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야속해

by 미노칼럼

갑자기 걸려 온 친구의 전화엔, 외할아버지의 운구를 도와달라는 무거운 부탁이 담겨있었다. 이럴 때 쓰려고 10년이나 친구 한 거 아니야? 하며 가볍게 승낙했지만, 장례식장의 분위기와 손에 실리는 관의 무게는 친구의 부탁만큼이나 무거웠다.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제 친구가 이렇게 저와 함께 놀 수 있게 되기까지 할아버지의 많은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하는 기도를 속으로 올렸다.


어린 시절, 친가의 증조할아버지와 외가의 증조할머니가 모두 살아계셨던 시기가 있었다. 서로의 존재는 알았기에, 명절 때마다 찾아뵈면 두 분은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증조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그해 추석, 그 할아버지는 잘 계시냐는 할머니의 질문에 우리 가족은 정정하시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우리 엄마·아빠의 결혼식 이후 한 번도 못 봤겠지만, 상대의 작고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어린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드는 그 무게감 그리고 그 인생이 남긴 의미는 왜 보내고 나서야 더 와닿는 걸까. 한 번도 보지 못한 관계에서도 알아차릴 만큼 큰데, 왜 죽음이 다가와 손수 드러내 주기 전까지는 알기 어려운 걸까. 오히려 이를 알려준 죽음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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