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철학 4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
이번 글은 철학자의 말을 빌려 다소 진지하게 시작해봤습니다. 어느 주말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에요. 날씨도 좋은 주말에 굳이 무거운 걸 들고, 숨이 차도록 뛰고 난 후에 제 자신을 보다가 든 생각이죠. 1시간 조금 넘는 시간동안의 운동을 마친 후에 옷을 갈아입으면서 문득 '어휴, 이 힘든 걸 왜 자진해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단순하죠?ㅎㅎ) 평일이고 주말이고 가릴 것 없이 시간이 되면 운동을 한 덕분에 말라깽이의 가시같던 몸에도 근육이 조금이나마 붙어 건강한 몸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가기 싫음과 운동하는 순간의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을 수 있었을테니까 말이죠.
'성장'을 한다는 것은 '고통'을 반드시 수반합니다. 내가 지금 있는 단계에서 한 단계를 혹은 그보다 더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을 겪어야만 하죠. 익숙했던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떠나야하고, 익숙했던 무게를 내려놓고 그보다 무거운 무게를 짊어지고 움직여야 합니다. '성장을 위한 고통'은 많은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겠지만, 아마도 '낯섦'이라는 것이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거기서부터 성장의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고통을 선택하는 이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흔히 우리가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이 낯섦의 고통'에 강했던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 '고통'이 타인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갔다는 것이 중요한 듯 합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도, 나만의 일을 해보겠다고 도전하는 창업자도, 더 높은 리그로 가기 위해 도전하는 운동선수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장을 위해 스스로를 '고통의 환경'에 몰아넣습니다. 익숙해지는 것을 절대 그대로 두지 않죠. 목표를 달성하면 다시 한 번 더 자신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기를 반복합니다.
안주는 자유를 가두는 감옥이고, 성장 저해의 주범이다
- 존 F 캐네디 미국 35대 대통령 -
편안함, 익숙함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의 순간을 거쳐 그 순간에 다다르고 그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니까요. 그리고 그 편안함과 익숙함이라는 보상은 삶의 어느 지점에서 고통을 마주하고 그 고통의 순간 속에서 성장했기에 받은 것일테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편안함과 익숙함을 지키기 위해서도 '고통'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싶다면 '고통'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인생은 고(苦)다"라고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서른의 중간을 넘어가는 지금. 저는 운동 외에 삶에서 처음으로 제 스스로를 '낯섦의 고통' 속으로 천천히 몰아넣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생각에 매주 1편의 글을 발행하는 '창작의 고통' 속으로,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닌 나의 꿈을 이루는 삶을 위해 '창업의 고통' 속으로 제 스스로를 천천히 밀어넣고 있습니다. (좀 더 멋진 몸을 위해 '무게를 치는 고통'도 함께 말이죠ㅎㅎ)
사실 이 시간이 언제 끝날지 언제 그 성과를 눈 앞에 보여줄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고통은 길고, 환희의 순간은 짧으니까요. 그럼에도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나를 위해,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으로 나의 시간들을 채우기 위해 계속 고통 속으로 걸어가보려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어떤 고통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넣고 계신가요? 어떤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계시던 여러분의 고통의 순간이 지나면 여러분이 꿈꾸는 삶의 목표에 다다르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