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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Dec 08. 2023

지금도 그는 뒷바라지 중입니다.

아내 공부시킨다고 애쓰는 남편… 미안하다 여보야.

상담을 하고, 점심 식사를 하려던 무렵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저 뭐 물어봐도 되나요? “ “네~ 그럼요. 말씀하세요.”

“선생님, 특수대학원이 뭔가요?” “아~ 특수대학원은 일반대학원과 조금 다른데요. 보통 직장을 다니시는 분들이 많아서 야간에 수업을 해요.”

“그러면 상담하려면 어느 대학원으로 가야 해요?” “네~ ……(길게 설명)“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30분을 넘겨서야 끝이 났다. 종종 겪는 일이라 익숙하다.

 



한 달 만에 내담자를 만났다. 우울감과 무기력감으로 오랫동안 힘들어했던 내담자로, 조금씩 나아져 종결을 하고, 한 달 뒤에 만나는 자리였다. 잘 적응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인 만큼 내담자가 오기 전부터 여러 마음이 교차했다. ‘잘 지냈어야 하는데.. 잘 지냈을 거야.’ 무한반복의 생각이 끝날 무렵, 상담실 문을 열고 얼굴을 보인 내담자.

“우와~” 건강하고 밝아진 느낌이었다. 목소리도 커져 있었고, 위생 상태도 좋아졌다. 변화된 모습에 나도 한껏 들떴다.

상담 종결 무렵에 내담자는 막 시작한 운동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했었다. ‘그럴 수 있다.’, ‘처음이 가장 어렵다.’ ‘과정이다.’, ‘이 순간만 잘 견뎌보자.’라며 응원하고 격려했었다. 제발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었을까. 결국 내담자는 해냈다. 내담자 모습에 행복했다.




오랫동안 했던 일을 전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직업 전환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짝꿍이 말했다.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내 나이 사십에 수능을 볼 수 없으니, (수학 때문에 더 더 안 된다.) 심리학사를 따기 위해 평생교육원에 입학했다. 우리 집 꼬맹이 18개월 때.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는 아기 띠에 아이를 둘러업고 책을 봤다. 시험 때는 장난감 자동차에 아이를 태워 발로 밀면서, 눈과 손은 강의안을 붙들고 있었다. (이 당시에는 나 정도면 잘하고 있다 생각하고 엄청 뿌듯해했는데, 막상 대학원 가니 그런 사람이 천지였다. 발가락으로 아이 재워가며 논문 쓰셨다는 교수님 일화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 그래도 늦게 시작한 공부가 재미있었다. 앞으로 어떤 대학원을 갈지 고민할 때도 행복했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한 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 있게 원서를 넣었던 대학원에서 떨어졌다.

나보다 더 실망한 건 짝꿍이었다. 공부는 내가 했지만, 꼬맹이가 어렸기에 짝꿍의 뒷바라지가 없었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짝꿍은 주말 내내 독박 육아를 했다. 수업 갈 때 올 때마다 카시트에 꼬맹이를 태워 나를 데리러 왔다. 시험 공부할 때 방해하지 않겠다고, 꼬맹이를 데리고 시댁에 가기도 했다. 시험 끝나고 핸드폰을 켰을 때는 ‘엄마! 수고했써여‘의 영상이 와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내가 이 나이에 사랑하는 가족들 고생시켜 가며, 지금 뭐 하고 있나 하는 마음에 눈물도 흘렸다. 

짝꿍은 주중에는 회사, 주말에는 육아. 그렇게 2년 내내 나를 지지해 줬다.  (그때는 그 2년이 7년. 8년이 될 줄 몰랐다.) 그럼에도 짝꿍은 내가 평생교육원을 졸업할 때까지 불만 한 번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떨어지다니. 으아악. 괴로웠다.


그 괴로움에 ‘나는 이 길이 아닌가 보다’ 합리화하며, 꼬맹이와 지지고 볶고 육아에만 몰두했다. ‘나는 애 엄마다.’ ‘내가 누굴 상담하냐. 내가 상담받아야지.‘ 하며, 오락가락 널뛰기하는 기분을 부여잡고 있었다. 동굴 속에서 나올 기미가 안 보이자, 짝꿍이 나를 꺼내기 시작했다.

’ 괜찮다. 한 번에 붙는 게 말이 되냐. (나랑 같이 공부하던 사람은 됐어.) 너는 충분히 잘했다. 니가 열심히 한 거 나도 봤고 꼬맹이도 안다. (교수들은 몰라.) 열심히 했으니까 쉬어가라는 의미일 거야. (이러다 쭉 쉬면 어떡해.) 너 진짜 이럴래? 여기까지 왔는데, 때려치울 거야?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갑자기 왜 그래. 쫌 무섭네.) 대학원 원서를 딱 한 군데만 넣는 애가 어딨냐?  너 나이에 뭘 믿고? (그..렇긴 한데.. 주저리주저리) 이제 다시 시작해라. (응. 알았어.)

이 대화를 한 달 내내 반복적으로 했다. 그리고 꼬맹이가 ‘엄마, 할 수 있쪄.’라고 하던 날, 나는 다시 책을 꺼냈다.


출처 : 픽사베이


공부하고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고 연구계획서 쓰고 살림하고 육아하고. 5개월 후. 합격했다.

가장 원했던 대학원이었다. 나보다 짝꿍이 더 기뻐했다. 평소 말이 없는 사람이 여기저기 자랑을 했다. “우리 땡땡이가~” 나는 짝꿍의 희생과 배려 잊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그러나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자, 더욱 강력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짝꿍의 희생과 배려는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이제는 언제 끝나냐고 묻지 않는다. 안 끝나는 줄 아니까. 나는 맨날 약속만 한다. 이 은혜 잊지 않을게. 충성을 다할게. 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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