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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r 15. 2018

사상과 노동

우리가 만나는 지점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난마처럼 어지러운 이 거리에서


나는 무엇이고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
 
갈 길 몰라 네거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웬 사내가 인사를 한다


그의 옷차림과 말투와 손등에는 

계급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노동자일 터이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선생님은
그의 물음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회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 한다


나는 그 집회가 어떤 집회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따라갔다
 
집회장은 밤의 노천극장이었다
삼월의 끝인데도 눈보라가 쳤고


하얗게 야산을 뒤덮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추위를 이기는 뜨거운 가슴과 입김이 있었고


어둠을 밝히는 수만 개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한입으로 터지는 아우성과 함께


일제히 치켜든 수천 수만 개의

주먹이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날 밤 눈보라 속에서
수천 수만의 팔과 다리 입술과 눈동자가


살아 숨쉬고 살아 꿈틀거리며 빛나는
존재의 거대한 율동 속에서 나는 알았다


사상의 거처는
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는 것을
사상의 닻은 그 뿌리를 인민의 바다에 내려야


파도에 아니 흔들리고 사상의 나무는 그 가지를
노동의 팔에 감아야 힘차게 뻗어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잡화상들이 판을 치는 자본의 시장에서
사상은 그 저울이 계급의 눈금을 가져야


동지를

바르게 식별한다는 것을


사상의 거처_김남주




많은 역사의 과정을 거쳐왔다

역사라고 표현하고 혹은 삶이라고 표현한다


한쪽은 정신세계와 언어를 다룬다고 했고

한쪽은 자연세계와 문화를 다룬다고 했다


그리고 사이에 인간은 살아 남기 위해서

노동을 했고, 노동은 고되고 힘들었다


자연과 정신 사에서 인간의 행위가

노동으로 귀결되면서 일어나는 일은


노동하는 자와 노동을 하지 않는자

시키는 자와 시켜서 하는 자


여러갈래의 구분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만들어졌다


사회가 만들어져 가는 사이에

태어난 이들에게는 이 분화가 당연하지만


그것이 만들어지고 나서는

어떤 고민을 할 수도 없는 것


단지 전해지는 것에서 어렴풋한

예감과 기대 혹은 좌절을 맛보는 것 뿐.


이미지, 언어, 감정, 생각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구조에 갖히기도 하고 

구조를 구성하기도 했다


비판의 개념은 이러한 구조 자체의 내구성을

공격하고 풀어내기도 하지만


구조가 만들어진 배경도

파헤치기 시작한다


우리는 어디서 출발했는가?

우리의 언어, 우리의 노동의 시초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말을 하게 되었는가?

왜 우리는 노동을 당연시 여기는가?


많은 글과 시도가 있었고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것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무엇을 쟁취하면 그것이 무기가 되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노동과 계급으로 갈라져버린

무엇인가를 감지한 이들.


무언가 낯설고 서툴고

이상한데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이들


그래서 하염없이 울거나

체험하거나 포기하는 이들.


주체의 하위에서 겨우 서서

under - stand해야만 하는 이들.


나는 거기서 자랐다

나는 그들과 살고 있고 나는 그들이다


그런데 상위에 있다고 하는 이들을

공격하거나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


사람이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의 구조가 공격의 시작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아래에서 부터

위로까지 전부 발견한 이상


정신에서부터 자연적 상태까지

우리의 몸에서 부터 사회적 조건까지


고민해본 결과 우리에게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개현시킬 수 있는.


그런 생각과 그런 행동

그런 기획과 예감이 필요하다는.




만나보면 안다

진실로 안다


우리가 나와 바깥으로 구성된게 아니라

나와 너로 구성된 하나의 시간


하나의 공간을 이루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살아가는


같은 시대의 아이들이라는 걸

정신과 몸이 연결되어 있듯이


나와 너는 하나로 연결된

시공간을 공유하는 '존재'라는 것을.


아름다움이 우리의 존재 안에

꽃피울 수 있도록 먼저 나부터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향유하고 살아 낼려고.


도덕은 타자를 정죄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아름다워지는 길목의 피어난 작은 꽃이니까.


윤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사랑이 목적이 된


걸어갔는데 자연스러운 길

걸어갔는데 함께 걷고 있을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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