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인기가 많은 라멘집 앞에 줄을 서 있는데, 종업원이 다가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 시간 애니 시청으로 다져진 내 생활 일본어 실력은 긴 문장 끝 '다이죠부데스까?'만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 줬고, 애니조차 보지 않은 두 친구에게 내 실력을 뽐내듯 '하이 다이죠부데스!'를 외쳤다. 그리고 우린, 장장 50분을 더 기다리는 불상사를 겪어야 했다.
언어엔 정보뿐만 아니라 더 깊은 감정이 담기기도 한다. 다음날 온천에 갔을 때, 안내원의 설명에는 환영과 기쁨이 가득 담겨있었다. 하지만 전날과 달리 이번엔 내 '훌륭한' 일본어 실력으로도 이해가 안 돼서, '스미마셍 와타시와 칸코쿠진데스...' 하고 꼬리를 내렸다. 그러자 준비되어 있던 한글 안내판을 내밀며 짓는 안내원의 표정은, '문화적 단절'을 명확하게 표현하듯 딱딱하고 차갑게 변해버렸다.
같은 언어로 이뤄지는 의사소통은, 수월한 정보 전달은 물론 깊은 감정과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게 해 준다. 바티칸에서 무릎을 맞대고 이뤄진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짧은 대화는 각국의 정세에 관한 소통에 더해, 트럼프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한 나라의 운명은 못 바꾸더라도, 50분까지는 안 기다리기 위해 그리고 친절한 직원의 안내를 받기 위해 언어를 소중히, 그리고 다양하게 다루면 좋겠다 생각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