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가 만나는 방식
너무 소중하기에
천천히 다가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책을 쓰는데 고민한 시간 만큼
책을 넘기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서랍에서
하나의 생각과 행동을 꺼내기까지
수 많은 시간의 무게가
우리의 인생에 쌓여가기 마련입니다
시간의 무게를 무시하기 시작하면
그의 인생에 놓여진 시간의 무게들을 가볍게 여기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처럼
의미를 잃어버린 관계가 되어버립니다
너무 빨라지는 서로에 대한 앎으로
너무 빨리 서로를 판단하게 됩니다
누구나 이해하고 있는 것은 이런것이지요
내가 살아온 시간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하물며 지금 보이는 나의 태도와 습관으로
나에 대해서 다 알았다고도 할 수 없으데 말이죠
내가 걸어간 만큼 다른이들이 걸어간 길을
생각해 보는 시간 가운데
나와 너가 존재할 수 있는
현재의 여유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인격과 인격의 만남은 항상
변화와 흐름의 연속이면서 정의되지 않기에
서로의 거리를 배려하고
여유를 서로 선물하는 사이입니다
이런 사이에서는 이제부터
매우 흥미로워 지는데요
여유로움 가운데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자유의지를 실현하게 되어 있기에
자신의 진정한 중심을 내어 놓고
중심과 중심이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유로운 이들의 만남을 보셨나요?
맞아요 그렇지요 바로 낭만이 흐릅니다
낭만이라는 것은 바로 이렇게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여유로운 거리에서
나름의 리듬과 예상못한 재치와
기쁨이 반쯤 섞인 희망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런 만남을 일컫어서
마르틴부버는 '참된 만남은 곧 삶의 목적이다'라고 했지요
이런 만남 가운데서
비로소 나는 나'로 존재하고
이런 만남을 통해서 너를 너'로 놓아도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 관계가 형성됩니다
거리와 여유
낭만과 자유의지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정에서
자유롭게 흘러가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려고 한다면
(사실은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거리를 인정하고 너의 여유를 선물하며
낭만속에서 자유의지를 드러내 보이면 됩니다
정말로 재미있는 과정이지 않나요?
상대를 소유하지 않고도 온전히 느낄 수 있고
상대를 대상화하지 않고도
더 많이 알게되는 그런 신비함 말이에요
인간이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요?
사랑하고 희망하고 만나고 행동하고
여유로우면서도 거리를 인정하고서는
'나'이기 때문에 '너'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존재요
이런 관계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윤리'라는 것을 말할 수 있지요
나 안에 너가 존재하고 너 안에 나가 존재할 때
그 때 '우리의 윤리'는 말이죠
내면에서도 공동체적이고
외부에서도 공동체적이지요
길을 가는 목적과 방법이 하나이듯이
겉과 속이 하나가 되는 순간
우리가 행하는 윤리는 비로소
우리의 인격과도 하나가 됩니다
윤리는 그러므로 인격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러나 매번 생성되면서 체계를 갖추어가는 것
인격에서 향기가 나는 사람들이 만나는
거리와 여유, 우리는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는요 그런 인격을 가진 인간에게
어떤 기회와 상황을 만난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은거지요
존재하지 않은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존재하기에 생각할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우리로 존재하는
나와 너의 인격적 만남 가운데
저는 오늘도 우리의 꿈을 꾸고
낭만으로의 길을 걷는답니다
우리 그렇게 낭만을 향유하고
내일을 희망으로 놓아둘까요?
나와 너
거리와 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