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서 발견하는 자유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자 없으리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시편 50편_개혁개정판
삶에서 초월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누구나 초월성을 받아들이고
내재성을 곤고히 한다
하나님이 초월적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반감이 드는 문화에서
나는 다시 초월성을 대면하고
무서운 하나님과 마주 앉는다
나를 찢어버리고
나의 존재를 갈아 버리는 하나님 앞에
벌벌 떨면서 앉아 있다
나는 언제 죽을 것인가?
이러한 초월성 앞에서 나의 내재성은
꽁꽁 닫혀 버린 얼음 계곡 같아 진다
성경은 내러티브로 구성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서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특히 시편과 같은 문학적인 부분은
있는 그대로를 다큐처럼 받아들이면
무시무시한 살인교본이 되기도하고
투철학 민족주의 신앙의 말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초월성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어보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초월성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소통하는 지점이되고
그 초월성은 힘과 능력의 초월성도 있으나
사랑과 인격적인 초월성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나에게 주시는 말씀들의 이면에는
나를 사랑하여 나와 함께 하고픈
하나님 아버지의 애절한 사랑이 느껴진다
성경을 보고 있는 지금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고 건네는
초청같은 명령은
나의 내재성에 파고들어서
곧 나를 만들어가고 세상을 만들어 간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하나님이
결국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직접 세상의 내재성 안으로 들어오고
나의 내재성 안에서 초월을 만들어내시는
인간을 다시 창조하신다는 것
새로운 길을 여신다는 것
들뢰즈의 말처럼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면
우리는 내재성이 갇혀서
내가 누구인지도 우리가 누구인지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불꽃같은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실 것 같은
문학적인 표현 안에서
내가 불러도 대답할 이가 있다는 것과
내가 영적인 고아같이 우주에 버려진게 아니라는 것과
그 하나님이 인간과 세상을 사랑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회복을 이루었다는 것
나는 여기서 내 발을 딛고
다시 일어서고 있는 중이다
자유는 목적이 아니다
자유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사랑이 목적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함으로 자유를
결과적으로 얻게 된다
감사라는 것은 자유롭게 울려퍼지는 노래다
초월성과 내재성을 넘나드는 사이
인생의 깊은 맛이 영혼에서 우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