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생각해 오던게 있었다. 영혼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정말 그녀에게 모든 것을 열어 놓겠다고 말이다. 그런 영혼으로 말하는 내가 좋아하는 소울메이트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고 한다. 어릴적 기억이 말해주고 있는 것들을 지금 한번 풀어보려고 한다. 칼로져스는 인간의 자아는 여러개로 존재하고 그런 자아들 끼리 분열할 때 인간 내면이 황폐해진다고 했다. 그러니까 반대로 해법은 자아 안에 있는 여러 자아를 서로 화해시키는 일이지 않을까? 오늘은 어릴적에 이상형을 그리던 그러니까 파울로 코엘료가 말한 '오!자히르'를 꿈꾸며 기다리는, 그래서 심지어 꿈 속에서 여러번 만났던 내 자아, 어릴적 자아를 불러볼려고 한다. 그리고 그 자아가 나에게 그 때 내가 꿈꾸고 만나고 싶던 이상형의 모습을 알려주었다.
# 1
먼저 그녀는 매우 수줍음이 많았다. 세상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고 어떤 것들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자신감을 가지지 않았다. 요즘 세상에 당당하고 자기 주장 뚜렷한 인간관을 바라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런 태도를 지니고 있을까? 모든 것은 의미가 중요하니깐 내가 이렇게 생각했던 이 유는 '사실은 세상이란 정의내릴 수 없고, 신비롭고 흘러가는 것들이라서'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내면 세계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를 그리고 있지만 현실에서 그 사람을 만난 것은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의 이상형이 그렇다는 것이다.) 수줍어하는 그 모습에서 나는 내 마음 한구석에 놓아 두었던 비슷한 자아를 찾아냈다. 나 역시도 세상은 항상 낯설고 누군가의 언어놀이가 나에게는 매우 거칠고 비현실적인 것 같았는데, 사실 아무에게도 이런 생각을 당당하거나 자랑스럽게 말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깐 이런 생각을 나눌 수 있을려면 상대도 그래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못 만났으니 당연히 나는 언제나 내가 소중히 여기는 자아를 한 쪽 구석으로 밀어 놓고서는 "아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런 매력적인 사람 말야!"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그런데 이건 내가 아니야, 당신들이 아는 나는 이런 사람 아니야. 그래도 맞춰야지 세상이란게 그런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당신의 수줍음'이란 나를 열어 놓는, 그러니깐 내 마음을 열어서 진정한 내 자아를 불러내는 열쇠와 같다고 할까? 나는 수줍은 당신이 좋다. 나 역시도 너무 수줍고 낯설기만 하니깐, 이 모든게.
# 2
그녀는 자신만의 서랍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예전에 언젠가 어느 가수가 부른 낡은 서랍장 속의 사진'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생각한거였는데. 사람마다 자신의 내면에 어떤 공간을 가지고 있잖아.(이런 어쩌다보니 말투가 바뀌었네, 더 친숙한거 같아서 계속 이렇게 써야겠다. 제발 마르셀푸르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처럼 의식의 흐름의 따라 문체가 바뀌는 그런 독특한 방식이라고 말해줘!) 그런데 이런 심리테스트가 있었어. '자 지금 당신의 방의 불을 켜고 들어갔는데 방 안에 무엇인가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다이아몬드 반지통, 크리스털 박스, 종이박스, 나무상장 등등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네! 바로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에 대한 심리테스트였습니다!' 이런 건데, 나는 그 때 나무상자를 상상했었고 그 나무의 결을 따라 손 떼가 묻은 손잡이를 열면 여러 갈래로 구성된 서랍장이 나오는데 거기에 추억이며, 기억이며, 사건이며, 감정이며 모든 것들을 잘 정돈해 놓은 것으로 생각했었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녀도 내가 만났을 때 그렇게 자신의 서랍장 안에 잘 정돈된 생각들과 감정들을 정리했었거든. (다시 말하지만 그녀를 만난 건 지금의 내가 아니고 그 어릴적의 내가 만난 거야.) 그러니까 그녀와 말을 하다가 보면 그녀가 자신의 서랍을 열어서 하나씩 추억을 꺼내놓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보았거든. 그럴 때면 나는 시간이 가는 줄로 모르고 한참 그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세계를, 우주를, 인간의 가치를, 시간의 무게를 생각했던 것 같아. 그 서랍장 안에 낭만이 들어 있었거든.
