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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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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n 08. 2017

신화와 주체

변증법적 해석학*리쾨르

리쾨르는 결국 미래를 희망으로 두는

주체를 탄생시키고 이번학기를 마쳤다


몰트만에서 불트만까지

헤겔에서 칸트까지 훑어본 다음 자기이야기를 꺼낸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케리그마가

계속해서 현실을 해석의 순환상태로 만들고


우리는 무로ex nilhilo 돌아가서

다시 창조되는 존재인 주체라고 말이다


철학아카데미 봄여름시즌이 끝났도다




20170608_철학아카데미

리쾨르의 철학과 삶_김선하 교수

불트만과 신화론


들어가기


- 오늘음 불트만의 신화와 비신화화에서 한번 리쾨르의 이야기를 들어볼 것이다.


- 케리그마의 입장에서 희망이 어떻게 생기는지 고민해 보자.


- 헤겔, 칸트, 라캉을 넘어서는 혹은 가로지르는 주체의 결단에서 리쾨르철학의 희망을 살펴보자.


불트만, 비신화론화


- 신화와 상징을 모두 과학적인 영역으로 치환하고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앉게 한다.


- 비신화론을 통해서 실존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리쾨르, 해석학


- 딜타이 이후에 하이데거와 불트만은 너무 이해에 치우셨다.


- 리쾨르는 이해'에 앞서 설명의 문제를 접근할 때 과학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해를 통해서 존재를 완성하는 방식은 인간을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다.


- 그러나 반대로 딜타이는 너무 과학에만 치우쳤다는 것을 리쾨르는 비판한다.


- 마찬가지로 불트만은 너무 과학에 집중하고, 주석학에 몰입한 결과 존재는 사라지고 존재자만 남게 되었다.


- 여기서 존재는 신이라고 할 수 있고 존재자는 해석을 하는 인간이라고 본다.


부활, 케리그마


- 부활 해석학의 임무는, 다시 말하면 리쾨르가 이야기하는 부활에 대한 해석은 희망의 잠재력을 복원하고 부활의 미래를 말하는데 있다.


- 부활의 의미는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새로운 창조로 존재 전체가 새롭게 될 때 채워질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ㅇ르 아는 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의 희망 운동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것은 무로부터 ex nihilo 곧 죽음으로 부터 새로운 창조를 기다리는 것이다.


- 희망에 따른 자유, 희망에서 오는 자유는 부활에 비추어진 내 실존의 의미를 말한다.


- 모든 희망과 자유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있다.


- 새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lilo가 리쾨르가 이야기하는, 몰트만이 이야기하는 희망의 신학이다.


- 부활에 따른 희망은 개인의 차원이 있고, 세상 전체의 부활을 기다리기 때문에 공동체와 역사, 정치가 더욱 강조된다.


- 희망에서 오는 자유를 근본으로 해서 철학을 시작해 보는 것이 리쾨르의 방법론이었다.


- 희망의 케리그마를 철학으로 접근하는 것은 의미의 혁신이 있으며 또한 지성의 요청이 있다.


- 희망은 비논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닫히 질서를 파고들어 실존과 역사의 구도를 연다. 가능의 열정이요, 보냄과 출애굽이요, 죽음의 현실에 대한 도전이고, 넘치는 의미가 무의미에 대해 반격함이요, 새창조의 징조다.


- 자유를 매개로 희망의 해석하는 것은 희망을 따라서 생각하는 것이다.


약속, 로고스


- 약속과 그리스의 '로고스'를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보려면, 변증법이 있는 반대로 보아야 한다.


- 적어도 알기 위해 희망한다고 해야 한다.


- 철학자가 케리그마에 접근하며 자유에 대해 하는 말은 결국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이야기이며 헤겔 이후의 칸트주의에서 드러난다.


- 희망이라고 하는 주제는 닫히 체계에 금이 가게 하고 의미를 재조직하는 힘이 있으며 그렇게 해서 조금 전에 말한 상호 교환과 침투를 일으킨다.


- 앎과 실천은 해석학적 순환에 있다. 알면 실천할 수 밖에 없고, 실천하면 알 수 밖에 없다.


칸트, 종교


- 칸트의 오성과 이성구분에서 '민음과 희망의 지성'에 들어맞아야 한다.


- 이성이 인식과 의지를 이룩하면서 품는 지평은 이론 이성의 변증론이며, 실천 이성의 변증론이다.


- 한계의 철학이면서 동시에 실천으로 통합하려는 바램이다. 희망의 케리그마에 대한 철학 쪽의 응답에서 볼 수 있다.


- 칸트는 실천이성과 순수이성 그리고 종교철학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악을 규정한다.


- 칸트가 말하는 근복 악이라는 것은 실천이성을 가지고 순수이성을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 인간은 이렇게 근본악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이 칸트의 이론이다.


- 칸트가 이야기하는 목적의 왕국에서는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악을 설명할 때 경향으로 이야기하고 순서 혹은 배치의 잘못됨 때문에 드러나는 것이다.


- 근본악에 대하여' 악이란 자유에서 나오는 자유의 존재 방식 가운데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악에 기우는 성향이 악한 본성이 되었다.


- 여기까지 오면, 그 다음부터는 리쾨르가 말한다. 과연 이러한 칸트의 마지막 질문 '근본악의 미봉책'에 대해서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말할 수 있는가?이다. 답은 결국 부활에서 희망을 바라보는 것이다.


민네이션, 생각


- 존재에 대한 물음은 항상 신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간다.


-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을 어디서든 해 보는 것은 스피노자에게서도 드러나는 거이다.


- 그러나 결론을 어떻게 내는가가 중요한 부분이다.


-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면 결국 우리는 자유롭게 사랑하면서 사랑하듯 자유를 살아게 되는 것이다.


- 방법론적으로 헤겔의 변증법은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가 형이상학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 가는 도덕이다.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가 종교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간학이다. 이렇게 존재자들은 항상 물음을 던지는데, 문제는 응답해줄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 물음을 드는 모든 사람들은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 근본악'에 있어서 칸트의 아포리아는 해결되지 않는다. 목적의 왕국에서 등장하는 근복악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리쾨르는 부활을 이야기하고 여기서 헤겔은 법철학을 통해서 절대정신에 다가 가게 만드는 형벌을 이야기한다.


- 리쾨르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생각을 전개해나가기 때문에 결국 라캉, 헤겔, 칸트에 이르기까지 존재론에서 부딪히고 넘어가고 초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리쾨르에게서는 주체가 등장한다. 결국 주체는 모든 것들을 해석하고 설명하고 자기자신의 앎과 실천을 변증법적으로 해석하는 희망을 가진 존재로 부활된다.


- 리쾨르의 주체는 랑그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순환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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