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불법체류?

나는 미국 이민국에서 우편 메일을 받았다.

by 민모네

나 브런치 스토리에 우리 이야기를 올리기로 했어. 오늘 아침, 미국에서 함께 살고 있는 막내 여동생에게 말했다. 미국 유학생활 동안 힘들 때 나를 지탱해 주던 것은 그 당시 열심히 작성하던 블로그였는데, 대학교 졸업 이후 한동안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이야기를 하기엔 여유도 열정도 없었으며, 계속되는 유학생활에 삶을 살아가는 게 막막하기만 했다.


"사람들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하겠다. 재수 없다고..." 동생은 내가 올리는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내가 상처받을진 않을지 걱정스러운 말부터 했다. "괜찮아 재수 없어도..."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재수 없을지라도, 누군가에겐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되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부푼 꿈을 안고 미국 유학의 길을 떠난다. 이제는 미국만이 아닌, 캐나다, 호주, 영국, 다양한 나라로 유학을 떠나곤 한다. 열다섯의 나처럼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떠나는 유학길, 그런 자녀를 보내는 부모님과 가족들, 나의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세상 물정 몰랐던, 열다섯 나의 열정은 가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유학을 반대하셨던 그 당시 조금 더 보수적이셨던 아버지는, 어린 여학생이 혼자 미국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 유학비용은 물론이고, 과연 부모님이라는 울타리 없이 내가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셨다. 그 당시 부모님께 가장 먼저 떠올랐던, 미국이란 -- 할리우드 액션 영화처럼 총알이 빗받히고, 범죄영화처럼 길거리에서 마약거래가 이루어지고, 하이틴영화처럼 미성년자 학생들이 음주가무를 즐기는, 그런 곳이었던 것 같다. 가족들이나 친인척 중에는 미국 유학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없었고, 유학원에 연결해서 더 알아볼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유학원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거나, 유학원을 통해 유학을 생각하기엔,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요새처럼 정보 공유가 쉽게 되는 세상이었다면, 더 많은 것을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조금은 그 시절이 아쉽다.


마음에 품은 스승 한분


당시 영어 성경책으로 함께 영어 공부를 시켜주시던 교회 목사님께서는, 다양한 나라에서 목회를 하고 계신 분들을 알고 계셨는데, 그중 한 분은 미국 워싱턴주에서 목회를 하고 계신 분이셨다. 목사님께서는 짐작하건대, 영어 성경책으로 영어 공부를 시켜줌으로 더 많은 학생들을 전도하고 싶으셨을 테지만, 시간이 흐르니 어느새 나와 목사님 1:1 영어 과외 같은 시간으로 변해 있었다. 당시 주변 교회들은 친구를 전도할 때면, 친구 한 명당, 오천원 상품권을 주곤 했는데, 사실 오천원 상품권들이 주는 즐거움이, 그 나이 때엔 영어공부보다 더 유혹적일만했다.


나는 오천원 상품권보다 오히려 영어 과외 같은 시간이 더 좋았는데, 영어 성경책 단어들만이 아니라 다른 모르는 단어들도 더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오천원 상품권을 받기 위해, 친구를 데려오는 과정 역시 심적으로 힘들었고, 종교 역시 돈과 연결되는 사회에 피곤함을 느꼈다. 모태신앙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종교에 질문을 가지게 되었던 것도 이때였다. 당시 목사님께서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던 내가 안타까우셨던지, 미국에서 목회를 하시는 다른 목사님께 부모님을 연결시켜 주셨고, 부모님과 미국 교회 목사님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셨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 마음속에 남아 항상 감사드리는 인생의 스승이 있다면, 나는 어린 시절 영어공부를 시켜주셨던 그 목사님을 기억한다. 그분의 종교를 믿던지 안믿던지, 목사님은 어린 나에게 꿈을 심어주셨고, 나를 안타깝게 보았으며, 그 꿈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이였다.


왜 하늘은 선한 사람들을 먼저 데리고 가는 걸까?

