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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금 Aug 10. 2024

아플 땐 요리 대신 조리

첫날에는 목이 칼칼했고, 둘째날에는 으슬으슬 추웠고, 셋째날에는 열이 나고 온몸이 아팠다. 

의사 선생님은 백퍼 코로나일 거라 장담했고, 검사 결과는 역시나 양성.

차라리 검사를 하지 말고 외면했어야 했나.

후회도 해봤지만, 이참에 차라리 당당하게 재택을 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너어무 아팠다. '검사를 받지 말걸'이라는 얕은 생각이 참으로 한심할 정도로 열이 많이 났고, 두통이 찾아왔고, 목이 막혀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주사도 맞고 약도 먹었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코로나의 영향력이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동안 건강했던 나의 오만한 착각이었다. 이렇게 아플 수 있다니. 

사실 나에게 전염시킨 범인을 알고 있다. 우리집 동거인, 남편. 

거의 3주 가까이 아프다고 골골댔는데, 그게 사실 코로나였던 거다.

남편이 나을 만하면 다시 아프고, 나을 만하면 또 아프고... 왜 자꾸 아픈 건지, 집안일 하기 싫어서 머리 쓰는 건지... 밉기만 했는데, 막상 내가 아프고 보니, 저사람도 참 힘들었겠구나 싶어서 괜시리 미안해졌다.     


열이 좀 내리고, 재택 근무도 일찍 끝났을 무렵, 그래도 뭐라도 저녁을 차려보기로 한다. 

아플 땐 요리 대신 조리다. 오늘 저녁은 선물받은 백숙 완제품을 꺼내본다.

백숙은 봉지째 중탕을 시켜줘야 한다. 아무리 중탕을 오래해도 백숙 속까지 잘 녹지 않으니 오래도록 중탕을 해줘야한다. 봉지에는 4-50분 하라고 했으니 시간을 지켜보기로 한다. 다 끌으면 물을 버리고 그 안에 닭과 국물을 꺼내 끓여주면 끝. 반찬은 지난번 담근 파김치와 사온 김치로 한다.


사실 최근에 브런치가 생각지도 못하게 조회수가 높게 나왔다. 유례 없던 관심(내 기준)을 받자 뭐든 잘 만들고, 예쁘게 디스플레이를 해야 했고, 없는 인사이트를 끄집어내 글로 녹여내야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리 콘텐츠는 뭘까, 고민했다. 그래서 이런 조리는 절대 '작은 요리' 연재북에 올릴 수 없었던 것. 하지만 막상 아프고 보니, 조리라도 해낸 내 스스로가 기특했기에, 조금은 느슨하게 놓아버린다. 어차피 처음부터 큰 요리가 아니라 작은 요리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뻔뻔) 


완제품의 단점은 간이 세게 되어 있어서 따로 나 입맛대로 조절을 못한다는 거다. 그리고 닭다리와 날개가 살짝 부실하다. 그래도 백숙 안에는 밥도 들어 있어, 닭죽까지 꽤 든든하게 먹을 수 있다.

남편에게는 이 완제품이 입맛에 딱인가보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어딘가 부족했던 내 요리보다 조리 제품이 완성도는 훨씬 높긴 하다. 너무 잘 먹는 남편에게 좀 섭섭하긴 했지만, 뭐든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번에는 조리 말고 진짜 삼 황기 대추 많이 사다가 토종닭으로 푹 삶아먹자고 다짐한다. 

진짜진짜 건강이 최고다.


조리 제품이지만 아주 실하다.. 내가 만든 것 같은 뿌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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