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골라준 내 취향의 향
COVID-19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봄.
계절의 여왕이라는 장미가 잔뜩 피어난 어느 공원이었다.
만연한 봄 햇살 아래에 노랑, 분홍, 다홍색의 꽃들이 자신만의 빛깔을 드러내며 번져나갔다.
우리는 둘이 만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 때에도 네가 먼저 만나자 제안했었다.
분기에 겨우 한번 만나는 우리였지만 만날 때마다 어색하지 않았다.
너는 무릎이 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온 나에게 “예쁘다” 고 했다.
우리는 그날 장미꽃을 배경으로 서로의 모습을 열심히 찍어냈다.
너나 나나 한동안 그 사진을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두었다.
그날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따스한 햇살이 함께였다.
공원 가운데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산책을 하던 우리는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영화처럼 공원 한가운데에 무지개가 떠올랐다.
우리는 가볍고 알맹이 없는 대화 대신에 서로의 가치관을 깊게 공유했었다.
너는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몇 달이 지나고 한파의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그 추운 날씨에도 너는 코트를 입고 나왔다. 나를 위해 국내에서 가장 큰 영화관 티켓을 예매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흔하지 않지만 내 취향에 딱 맞는 향수세트를 선물해 줬다.
나는 나중에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향을 말했다.
너는 ‘역시 그 향을 가장 좋아할 줄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나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캐슬 조명이 잘 보이는 곳을 알아왔다.
너는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너는 공부를 오래 하고 있었다. 한 달 여 뒤에 시험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너는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성격이라고 했다.
성별이 다른데도 둘이 만나 노는 걸 의아하게 여기는 지인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네가 날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눈치가 없었다.
네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크리스마스 날.
나는 지금의 남편 이야기를 했다.
우리의 연락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만나는 빈도수는 줄어들었다.
네가 나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 달라졌다.
너는 선을 지킬 줄 아는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너에게 청첩장을 전달하는 날이었다.
술기운에 오랜 기간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진심을 말했다.
우리의 비슷한 성향에 대해, 만약에 우리가 처한 환경이 조금 달랐더라면 어땠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전히 너는 좋은 사람이었다. 수면 위로 올라올 듯 말 듯한 진심이었다.
너는 그날 나에게 샴페인을 선물했다.
결혼 축하의 의미가 담긴 샴페인이었다. 네가 어떤 마음으로 골랐을지 추측하고 싶진 않다.
그저 너는 선물을 고르는 센스도 남달랐다는 사실만 기억하겠다.
20대 초반의 우리, 아무 접점이 없었지만 빠르게 친해졌다. 그런 사람이 있다.
난 너를 많이 아꼈다. 너도 날 그렇게 여겼던 것 같다.
너는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을 가진 탓에 자주 마음을 다치곤 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너와 만날 때의 내 사진을 본다. 우리는 서로 찍어준 사진뿐만 아니라 같이 찍은 사진도 많다.
그때의 내가 예뻤던 건지 네가 예쁘게 찍었던 건지 모르겠다.
2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함께 한 우리. 그때의 우리는 그 자체로도 좋았던 것 같다.
너와 있으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네가 몇 해 전 선물 해줬던 향수세트.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향수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너와 함께할 순 없어도 네가 준 향은 간직하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