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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Apr 21. 2018

자아와 비밀

어린자아와 마주하기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

특히 그것이 가정사에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특히 가정에 대한 비밀을 이야기한다는 건


그 사람 안에 있는 자아가

어린이를 벗어나서


스스로 객관적으로 보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누군가 나에게 독화살을 날리면

그 상처를 입은 자아를 돌아보는게 아니라


독화살을 쏜 타자에게 관심이 끌려서

아파하는 자아를 더욱 복수심으로 끌어 맨다


그렇게 이중으로 상처입은 자아는

몇배의 고통을 그 누구도 알아주는 이 없이


자신에게도 비밀인

마음의 성벽을 쌓는다


타자에게도 그리고 자신에게도

열어놓을 수 없는 자아의 성 안에서


인간은 고독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이들에게는

햇빛을 못보고서 얼음왕국에 갖혀 있는


어린시절의 자아만이 가득하다

그래서 외롭다


사람들을 경계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숨기려고


차갑게 대하고 툭명스럽게 말하고선

혼자만의 공간에서도 스스로 소외된다


외로운 인생의 비밀에는 언제나

자아안에 상처가 곪아서 터져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었던 어느날 저녁

차갑고 불꺼진 집의 방바닥이 생각난다


저녁 7시가 넘었는데도 아무도 없었고

나는 혼자 앉어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은 아마도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는 소리였을 것이다


형은 그날로부터 3일만에 숨을 거두었고

아직도 생생하게 잊혀지지 않는 느낌인데


어머니는 그자리에서 거의 실신을 하셨다

나는 멍해지기 시작했고


멈춰진 시간과 공간에서 얼어붙은 자아는

나만의 성벽을 쌓고 조용히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형의 죽음은 10년이 넘어서도

내 안에서 언급되지 않는 비밀이었다


어머니의 슬픔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세상은 험난했고 나는 가난과 싸우고


때론 열등감과 싸우고

나를 비교하는 사람들과 대척점에 서야 했다


열심히 산다고 달려왔던 어느날

빼꼼이 나와 있는 내면의 어린이를 만났다


어린시절, 그 차디찬 방바닥의 감각과 같이

눈물에 글썽이는 중학교 1학년때의 내모습이었다


갈 길을 잃고, 멈춰버린 시간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가족들과 함께


갖혀버린 어린자아는

여전히 멍하게 두리번 거리면서


자신의 길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비밀이 만들어 놓은 마음의 벽 가운데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고

그 이후에 수많은 자아가 만들어졌지만


그 시절의 어린자아에게는

전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나는 슬프지 않아, 나는 불쌍하지 않아!"

스스로에게 변명아닌 변명을 하면서


매번 빼꼼이 바라보는 어린자아를 무시하고는

미래라는 진보의 선물을 받으러 달렸다




있는 힘껏 안아 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걸었다


그 때 많이 힘들었지?

너가 감당하기도 힘었지?


다 알아! 이제야 내가 너에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용서해줘.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어린자아의 눈물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나는 소중하게 쓰다듬으면서


어린자아를 위로해 주었고 비로소

멈춰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세상 사는 것 정말 힘들다

내가 만들지 않았던 고통들이


나를 엄습해 오고 사회는 점점

구조적으로 가난과 무지함을 학습시킨다


누군가 나에게 지속적으로 독화살을 쏘는 듯

나는 그것을 방어하려고 더 독하게 쏘아댄다


지치지도 않을까?

그러는 사이에 자아는 몇배의 고통으로


상처나고 멍들고

시들해져서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달라고

상담이나 도움을 청할수도 있지만


사실은 내가 알아줘야 한다

그 때 그렇게 무심결에 지나쳤던


어린자아의 울음소리와

길을 잃고 헤메고 있는 두려움을.


여전히 삶은 고통이고 두려움이지만

내면의 평화가 흘러나오는 사이에


항상 반사적으로만 대응하지 않고

가끔은 사랑이 흘러나오기도하고


낭만이 흘러나오기도 하더라

요즘은 가끔이 아니라 자주 그렇지만.




누군가 어린 자아의 상처로

비밀의 벽을 쌓고 있다면


함께 그 벽을 허무는 자리에서

빼꼼이 내밀고 있는 어린자아를 마주하고


위로하고 축하해주고 싶다

넉넉히 여유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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