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동생이 개미면 어떡할 거야?"
도대체 이런 질문은 왜 하나며, 엄마 노릇하기 너무 힘들다고 직장 동료가 털어놨다. 자식의 쓸데없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화가 먼저 난다고 고백했다. 옆에 선배 엄마는, "베짱이 이야기랑 엮어봐! '그럼 너도 동생도 개미처럼 열심히 공부해야겠지~?' 이 멘트 어때?" 하며 선배미를 뽐냈다. 아이에게 질문을 역으로 해보자, 생각해 본다고 말하며 자연스레 넘겨보자 여러 아이디어가 오갔지만, 내 머릿속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내 동생은 개미가 되어있었고, 개미집이 만들어지듯 상상이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친구 미친놈과는 다르게, 내 생각은 항상 구름 위에 둥둥 떠다닌다. '그런 질문이 어디에 쓸모 있어?' 라는 질문을 제외하고는, 모든 질문을 해보는 중이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1. 지금 이 시점에, 전 세계 사람들의 50%는 청바지를 입고 있지 않을까?
2. 왜 요구르트를 냉동실에 넣어놓으면 터지지?
3. 지구상에 문이 많을까 바퀴가 많을까?
4. 술 취하면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럼 그때 눈으로 보고 있는 장면은 머릿속 어디엔가 기록이 되어있을까?
5. 김치찌개, 베개, 이쑤시개의 개는 같은 개일까?
'쓸데없다'가 실제 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의미한다면, 일단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질문이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걸까. 질문의 쓸모는, 어떤 현상이나 생각에 '?'를 한번 던져보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 물음표를 한 번 던져봄으로써 숨어있는 규칙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 눈앞 장면이 예외라는 사실을 찾아내기도 한다. 칠레의 달팽이 사육사들이 유독 고운 손을 가진 이유가 궁금했던 의사 바스쿠난은, 이후 우리의 피부를 책임지는 '달팽이 크림'을 개발하게 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으로 무언가를 통찰한다면, 그리고 그 결론이 실제 생활에 적용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쓸데있는' 행위 아닐까.
'쓸데없다'가 학문적인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의미한다면, 위에 소개한 질문 중 어느 것이 학문적이지 않다고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 실제로 2번 질문에는 '물이라는 물질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라는 과학적 대답을 할 수 있고, 5번 질문에는 '-개 라는 접미사는 어떤 행위를 하는 도구를 의미함'이라는 국문학적 대답을 할 수 있다. 학문적인 질문과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없다면, 밑져야 본전 일단 믿어보자. '사과는 떨어지는데 달은 왜 안 떨어질까'하는 질문에 쓸데없다고 꾸짖었다면, 위대한 과학자 뉴턴은 주식하다 쫄딱 망한 영국 조폐국 일개 공무원으로 남았을 것이다.
사실 나도 어릴 적 던졌던 질문에 장난기를 꽤나 많이 섞어봤기에, 아이의 의도를 파악하고 잘 대처해야 하는 부모님의 고충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쓸데없는 질문'을 만드는 사람은, 그 질문을 던진 아이가 아니라 그 질문을 '쓸데없다'라고 판단한 부모일지 모른다. 혹시 알까, 그 아이가 피부미용의 한 획을 그은 의사 바스쿠난이 될지 물리학의 근간을 수립한 뉴턴이 될지.
PS1. 이 글을 쓰며 우리 엄마에게 내가 이상한 질문 할 때마다 무슨 생각이 들었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도대체 그런 걸 왜 궁금해하는 거지...?' 하면서 신기하게 바라봤다고 한다.
PS2. 내 친구 미친놈(https://brunch.co.kr/@mino-column/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