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있으면 김치볶음밥, 계란이 있으면 계란볶음밥, 야채들이 가득 있으면 그냥 야채볶음밥... 희한하게 재료들을 달달 볶고 소금 조금만 넣어도 꽤 요리가 맛있어진다.
남편이 야근하는 오늘 같은 날에는 마늘계란볶음밥을 먹기로 한다.
(집에 김치도, 야채도 아무것도 없었다...)
마늘을 얇게 썰어 기름에 달달 볶아준다. 적당히 마늘 냄새가 올라오면 계란을 풀어 스크램블을 해준다. 계란과 마늘이 섞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묻었을 때, 밥을 넣는다. 아차, 밥은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서 넣는다. 밥에 마늘 기름이, 마늘향이 듬뿍 입혀질 때까지 볶아준다. 볶음밥의 킥은 굴소스. 사실 맛소금만 조금 넣어도 맛있지만, 굴소스의 달달함이 왠지 잘 어울릴 거 같았다. 굴소스를 반스푼 넣어주고, 소금은 한 꼬집 뿌려준다. 마늘계란볶음밥 완성이다.
완성된 볶음밥의 하이라이트는 플레이팅이다. 밥공기에 가득 꾹꾹 담아주고, 그대로 넓은 접시에 한 번에 뒤집어주면 돔 모양의 볶음밥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엄마는 집에서 혼자 밥 먹을 때도 반찬통을 그대로 꺼내 먹지 말고 접시에 담아 예쁘게 먹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 혼자 먹는 볶음밥도 예쁘게 담아준다. 단정하고 반듯하게.
신혼여행을 떠났을 때 시부모님께서 신혼집에 며칠 머물다 가셨다.
어머니께서는 새로 시작한 살림에 필요해 보일 만한 것들 몇 가지를 마련해 주고 가셨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다리미였다. 이전 썼던 건 내가 혼자 살 때 이마트에서 샀던 다리미다. 사실, 다리미가 뭐 필요한가 싶어서 사는 걸 오래도록 미뤘었다. 어느날 구겨진 셔츠가 너무 없어 보여서 반강제적으로 가장 저렴한 걸 마련했다. 싼게 비지떡이라 했던가. 1-2년 정도 쓰니 다리미 판이 망가졌다. 그래도 나름 옷에 물을 많이 묻히면 잘 다려졌기에 이사 올 때 굳이 버리진 않았다. 시어머니 눈에는 내 다리미가 많이 낡고 허름해 보였나 보다. 빨래를 하고 건조기를 돌리면서 구겨진 옷들을 어머니가 사다두신 새 다리미로 한 번에 다려준다.
친정 엄마는 구겨진 옷을 언제고 귀신 같이 찾아 예쁘게 다려줬다. 아마 분홍색 원피스였을 거다. 다려 입기 귀찮고, 회생 불가인 옷이니, 그냥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던 옷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보다. 어느 날 집에 오니 분홍색 원피스가 빳빳하고 단정하게 내 방에 걸려 있었다.
"이거 다렸네?"라고 물어보니 엄마는 "내 새끼가 입으면 참 예쁘겠다고 생각하면서 다렸다"라고 말했다. 새다리미로 다림질을 하다 보니 그 말을 했던, 친정 엄마의 표정이 떠오른다.
엄마들은 그런가 보다. 세상살이 힘들고 복잡하더라도, 단정하고 반듯하게, 어디서든 없어 보이지 않게 살길 바라는 마음. 혼자 있더라도 예쁜 걸 보고, 예쁜 걸 먹고, 예쁜 걸 입고, 당당하고 반듯하게 살라는. 그게 엄마들 마음인가 보다.
텔레비전을 틀고, 소파 앞 테이블에 음식을 놓는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사실 이번 요리에서는 마늘이 많이 탔다. 마늘이 탄 부분은 최대한 잘 안 보이게 사진을 찍는다. 엄마라면 탄 음식 골라내서 먹으라고 잔소리를 했겠지만, 사실 난 탄 음식을 잘 먹는다. (좀 즐기는 편이다...) 역시 나는 말 잘 듣는 딸은 못되지만, 그래도 내 기준 단정하고 반듯한, 어여쁜 볶음밥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