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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INO Feb 27. 2023

아직은 아날로그가 좋아

가끔씩 생각날 때 적어둔 글

모든게 명확해지는 아니 어쩌면 '명징하다'라는 표현이 어쩌면 조금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는 디지털의 시대. 아날로그의 끝자락과 디지털의 시작점에 태어나 두 가지를 모두 누렸지만 나는 아직도 아날로그 감성을 조금 더 좋아한다. 조금은 번거롭고 어딘가 흐릿해도 그 번거로움과 흐릿함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날로그 감성이고, 왠지 모를 따스함이 느껴지니까.


모든 것이 뚜렷해지고 간단해지다 못해 어쩌면 우리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현실보다도 더 선명하고 명료해지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 그들이 과거의 물건에서 '감성'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번거롭고 어딘가 부족하며 때로는 내가 의도했던 대로 모든 결과물이 나오지 않음에도, 그럼에도 그 과정과 몸짓에서 위안을 얻는 것일테니까.


나 역시 그렇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굳이 필름 카메라의 느낌으로 편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것으로는 부족해 필름 카메라를 사기 위해 당근마켓을 뒤적인다. 버튼 한 번이면 완성되는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굳이 원두를 직접 손으로 갈아내고 물을 끓이고 시간을 들여 한 잔의 커피를 겨우 한 모금 마시고는 한다.


내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의 즐거움. 그것이 아날로그의 느낌을 사랑하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때로는 초점이 맞지 않고, 때로는 사진이 모두 흔들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도 내가 사랑한 그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여 신중하게 누른 한 번의 셔터. 원두를 사각사각 갈아내는 듣기 좋은 그 소리와 향긋하게 퍼져 나의 몸과 나의 공간을 휘감는 커피의 향 그리고 마침내 얻어낸 한 모금의 커피. 그 모든 순간에 내가 그것들과 함께 존재했고, 그 하나의 순간을 내가 직접 만들어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과 즐거움이 이 번거로움을 모두 잊게 하는 것이리라.


디지털의 시간에서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기계 덕분에 잊고 살아가는 나의 오감을 나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나와 당신에게는 아날로그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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