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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앙마 Jan 23. 2024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한 달 쓰기 챌린지 셋째 날(2023.12.23의 기록)

#사십춘기, 나를 찾는 매일 글쓰기

#한 달 쓰기 챌린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작고 가벼운 배낭하나 매고 샛노랗고 깜찍한 캐리어를 끌며 여행 가는 것이다. 


 어제 방학을 했지만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기에 여전히 내가 할 일이 너무 많다. 먼저 방학을 시작한 아이들 삼시세끼 밥이며 빨래, 청소 기타 집안일은 물론이고 셔틀 없는 아들 학원 뚜벅이 라이딩까지 워킹을 잠시 내려두었을 뿐(물론 생기부 작성이 남아 마음으론 일도 못 내려놓음) 여전히 맘이기에 할 일이 넘친다. 


 학기 중에 전업맘이라면 애들 학교 간 시간이라도 내 것일 텐데 전업맘들도 손꼽아 개학만 기다린다는 시기에 시한부 전업맘을 하게 되니 방학이 마냥 달지 않다. 거기다 학기 중엔 연가도 자유롭게 못 쓰니 남들 비성수기 여행 다닐 때 부러워서 침만 흘리다 방학해서 갈라치면 성수기라 비싸기도 엄청 비싸고 그마저도 어디나 사람들이 넘친다. 다녀오면 휴양이 아닌 고행길 순례를 마친 기분이다. 역시 집이 최고다를 외치게 된다. 거기다 아이들이 크다 보니 학원 빠지고 여행 잡기도 힘들어지고 이번엔 남편 다리까지 말썽이라 여행은 물 건너갔다.


 또한 혼자 여행할 때와 달리 가족여행은 그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얼마나 신경 쓸게 많은 지 사실 짐 싸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울고 싶어 진다. 언제쯤 애들이 스스로 자기 짐 잘 싸고 챙겨서 친구처럼 여행할 수 있으려나? 물론 그때쯤엔 오히려 이 엄마가 짐스럽고 친구들과 여행 가는 것이 훨씬 좋을 테지만 말이다. 


 암튼 오늘의 주제니 좀 더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자. 겨울에도 많이 춥지 않으면서 볼거리가 많은 스페인이나 아니면 아예 계절이 반대인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좋겠다. 


 사실 두 곳 다 가보기는 했지만 겨우 점만 찍고 온 수준이라 아쉬움이 많다. 스페인은 바르셀로나에서만 4일을 보냈고 호주에서는 한 달 있었지만 대부분 태즈메이니아에 있었고 시드니, 멜버른 정도만 주말여행으로 다녀온 게 다다. 두 경우 다 동행이 있었는데 지금은 혼자 불쑥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늘 많은 이들의 관계 속에 놓이며 나 스스로 나를 자꾸 우선순위에서 밀어두게 된다. 그래서 무심코 내가 원하는 게 뭐지? 하다못해 지금 뭐 먹고 싶지? 뭘 갖고 싶지? 같은 어렵지 않은 질문에도 수 번을 망설이게 된다. 늘 뒤로 숨겨둔 내 마음을 혼자 여행하며 마구 파헤치고 싶다.


 물론 공중도덕과 인간으로서의 기본 품위(그리고 공직자로서 직업적 품위;; 잊고 싶지만 한 스푼만)는 지켜야겠지만 눈치 안 보고 마음껏 나 있는 그대로이고 싶다. 


 남편과 아이들 눈치 안 보고 몸매 드러나는(사실 남들 눈엔 다이어트가 필요한 아줌마 몸매일지 모르나 나 아는 사람도 없는데, 뭘~) 가벼운 원피스에 화사한 스카프 하나를 목에 둘러매고 꽃밭에 온 나비처럼 가볍게 낯선 거리를 팔랑이고 싶다. 


 지나가다 악사를 만나면 음악에 맞춰 미친 척 춤도 춰보고 맛집 찾지 않고 그저 풍기는 냄새와 느낌에만 홀려 식당을 찾아 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슨 요리인지 찾아보지도 않고 그냥 이름 제일 긴 거나 글씨 자체가 제일 이뻐 보이는 거 아무거나 골라 시키고는 나올 때까지 혼자 들뜨고 싶다. 


 난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유교집안 장남 집에 태어난 K장녀이자 3대째 교육자라는 직업을 갖고 서울 중산층(이라 믿고 싶은)으로 2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아주 틀에 박힌 뻔한 삶을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내 정신세계 귀퉁이엔 똘끼를 충만히 갖춘 자유로운 영혼분자가 살고 있다. 눈치 보느라 좀체 밖으로 나오지 않으나 부모님을 제외한 찐 가까운 내 측근들은 알고 있다. 


 그중 한 명인 내 동생이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난 언니가 언젠가 봤던 [초콜릿]이라는 영화 속에 나오는 자유로운 비안느처럼 살 줄 알았어."라고 말이다. 사실 아직 그 영화를 보지 않아 잘은 모르나 영화 소개 속 비안느는 100년 동안 변화가 없던 보수적인 프랑스 한 마을에 나타난 신비한 여인이란다. 그녀가 만든 초콜릿이 사람들을 변화시킨다는데;; 암튼 결코 평범치 않은 인물인 듯싶다. 


 뭐 사실 나도 내가 이리 평범한 어른이 될지 몰랐다.


 또 길어졌다. 여하튼 내가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은 홀로 여행이지만 지금도 엄청 행복하다!


 왜냐면? 

친정 가는 길이니까. 조용한 소도시였던 친정이 언젠가부터 관광지로 급부상해서 한번 갈 때마다 전쟁을 치르게 되지만, 그럼에도 '친정=힐링'이다. 세상에 무조건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내 부모님 말고 누가 또 있을까? 그토록 사랑한다고 다해준다는 남자도 결혼 후 남의 편이 되더라. 씁쓸한 뒷 생각은 집어치워 버리자. 


 남편 없이 애들 데리고 커다란 캐리어 밀고 끌며 나선 길이다. 요 녀석들 학원 때문에 2박 3일밖에 못 머물지만 5시간을 버스로 달려간다. 그래도 너무 좋다. 세상에 울 딸이 제일 자랑스럽고 제일 안쓰럽다 사랑만 주는 울 아빠, 엄마 보러 가는 거니까. 요즘 들어 해가 다르게 흰머리도 늘고 아픈 곳도 많아지는 부모님 모습에 속상해진다. 더 자주 가야 하는데 마음뿐인 못난 딸은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진다. 


# 혼여 강력원츄

# 남편이라 더 좋은 친정행

# 아빠, 엄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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