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서 오이탕탕이라는 걸 보게 됐다. 이거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생각보다 만들기 쉬워 보였고, 재미있어 보였다.헌데나는 살면서 오이탕탕이를 먹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맛있는 양념들을 조합하면 뭐든 되겠지생각하며 도전해 보기로 한다.
퇴근길에 집 앞 작은 마트에서 오이 한 봉지를 사 왔다.
웬만한 양념은 집에 다 있으니, 더 필요한 건 없어 보인다. 소금, 식초, 설탕, 깨만 있으면 된단다. 오잉? 돌이켜보니 지난번에 텔레비전에서 본 건 간장이 들어갔었는데 아닌가.
찾아보니 중국식 탕탕이가 있고, 일본식 탕탕이가 있단다. 거기에 백종원표 탕탕이도 있단다. 이 탕탕은 뭐고 저 탕탕은 무엇인지 그때부터 혼돈이 시작된다. 탕탕이에 대한 감이 전혀 안 잡혔지만, 일단 가장 먼저 검색되는 레시피로 만들어보기로 한다.
깨끗하게 씻은 오이는 봉지에 넣어 힘껏 내리친다. 내리칠 도구가 없으니 국자로 내리친다. ‘탕탕탕’ 속이 시원하다. 오이가 갈라졌다면, 이제 손으로 찢듯이 갈라주면 된다.
대망의 양념.
소금을 반 스푼 넣고, 설탕을 한 스푼 넣는다. 그리고 깨소금 네 스푼... 네 스푼?
엄청 많이 붓는다. 깨는 고소하니까. 많이 넣을수록 좋을 거다. 그리고 식초.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는 당근라페를 만들 때 썼던 레몬즙이 있다. 이걸 넣으면 더 향긋하지 않을까 싶어서, 식초 한 스푼, 레몬즙 한 스푼을 넣어준다. 그리고 다진마늘을 넣어준다. 마늘은 맛있으니까, 원하는 만큼 넣는다,
이제 맛을 본다. 엑. 레몬즙의 향이 너무 강하다. 그리고 강한 마늘 맛이 혀를 스치고 지나간다. 역시, 요리는 소질이다.
한 번은 보쌈에 곁들여 먹을 무생채를 만든다고 이리저리 버무려 본 적이 있다. 레시피도 안 찾아보고, 만들었다. 무를 길게 썰어 넣고, 부추도 넣고, 소금으로 좀 재운 다음에 고춧가루, 액젓, 마늘... 뭐 김치에 들어갈만한 것들은 다 넣는다.
결과는 역시 실패. 너무 짰다. 그리고 썼다. 원체 맛없는 무를 샀다고 남편에게 '하하하' 웃으면서 말해보지만, 무생채는 나를 절망하게 했고, 아프게 했다. 결국 부추만 몇 개 건져서 식탁에 내놓았다.
역시 나는 소질이 없구나. 왜 이 소질 없는 걸 계속하고 있는 건가. 다시 되새겨 본다.
나는 글 쓰는 일을 한다. 일을 할 때도 글을 쓰는데, 집에서도 글을 쓴다. 브런치도 쓰고, 공모전에 당선되기 위한 글도 쓴다. 계속 쓴다. 뭐든 쓴다. 꾸준히 쓴다. 마치 꾸준한 속도와 힘으로 오이를 탕탕탕 내려치듯 나는 글을 내려친다. 무엇이 되진 못했다. 그냥 탕탕탕. 소리만 낸다.
얼마나 오랫동안 공모전에 당선되기 위해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 얼마나 흘렀는지 안다. 어느 순간부터 년수를 세는 것만으로도 자존심 상해서 잘 세지 않는다. 그냥. 쓴다. 날짜를 세지 않고 쓰다 보니 어느새 나는 그냥 쓰는 인간이 되어 있다.
요리도 그냥 하고, 맛을 보고 우웩 맛없다, 다신 하지 말자 해놓고, 또 만들고 또 만들고,,,
나는 그럼 무엇에 소질이 있는 걸까. 근데소질도 실패하면서 배우는 거 아닌가. 천재가 아닌 이상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게 결국 소질이 되는 거 아닌가.
다시 기운 내서 오이탕탕이에 집중하기로 한다.
어디선가 간장을 넣었던 걸 봤다는 어렴풋한 기억을 믿기로 한다. 간장 반 스푼을 넣고, 쯔유도 반 스푼 넣어준다. 달달한 맛을 더 내기 위해 설탕도 더 넣는다. 레몬의 상큼한 향이 살짝 오이와 어울리지 않아 식초를 조금 더 넣는다. 그리고 통에 넣어 뚜껑을 닫고, 흔들어 섞어 준다. 양념이 오이에게 잘 배이도록 섞는다.
그래도 오이탕탕이를 맛본 남편이 맛있다고 해줬다. 감탄도 아니고, 놀라움도 아니었지만, 그냥 오? 맛 괜찮네. 이 정도 리액션이다. 이거면 됐다. 중국식 탕탕이도 아니고 일본식 탕탕이도 아닌 그 어떤 탕탕이가 만들어졌다.
꾸준히 살기로 한다. 지구가 꾸준히 돌고, 꾸준히 회사를 다니고, 꾸준히 글을 쓰고, 꾸준히 요리를 하고, 꾸준히 살기로 한다. 그러다 보면 무슨 탕탕이라도 만들어져 있겠지. 이유를 찾지 말고, 실패해도 해낼 것. 그렇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