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신 우리 할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랑하는 비오야, 오늘 로또 꼭 사라~ 네 띠 운세가 제일 좋은 날이란다~' 천주교인으로서 저런 말을 해도 되나 의문이 들다가도, 혹시 모르니 현금 만 원을 준비했다.
"만 원어치 주세요." 하고 3초 만에 받은 종이 쪼가리 두 장을 보고는, 내 친구가 "너 수학 공부한 애 맞냐?" 하며 구박을 했다. 만나자마자 로또를 사야 한다길래 숫자 6개를 정성스레 고르는 행위라도 할 줄 알았더니 그런 것도 아니었냐며 친구는 내게 한심한 눈빛을 보냈다. "야, '복권은 멍청한 자들에게 걷는 세금'이라는 말 못 들어봤어? 기댓값 계산부터 해봐라!"
당연히 알고 있다. 로또 6/45의 1등 확률은 0.0000122774%, 기댓값은 평균 원금 대비 대략 50%이다. 즉, "만 원어치 주세요"하는 순간 평균적으로 오천 원이 사라진다. 하지만 내 친구는, 내가 소비한 만 원 안에 담긴 여러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로또를 사게 되면, 추첨 직전까지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물론 이 '기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 '희망'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느끼는 스트레스를 이 '기대감'으로 지움으로써, 또 혹시나 받게 될 당첨금으로 누리게 될 행복한 호사를 망상함으로써 얻게 되는 행복감에 만 원 투자는 할만하지 않을까.
로또를 사는 또 다른 의미는, 할머니에게 효도드리는 마음이다. 천주교인으로서 운세를 믿으면 안 된다느니, 로또의 기댓값이 낮으니 살 때마다 손해라느니 하는 게 우리 할머니에게 무슨 상관인가. 로또는 단지, 소중한 손주를 위한 마음을 꼭꼭 눌러 담은 순수한 애정 표현이었으리라. 그 마음에 감사를 표하고 효도드리기 위해 작은 종이 쪼가리 두 장을 산다.
친구의 구박에, "그냥 멍청한 사람 할게~" 하고 넘겼다. 수학을 몰라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바쁜 일상에 속에 잠시나마 행복한 망상을 해볼 수 있는 멍청한 사람, 그리고 할머니의 사랑을 곧이곧대로 받을 수 있는 멍청한 사람. 만 원으로 이렇게 많은 의미를 얻을 수 있다면, 멍청이 안 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심지어 운 좋으면 당첨금도 준다.
PS. 이렇게 안 맞은 적이 없을 정도로, 숫자는 하나도 안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