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책임은 누가 지나요?
지난주 금요일 키위새 후배의 떨리는 통화 소리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누군가 쏟아내는 거친 말들이 웅웅대고 있었다.
키위새는 입사 6개월도 안된 신입이었기 때문에, 전화를 돌려달라고 해서 내가 받았다.
화가 난 상대편은 우리가 운송해야 하는 화물을 이미 다른 운송사에서 반출해 갔다는 소식을 알렸다.
트럭 기사님이 창고에 도착했으나 화물이 없어 운송사 측에서는 난리가 난 상태였다.
트럭 기사님들은 물류업계 종사자 중에서도 상당히 거친 편에 속한다.
창고에 급히 전화를 해 어느 업체에서 화물을 반출했는지 알아보았고 A 운송사에서 화물을 빼간 걸 알았다.
A 운송사에 전화해 확인해 보니 해당 화주의 관세사가 A 운송사에 오더를 내려 화물을 반출했다고 한다.
창고에 화물이 없으니 우리가 오더 내린 운송사에게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며 오더를 취소했다.
이 과정에서 운송료와 오더 캔슬료가 발생했고, 이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게 되었다.
관세사에 전화해 자초지종을 묻자 담당자는 태연히 대답했다. A 운송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오더를 줬을 뿐이라는 황당한 대답이었다.
A 운송사에서도 우리에게 운송비용을 어디로 청구해야 하냐며 우리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대체 왜?)
애초에 이 Shipment는 우리가 핸들링하고 있었고 우리가 최종적으로 운송을 마친 후에 중국파트너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프로세스로 진행되는 건이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아내야 해서 사건의 타임라인을 정리해 보니
1. 관세사에서 A 운송사 쪽으로 관/부가세 계산서를 잘못 전송
2. 평소에도 해당 화주의 화물을 운송하던 A 운송사가 오더가 있냐고 역으로 관세사에게 문의
3. 관세사는 검수 없이 A 운송사에게 운송 오더
4. 위의 과정을 몰랐던 우리는 이중으로 운송 요청
결국, 창고에 더 늦게 도착한 우리가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상황을 알아보니 A 운송사도 잘못한 건 없으니 협의를 하여
A 운송사의 비용은 우리가 부담, 우리가 손해 본 운송비용은 관세사에 청구하기로 일단락했다.
맨 처음 실수를 하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관세사에게 화가 났지만, 어쨌든 상황 해결이 우선이었다.
키위새에게 청구서와 세금계산서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다음 주, A 운송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키위새에게 왜 운송을 하지도 않았는데 운송료를 모두 청구하냐며, 결론적으로는 운송을 안 했는데 왜 운송료를 청구하냐는 항의전화였다.
아니 댁들도 운송사 아닌지, 트럭기사님들은 시간이 생명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화물을 실어 날라야 돈을 버는 구조인데 우리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으니 비용을 지불하는 건 당연하다.
네고를 하려면 할 수야 있었지만 우리의 실수가 아닌 문제로 네고 신청을 할 명분은 없었다.
그리고 분명 A 운송사 측에서 우리에게 운송료를 청구하고 우리에게서 발생된 운송료는 관세사에 청구하라고 얘기하지 않았던가.
구를 대로 구른 거친 운송사 남자 과장을 이길 힘이 키위새에게는 없었다.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곤란해하고 있는 키위새에게 전화를 돌려달라 하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의 잘못이 아닌데 왜 우리가 네고신청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미 전화를 주신 A 운송사와 우리가 협의를 마쳐서 청구를 나간 건에 대해 왜 말을 바꾸는 건지에 대해 물었지만 적절한 답변은 듣지 못한 채 그저 발생된 비용(관세사에 청구하게 될 운송료)을 깎아달라는 요청뿐이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중으로 발생된 운송료를 전부 청구하지 못하고 일정 부분 손해를 봐야만 했다.
여전히 관세사에서는 사과 한 마디, 직접 네고를 바라는 전화 또한 없었다.
A 운송사 과장은 뜻을 굽히지 않는 나의 이름과 직급을 확인했다.
(세상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러면 무서워하는 줄 안다.)
12년 동안 이 업계에 있으면서 윗 직급의 남자들이 젊은 여직원의 이름과 직급을 묻는 건 한두 번의 일이 아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 너무 분명했으나 아주 흔쾌히 알려줬다. 잠시간 기분이 나빴지만 금방 잊었다.
그리고 다음날,
재작년 퇴사해 자기 회사를 차린 차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사람이 왜 갑자기 전화가 왔나 해서 받아보니 위에 기술한 사건을 알고 있었다.
A 운송사 대표가 우리 회사 명함을 뒤지다가 남자차장의 명함을 발견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여기서 너무 의도가 투명하게 보여서 할 말을 잃었다.
나보다 더 윗 직급에게 압박을 가해 어떻게든 나를 굴복시키려는 전략. 하지만 그는 퇴사했지.
남 차장은 "김대리가 좀 해줘~ 이 업계 좁잖아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날지도 모르고~ 김대리 마음 모르는 거 아닌데 충분히 김대리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거잖아?" 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나도 할 말이 많았던지라 억울함을 토로했다. 관세사에서 사과 한 마디만 하며 부탁했으면 네고해주려 했었다고. 우리도 운송사에 굽신거리며 깎아달라 요청해야 하는데 사과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치닫자, 속이 답답해졌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 근데 왜 기분 좋지 않게 퇴사한 사람한테까지 전화를 받아야 하며, A 운송사는 대표에게까지 이 이슈를 보고하며 우리를 이겨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겐 아무도 없었다.
키위새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나뿐이었는데, 나를 지켜줄 상사는 없었다.
내 위의 업무팀장이라고 앉아있는 쌈과는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관심 없는 척, 모르는 척할 뿐이었다.
차장과 전화를 끊자마자 A 운송사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대표가 일개 대리에게 전화를 걸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더 이상 버티지 말고 자기네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것. 그거뿐이다. 직급으로 찍어 누르기 위해서다.
정말 슬프고 서럽고 무력감이 온몸을 덮었다.
애석하게도 난 개인용무로 다음 날 연차였다.
내가 하고 있는 실무가 가장 많아 인수인계 쓸 것도 산더미였는데, 아직 내 밑에 직원들은 업무가 능숙하지 않아 최대한 자세하게 내가 해놓을 수 있는 모든 걸 해놓고 가야 했다.
5시 10분이 되자 '계'는 인수인계를 요청했다.
스트레스가 쌓여있던 나는 그 사내 메시지를 보자마자 마우스를 집어던졌다.
계가 잘못한 게 없는데 계한테 화풀이 한 셈이다. 이제 자괴감과 미안함까지 밀려들었다.
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끝끝내 참지 못한 내가,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이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내 목을 졸랐다.
퇴근하고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업무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는 감정노동이 나를 괴롭게 했다.
이 일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나는 강하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