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덜미를 붙잡혀 바닥에 쳐박히는 느낌
기분의 일교차 50도
그래, 드디어 시작이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져 오랜만에 투병일기를 작성해 본다.
최근에 병원에 갔을 때에는 증상이 많이 호전됐었다.
다운되어 있던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늘 함께 있었던 만성 불안감도 점차 사라졌다.
기운이 나 타인과 대화를 하고 싶었고, 자리에서 일어날 힘이 생겨 외모도 치장하고 미용실에도 다녀왔다.
거의 매일 새롭고 흥미로운 꿈을 꾸는 것도 좋았다.
현실에서 마주할 수 없는 행복감과 설렘을 꿈에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세로토닌을 활성화시키는 약물을 복용하면 즐거운 꿈을 꿀수도 있다고 했다.
현실이 불행하니, 중간 지점인 꿈 속에서 밸런스를 맞추려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지인에게 부업을 추천받아
사업 설명회도 다녀오고 무력하게 집에만 누워있던 시간을 벗어나
한 발자국씩, 우울감이 찾아오기 전과 같은 생활을 시작했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남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예전보다 덜 의미를 부여하게 된 점이었다.
'타인의 의도까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상담내용을 처음에는 부인했었다.
몸이 나아지면서부터는 지독한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명확히 나의 컨디션은 상승 곡선을 타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도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을 받고는 했으니까.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환자들이 증상이 나아질 때쯤 병원행을 끊는다고 했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잠시 동안 했었다.
이제 다 나은 게 아닐까? 약을 6개월 동안이나 먹었으니 이제 괜찮아진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디발프로서방정이라는 새로운 약을 처방해 주셨다.
지금 들떠오르는 기분을 잠재워주는 약이라고 하셨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될까요? 저는 지금 이 상태가 너무 좋은걸요."
"그 상태가 유지되면 좋은데, 분명 추락의 순간이 찾아올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단호한 말을 듣고 조금 눈물이 맺혔다.
나는 끝끝내 들떠있는 채로는 살 수 없는 사람인 걸까?
그리고 머지않아 그 순간이 찾아왔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가.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공허하다.
어떤 사람은 사는 거보다 죽는 게 편하지 않을까.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숨만 쉬어도 지출이 있는데 일을 안 하고 살 수가 없는 게 서글프다.
몸이 붕 떠오를 정도로 상승했으니,
이제 추락은 예고된 일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나 자신이 싫었다.
잠을 아무리 많이 자도 또 자고 싶었다. 묶어놓은 것처럼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무가치한 사람인 것 같았다.
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에 짐만 될 텐데.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찾아간 세미나에서도 현타가 밀려왔다.
이렇게까지 해서 삶을 살아내야 하는 걸까.
우울감은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온다.
예고도 없이 노크도 없이 불쑥 마음속에 찾아와서는
목덜미를 잡고 깊은 수영장에 처박아 버린다.
폐 속 가득히 물이 차올라 고통에 몸부림쳐도 난 그걸 이길 수가 없다.
십 수년간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