# 3
그녀는 선율을 매우 즐겨했어. 작은 소리와 떨림 하나에도 매우 기뻐하거나 슬퍼했는데, 아마도 어릴적에 내가 본 그녀는 소리와 목소리를 잘 구분했던 것 같아. 어렵지 않은게 소리는 자연에게서 나는 소리고, 목소리는 인간에게서 나는 소리인데, 선율이란 건 소리와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서 화음을 맞추거나 리듬을 갖는 것을 말하거든. 그러니깐 그녀는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음표 안에서 즐기고 있던 셈이야. 정말 낭만적이지 않니? 인간이란 이런게 아닐까? 경계를 넘나들고, 바운더리에 갖혀 있지 않고 즐길 줄 알고 깊이있게 무언가를 고민할 수 있는 거 말야. 선율이 말을 한다고 했어, 그리고 사실은 음악이 없어도 이 세상이 하나의 아름다운 선율이라고 했어. 맞아 마치 10대 볼빨간 사춘기'같은 상상이었지? 그래도 누구나 다 그렇지 않아? 그런데 언제 포기하거나 언제 그런 상상을 유치하게 여기는가? 그게 우리 마음이 나이를 먹는 과정이잖아. 나는 과거의 나를 불러 보니까 사실 나는 아직도 마음을 젊은 것 같아. 나는 아직도 어린시절의 나와 소통할 수 있는 것 같아. 암튼. 선율을 즐기는 그녀는 말 없이 있어도 함께 음악을 즐기고 함께 리듬을 맞춰서 어깨를 들썩였던 거 같아. 그래 정말 좋다!
# 4
그녀는 또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어. 그렇다고 현실에 격하게 반응하지도 않았어. 여기서 현실이란 삐에르부르디외가 말한 '세상의 비참'이야. 비참한 세상에 대해서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었어.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한다던지, 누군가를 지지하고 응원한다던지 하는 것 말야. 나는 어질적도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큰 흐름은 작은 흐름들에게서 나온다고 말이야. 작은 손길, 작은 속삭임, 작은 아름다움이 결국은 세상을 바꿀 거라고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현실을, 세상의 비참을 외면하지 않고 반응하고 함께 울고, 함께 웃었던 것 같아. 굳이 로자룩셈부르크같은 열렬한 사회운동가의 이미지가 아니라도 작은 자들과 작은 마음으로 함께 앉아 있었어. 나도 사실 그런게 좋아. 우리의 삶은 언제나 큰 흐름의 연속인 것 같지만 그 흐름들을 빼고 나면 정말 작고 보잘껏 없다고 느끼는 아침 양치질 시간과 같거든. 항상 하고 있지만 티가 안나는 것 말이야. 나도 그럴려고 해. 작은 현실에 작은 마음으로 대답하려고. 그럴려면 그녀도 그렇게 있을 것 같아서 찾아가 봤더니 정말 그녀가 거기에 있더라고.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어. 굳이 이상형을 결혼이나 연애라는 프레임에 가두지 않으면 이상형이 좋은 친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거 말야. 정말 말 그대로 디어프렌드'말이지. 함께 걷고 싶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그런 소중한 친구 말야. 성적 담론으로 넘어가지 말자. 우리는 남자와 여자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함께 동시대를 걷는 친구들이잖아? 동시대에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너무 멀리 내다 본 걸까? 아니야 그 친구는 여전히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걷고 있을 거고, 나역시 이 자리에서 부지런히 걸을려고 해. 그러다가 만나겠지? 이 세상에 완전한 직선은 없으니깐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