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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Oct 18. 2017

가난과 수저

역편향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대화를 하다가 가족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어느덧


가계도를 그려보면서 가족들의 생사와

변고를 돌아보는 순간, 아득해졌다


어느것하나 반짝거릴 게 없는

집안의 내력에서 '아 내가 흙수저였구나'라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고 나는 흙수저가 아니구나

하면서 살았던 시절을 돌아보게 되었다


흙수저의 감성에 젖지 말아라

우리는 흙수저니깐 싸워야 한다


이러한 말의 이면에는 역편향이 내재되어 있지만

말하는 사람은 막상 잘 모른다


그것은 자신이 흙수저인데도

흙수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흙수저들에게 힘내라고

너희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흙수저일 가능성이 많은데, 자기만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흙수저의 권리를 옹호하는듯이

살기등등하지만, 자신의 권리는 옹호하지 못한다


고귀한 희생이라면 누가 머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이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종당하는 것이다


편향이라는 것은 생각이 한쪽으로만 쏠려서

다른 사고의 공간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편향이라는 것은 편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 사실은 편향의 핵심이라는.




흙수저라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나의 편향과 배타성과 구별짓기를 생각해보았다


삐에르부르디외는 '구별짓기'라는 책에서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문화적 구별짓기를 통해서


자신이 더 나아보이게 만들고 싶어하고

그러한 활동에 수 많은 투자를 한다고 말했다


다른이들과의 다른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그러한 생각의 이면에도 사실은

역편향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저 사람들하고 달라라고 하는 순간

사실은 자기가 똑같기 때문에 그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다르면 달라라고 인식도 못한다

아니 안한다,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 대한 우리의 호불호는 사실은

이러한 역편향의 공간이 많이 존재한다


평가내리는 자리에 서 있다고 해서

평가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는 없는 것이다




흙수저? 그래! 흙수저 인정한다

그런데 왜 나는 흙수저인걸 부끄러워해야 하지?


다시 역평향이 떠올랐다

나는 왜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가난이 어디서 온것인지

어떻게 해야하는지보다는


가난한 상태가 나의 정체성을 이루고

가난한 환경이 나의 치부처럼 느껴질 때


나는 초라하고 왜소하고

세상에서 쓸모없는 인간 같았다


그러나 가난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흙수저라는 것이 도대체 누구인가?


누가 이러한 도식을 만들었는가

누가 이렇게 세상을 구조화시켜 버렸는가?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현실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이다


이 부분은 구조와 환경이 인간을 모두 정의하고

인간 불평등의 조건들을 제거해야


평등한 사회가 구성되고

영원한 왕국이 지속된다는 마르크스주의적 사고다


자본주의를 빠져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더 자본주의적인 것 말이다


역사가 정해져있다는 식의 역사학파

구조주의자들보다는 오히려 자유주의가 낫다




개인의 역사나 가족의 역사들이

국가나 사회의 의해서 주조된 도시를 벗어나서


가난이라는 허울도 벗어버리고는

수저들은 다 모아다가 용광로에 녹여버리고


원치도 않는 편향들의 편린들의

가시들도 긁어내고


자유라지만 사실을 개인주의적 도덕주의로

기껏 행복 정도에 만족하는 수동적인 인간성도 뒤로하고


사랑의 길로 간다

끝없이 흐르는 사랑만이


가난을 넘어 수저들의 밥상도 미뤄높고

진짜 인간이 되는 길로


시나브로 걸어가야지

그래 걸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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