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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INO May 03. 2022

제주동문시장

<오롯이 시리즈> 오롯이 홀로 '제주'

제주도에 도착해 차를 빌리고 나니, 시간은 어느 덧 여섯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내 방향과 목적지는 정해져 있으니, 밤이 조금 더 깊어질 때까진 생각나는대로 움직이고 싶었다. 차에 조용히 앉아 첫 목적지로 어디가 좋을지 떠올렸다. 사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부터 이미 몇 군데 떠올려둔 곳이 있었기에, 그리 오래지나지 않아 첫 도착지가 결정되었다.


제주도에 참 많이도 왔지만, 의외로 가보지 않은 곳들이 많다. 20대의 중간 어디쯤을 지날 때 꽤나 오랜시간 제주도에 머물기도 했지만, 익숙한 곳만 주로 가는 내 성격 탓에 놓친 곳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그 중 한 곳이 바로 ‘제주동문시장’이다. 마침 저녁을 먹을 시간도 되었고, 그 곳의 분위기와 모습을 담아볼 요량으로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



동문시장은 입구부터 꽤나 시끌벅적했다. 스피커가 큰 소리로 음악을 뿜어내고 있었고, 젊은 상인들은 너도나도 화려한 불쇼를 뽐내며 손님을 끌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보이는 INTJ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발길을 돌릴 뻔했다. 그럼에도 왠지 저 곳만 뚫고 들어가면 내가 기대했던 시장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무겁게 발걸음을 떼었다.



시장의 입구 근처로 촘촘히 들어선 사람들을 간신히 뚫고 시장의 중심으로 향했다. 동문시장의 문턱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의 풍경. 여전히 시끌벅적했지만, 동문시장의 중심은 흔한 옛 시장의 풍경을 아직 간직하고 있었다. 도망치듯 지나왔던 입구와는 다르게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시장을 둘러봤다. 무언갈 살 생각은 없고, 문득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 나를 제주할망들은 무심하게 쳐다보곤 다시 자신들의 일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시장 속 삶의 모습들을 관찰하고 또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한 참을 돌아다니다보니 어딘가 묘했다. 동문시장에는 두 세대가 공존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당찬 젊음을, 누군가는 세월의 노련함을 바탕으로 각자의 방식대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지켜온 방식을 고리타분하다 하지 않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것을 철 없다 하지 않는 것. 서로의 방식과 시간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제주동문시장’의 모습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지 생각해봤다. 이제 어느 덧 사회생활을 하면서 적지 않은 나이에 있는 나의 위치는 이 시장으로 치자면 어느 지점에 있을까? 분명한 건 입구 초반은 아닐 것이다. 어느 곳에 있건 상대방의 방식과 모습에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며, 나의 삶을 탄탄하게 만들어가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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