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를 포기한 뒤 며칠 동안,
우리 부부는 서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말을 안 한 건
화가 나서도, 실망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조용했다.
어떤 기대를 내려놓고 나면
잠깐 그런 공허한 시간이 찾아오는 것 같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조금씩 다시 머리를 들기 시작한 건
아마도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가 정말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 치앙마이는 어때?”
아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처음 해외살이를 상상했을 때부터
후보지 중 하나였던 태국 치앙마이.
그땐 말레이시아에 비해 정보도 적고,
국제학교 학비도 조금 더 비싸 보였고,
무엇보다 막연하게 ‘관광지 같은 느낌’이라
생활지로는 덜 끌렸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우리는 말레이시아에서의 실패를 통해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얄팍했는지를 배웠다.
이번에는 좀 더 겸손하게,
좀 더 깊이 있게 알아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알아본 건 비자였다.
치앙마이는 아이 한 명당 부모 한 명씩
교육비자(ED 비자)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건 우리 가족에게는 결정적인 조건이었다.
아이 둘에 부모 둘,
모두가 합법적으로 살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안도감이었다.
그다음은 학교.
국제학교는 확실히 말레이시아보다 비쌌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히니
‘이중언어학교’ 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보였다.
태국어와 영어를 병행하는 사립학교인데,
커리큘럼도 좋고 비용도 훨씬 합리적이었다.
“이건… 오히려 더 우리 가족에게 맞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순간, 어쩌면 우리는
처음으로 현실적인 희망을 품은 것 같았다.
다시 검색을 시작하고,
블로그를 뒤지고,
학교에 메일을 보내고,
현지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처음 말레이시아를 준비할 때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가볍게 움직였다.
‘이건 꼭 되어야 해’가 아니라
‘되면 좋겠고, 안 돼도 괜찮아’라는 마음으로.
어쩌면 우리가 정말 원했던 건
어디냐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그 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치앙마이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우리 가족의 새로운 목적지가 되었다.