여전히 이 땅에 계셨다면, 더 많은 학생들의 꿈도 키워주셨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조건부 미국 유학


미국 유학은 잘 모르겠다 하시던 아버지는 미국 목사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조건부로 유학을 허락하셨다. 목사님 가정에서 학교를 다니면, 더 안전하고 바르게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 때문이셨던 것 같다. 우리 집 형편을 알고 계셨던 미국 목사님 역시 홈스테이 비용을 최소한으로 받으셨고, 그래서 나는 홈스테이 기간 동안 최대한 집안일을 어떻게든 도와드리려고 노력했다. 부모님은 어떻게든 유학비용을 마련하려고 노력하셨고, 미국 목사님께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기독교 사립 학교에 나를 입학시키는 것을 추천하셨다. 그 당시 무지했던 우리는 미국 유학을 갈 때는 미국 학생비자가 필요하다는 것과 미국 교육부가 인증한 학교에서만 유학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디에서 받은 조언인지 알 수 없지만, 관광비자로 미국을 입국한뒤, 학생비자로 미국 내에서 비자 변경이 쉽다는, 전혀 사실이 아닌 조언을 받아, 그 당시에는 마음을 편하게 먹고 관광비자로 미국 입국을 하게 된다.


나는 관광비자로 입국한 만큼, 정식 학생이기보다는 학교를 탐방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위치였다. 실제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기 전, 먼저 방문해 탐방하고, 학생 비자가 나오면 정식으로 학교에 다니면 된다고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인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미국교회에서 하던 여름캠프 봉사활동등, 액티비티들을 참여하며, 교회 설교와 현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영어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미국 체류 6개월 차, 나는 미국 이민국에서 우편 메일을 받았다.


2주 내로 떠나지 않으면 미국 내 나의 신분이 불법 체류자가 된다는 우편이었다. 미국에 들어오면, 관광비자에서 학생비자로 변경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 청천벽력은 무엇인지.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알아보기 시작했고, 결론적으로 비자 변경의 진행이 아무것도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내 잘못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만 믿고 있었고, 어른들이 어떻게든 해줄 거라 생각해 비자라던지 법적인 내용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모님 역시 내가 거주하던 곳 교민분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비자가 진행되고 있다고 알기만 하셨지, 정확한 진행 사항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방문을 닫고 소리 내어 펑펑 울었다. 그 와중에도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하루 종일 울었다. 내 인생은 이제 망했구나 싶었다. 그 짧은 시간 느꼈던 미국은 법치국가, 법에 진심인 나라였는데, 내가 몰랐더라도, 불법 체류자가 된다는 경고문을 받았다는 것에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미국에 돌아오지 못하겠구나. 유학은 무슨, 나중에 커서 미국 여행이라도 갈 수 있을까? 무서웠다. 내가 무지해서 법을 어겼다는 생각에, 문을 잠그고, 밥도 먹지 않고, 하루종일 펑펑 울고, 지쳐서 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현지에서 들었던 가장 무서운 조언은 미국에서 불법체류를 하라는 조언이었다. "미국에서만 있으면 상관없다. 한국에 나가지만 않으면 된다. 불법체류자가 되면, 미국에서 공립학교를 무료로 다닐 수 있다. 미국에서 학비 안 내고, 학교를 다 다니고, 한국에 돌아가면 되잖아." 그분들의 시대에는 불법체류자가 된다는 선택이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었겠지만, 2007년의 나에겐 아니었다. 불법체류든 뭐든 일단 미국에서 있으면서 비자를 변경하면 된다는 분도, 좋은 마음이었든, 혹은 가벼운 마음이었든, 정확한 법적 지식 없이 건네받은 조언들에 나는 무섭고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때의 나에게 돌아간다면, 그 조언들이 15살 나의 인생을 얼마나 쉽게 망칠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 텐데, 당시 나는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하루종일 울고, 다음날 아침,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짐을 싸서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다시 처음부터 제대로 유학비자를 밟아 정식으로 와야 한다고. 불법적인 체류를 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유학에 없던 것이었다. 나는 제대로 해보고 싶었고, 막연히 미국유학이 가고 싶다가 아니라, 이번엔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불법체류자가 되어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고 미국에 평생 숨어 살 수는 없었다. 미국 유학을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홈스테이분들께 작별인사를 하고 미국을 그렇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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