범위도 넓어지는 것 같다
조금 더 여유를 갖기 위해서
삶의 공간을 마련해 보아야지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영화도 감상하면서
민감해진 감각의 왕국을
활짝 열어 제치고 이방인들을 맞이해보자
그래도 살아 남고
그래도 내 것이 남으면
그게 진짜 내것이고
그게 진짜 나의 정체성이겠지
다시 두려움과 변화로
의지적으로 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